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르륵-, 끼르륵-.'
'철썩-, 철썩-.'
봄은 작고 예쁜 남녘의 백사장에도 찾아왔다.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세화해수욕장. 겨우내 잿빛으로 물들어 있던 겨울바다가 드디어 햇봄을 토해냈다. 바다는 처음 보는 봄이 부끄러운 듯 물결만 인다. 수평선 너머에서 찾아온 햇봄. 햇봄은 어떤 색일까?
지금 세화해수욕장은 온통 코발트색이다. 그리고 1km 남짓한 백사장은 햇봄을 달구고 있다. 하얀 백사장에 손님이 찾아왔다. 겨우내 길을 잃고 배회했던 갈매기도 오늘은 어찌된 일인지 얌전하게 휴식을 취한다. 바다갈매기 봄노래를 부른다. 끼르르- 끼르륵-.
수평선까지 마중 나갔던 썰물도 백사장이 그리운지 다시 밀려온다. 철썩-철썩-.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바다갈매기는 밀려오는 바닷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백사장을 손질하기에 바쁘다.
마을의 아낙도 바다로 마실 나왔다. 온통 백사장을 뒤집어쓴 듯한 아낙의 모습이 마치 봄바람 난 처녀처럼 안절부절이다.
아낙은 얼마나 봄을 기다렸을까? 썰물에 몸을 벗기듯 백사장을 후비고 돌아다니는 아낙의 발걸음이 봄의 왈츠를 추는 듯하다. 아낙은 갈매기를 본체만체하고 정신없이 봄 바다만 캔다. 어느새 백사장은 아낙이 캐어놓은 바다양식으로 가득한데, 바다갈매기는 길을 터주지 않는다.
3월의 봄 바다는 시시각각 변해간다. 햇봄이 여물어가는 작고 예쁜 세화해수욕장. 봄을 캐는 아낙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걸 보니, 아낙의 가슴도 벌써 쪽빛으로 물들었나 보다.
작고 고운 모래사장으로 걸어가 보았다. 햇봄의 백사장을 밟아 보니 마치 양탄자를 걷는 기분이다. 푹신푹신하면서도 부드러운 촉감. 햇봄의 백사장에 발자국을 남겼다. 발자국 따라 봄도 함께 머문다.
'고양이털보다도 보드라운 것이 봄'이라더니, 햇봄의 백사장 역시 고양이털처럼 보드랍구나.
꽃가루와 같이 보드라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꼭 다문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온 세상이 이렇게 예쁘고 부드러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비록 세화해수욕장은 폭이 20-40m밖에 되지 않아 아쉽지만, 작은 것에 대한 아늑함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경사가 5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완만하면서도 여유를 주는 세화해수욕장. 제주도 동쪽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만난 순정의 바다에서 봄을 실컷 마셨다.
하얀 등대도 봄 마중을 나왔다. 쪽빛바다 한 편엔 벌써 봄이 남실거린다. 등대는 겨울바다와 이별의 아쉬움에 젖어 있는 듯하다. 이렇게 쉬이 봄이 올 줄 알면서도 겨울바다에 정들었던 등대. 사람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너무 조용한 세화해수욕장. 세상이 꽃봉오리 터트리는 소리로 왁자지껄한데, 봄 바다는 조용히 모래알만 세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제주시-동쪽 12번 도로- 함덕- 김녕- 세화 (해안도로)로 50분 정도가 소요된다.
☞ 주변관광지로는 김녕해수욕장, 만장굴, 미로공원, 비자림, 문주란 자생지, 성산일출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