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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이들과 용두산에 다섯 번째 올랐다. 겨우내 붙었던 게으름을 떨어내는 다이어트 산행이라 아이들이 좀 힘들어했다. 쉽고, 좋고, 편한 것만 찾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런 것을 쫒는 것이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그런 것들만 찾는 것에는 어른들도 한몫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이 학원, 저 공부방으로 옮겨 다니며 공부를 시키는 데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때문인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거의 들어주니 말이다.

▲ 용두산 정산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
ⓒ 김영래
우리 아이들도 힘들고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는 것에 매우 약하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산엘 데리고 다녔다. 처음엔 집 근처에 있는 산보 수준의 아주 작은 곳부터 시작했다. 그래도 힘들어 했고, 한 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인데도 가기 싫어서 어떻게 하든 안 갈 수 있는 핑계를 만들었다.

가령 “발 목이 아파서 걸을 수 가 없다” 또는 “신발이 작아서 발가락이 아프다” 등등. 그래서 공부하고 난 후에 원하는 것을 들어주듯 정상에 갔다 오면 좋은 등산화를 사준다는 등의 약속, 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 김밥 등으로 도시락을 싸서 정상에 올라야 먹을 수 있다는 식으로 당시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유혹했다. 그리하여 작은 봉우리 두 개쯤은 쉽게 견딜 수 있는 내성이 생겨 이번에는 좀 더 높고 힘든 코스로 변경을 했다.

▲ 청소년 수련원의 각종 시설들이 아이들의 산행에 재미를 더 해준다.
ⓒ 김영래
용두산은 해발 871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도시에서 가까워 사람들이 아주 많이 찾는 산이다. 이곳을 열 번 오르면 태백산도 가기로 했다. 3월 중순이긴 하지만 아직 제천에서의 날씨는 쌀쌀하다.

청소년수련원에서 시작되는 산행은 각종 수련 시설을 활용할 수 있어 아이들의 재미를 유발시켜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면 아이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몸을 틀고, 자꾸 물만 찾는다.

힘들고 가기 싫다는 표현이라는 것을 아는 나는 "물을 많이 마시면 못가, 좀 참아야 해"라고 딱 잘랐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앞질러 가면서 아이들에게 격려를 해주었지만 이 녀석들은 겨우내 게으름을 떤 탓에 좀체 기운을 내서 올라가려고 하질 않았다.

▲ 중턱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계속해서 물을 찾으며 내려갈 구실을 찾는다
ⓒ 김영래
등을 떠밀며 격려도 했고, “안 갈려면 이곳에 있어 엄마, 아빠만 갔다 올게”라는 식의 협박 아닌 협박도 했다. 어느덧 절반을 넘어 비교적 평평한 오르막에 이르러서는 아이들이 오히려 기운을 내기 시작했다.

▲ 정상이 가까워 오며서 산행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 김영래
소나무 숲속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볼을 빨갛게 만들었지만, 스르렁, 스르렁 소리를 내며 갈참나무의 마른잎 사이로 바람이 훑고 지날 때 아이들의 힘들어 하는 소리도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그리곤 이내 둘이서 경쟁을 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아이들이 힘든 과정을 버텨내준 것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아마도 중턱쯤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그냥 내려갔더라면 편했을 테지만 아이들의 인내심의 길이는 더 짧아졌을 것이다. 뒤따라 오던 아내도 나의 협박과 달램을 지켜보다가 이내 힘을 더했다.

“우리 내려가서 오랜만에 짜장면 먹고 야구볼까?” 하는 말에 아이들이 좋아했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아이들은 어느새 산행의 어려움도 잊고 넓고 평평한 산마루를 뛰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컴퓨터에서 게임을 할 때는 지겹다는 말을 않다가도 일기를 쓰고, 숙제를 하면서 온 몸을 꼬고, 의자에서 서너 번씩 일어나 거실로 나와 물을 마시는 등 집중력과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는데 등산을 하며 함께 극기를 배운 것이 마음 한구석에서 뿌듯해져 옴을 느꼈다.

▲ 하산길은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기억하며 담소를 나눈다
ⓒ 김영래
내려오면서는 오를 때 힘들었던 것과 그것을 이기면 이렇게 달콤한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이야기 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아주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면서 행복한 일요일을 보냈다.

덧붙이는 글 | 어느 도시에나 있듯이 용두산은 충북 제천에 있는 산으로 871m의 작은 산이지만 많은 시민들이 찾는 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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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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