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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잇장처럼 말라 버린 부드러운 조개의 속살
종잇장처럼 말라 버린 부드러운 조개의 속살 ⓒ 조태용
구례읍내에는 백련지라는 작은 저수지가 있습니다. 이 저수지는 겨울이면 철새들이 노닐고 가을에는 가끔 강태공들이 붕어 낚시를 하는 어느 소읍에나 있을 만한 평범한 저수지입니다. 또한 이 저수지는 구례읍내를 통과하는 실개천의 수원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물은 서시천을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갑니다. 섬진강의 많고 많은 지류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 저기 물이 빠진 곳에는 말라죽은 조개껍질들이 널려 있었다.
여기 저기 물이 빠진 곳에는 말라죽은 조개껍질들이 널려 있었다. ⓒ 조태용
그런데 얼마 전에 백련지 저수지 물을 방류한 일이 있었습니다. 방류를 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그것으로 인해 풍부했던 저수지 물은 일시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4일이 지난 다음 그 저수지 물이 적정량이라고 판단했는지 방류를 멈추었습니다. 물을 방류하기 전에는 저수지 근처도 수심이 깊어 접근하기 어려웠는데 물이 빠지니 저수지 둘레에 새로운 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수지 여기저기 조개껍질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저수지 근처 물가에 어른 손바닥만한 민물조개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물이 빠진 경계를 따라 죽은 놈들이 많았습니다. 물과의 거리는 고작 한치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거리 때문에 조개들은 생(生)에서 사(死)로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3~4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서히 방류했는데도 조개는 겨우 한치도 되지 못하는 거리를 움직이지 못해 말라 죽었던 것입니다.

물과 고작 한 치도 안되는 거리에서 죽어 버린 조개
물과 고작 한 치도 안되는 거리에서 죽어 버린 조개 ⓒ 조태용
저수지 곳곳에 아직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조개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하여 살펴보니 물과 땅의 경계에는 죽은 놈과 산 놈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살아 있는 조개들이 눈에 띄는 대로 깊은 물에 던져주고 저수지를 빠져 나왔습니다.

사람은 그 정도 거리를 움직이는데 고작 몇 초도 걸리지 않지만 조개에게는 그 거리가 며칠을 가야 하는 거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2미터도 안 되는 만큼 물이 줄었지만 거기에 살던 많은 조개들은 바로 옆에 있는 물가로 피하지도 못하고 너무 쉽게 죽어 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속도와 조개가 움직이는 속도와는 너무나 큰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물가에는 살아 있는 커다란 조개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물가에는 살아 있는 커다란 조개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 조태용
돌아오는 동안 새만금 공사가 끝난 이후에도 그 넓은 갯벌에 계속해서 살아 있을 조개들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여기에 저수지에 널브러져 있는 조개들처럼 그들도 죽어갈 것입니다. 아무리 천천히 물을 뺀다고 해도 인간이 생각하는 속도와 이들의 속도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물이 말라 가면 그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결국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죽어갈 것입니다.

새만금과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저수지에서도 단지 수량을 인간이 원하는 적절한 수준으로 줄인 것만으로 조개들은 너무 쉽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넓은 새만금에 공장이나 농사를 짓겠다고 물길을 막는다면 어떤 일이 있어날까요?

새만금간척사업을 결정하고, 그 일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적어도 마음에 짐 하나씩은 가져야 합니다. "내가 저 넓은 바다와 갯벌을 막아 수없이 많은 생명들의 숨통을 조여 죽여 버렸구나"라고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대법원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계속 진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간척사업을 맡은 이들은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친환경이 어떤 수준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자연의 속도를 고려한 친환경적인 방법이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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