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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대책 발표 이후에 잠시 주춤하는 듯 하던 강남벨트 등의 아파트 가격이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는 원인이 실수요자들 때문이라는 통계가 발표된 후 정부는 곤혹감을, 보수언론과 주류경제학자들은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8·31대책 발표를 앞두고 보수언론과 주류경제학자들은, 연일 공급확대만이 집값 안정의 첩경이라고 주장하며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던 정부의 정책을 '세금폭탄'으로 깎아내린 전력이 있는 만큼 그들의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고 본다.
반면 정부로서는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8·31대책이 무위로 돌아가는 현실을 접하면서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인 기색이 역력하다. 하긴 8·31대책은 국지적 집값 폭등의 원인을 투기적 가수요의 존재 때문으로 진단하고 미흡하나마 종부세와 양도세 강화를 통해 이를 억제하려는 데 방점을 찍은 정책이었으니만큼 현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정부의 심경이 참담하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비록 보유세 중과 대상의 폭과 실효세율 등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보유세율 현실화를 통해 투기적 가수요를 제어하려고 한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대체로 옳았다고 평가받는 8·31대책이 이토록 시장에서 냉대를 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언론과 주류경제학자들이 기염을 토하는 것처럼, 정부가 경제학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투기적 가수요라는 유령을 쫓다 실수요가 강남 집값 상승의 근본원인이라는 냉엄한 현실과 맞닥트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까?
강남은 실수요가 지배하고 있다?
8·31 대책 발표 이후 강남벨트에서 집을 산 사람들의 80%가 실수요자라는 정부의 통계는 공급 부족 때문에 강남 집값이 뛴다고 주장해온 보수언론과 주류경제학자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긴 투기적 가수요를 잡겠다며 추진한 8·31대책 발표 이후 강남권역에 소재한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 중 80%가 무주택자나 1가구1주택 등의 실수요자라는 통계보다 더 8·31정책의 실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투기적 가수요가 강남 집값 상승의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종부세와 양도세 강화 등의 세제 개혁을 처방한 정부는, 졸지에 생사람을 잡은 돌팔이 의사의 처지로 전락한 셈이다.
지나간 일이야 더 탓해 무엇하랴! 이제라도 정부는 8·31대책의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강남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의 공급확대정책을 통해 집값 안정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8·31 부동산 대책 이후 강남의 집을 산 사람 가운데 80%가 실수요자라는 통계가 과연 믿을 만한 것인지에 분석이 그것이다. 통계보다 확실한 것이 어디 있느냐고 큰소리칠 수도 있지만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최근 "폭등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강남 일대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을 조사해보니 80%가 무주택자 또는 1주택자인 실수요자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언하여 움직일 수 없는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는 이른바 "강남 실수요자 80%론"은 기실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정부는 통계가 부리는 마술에 현혹되지 말아야
주지하다시피 8·31대책 발표 이전에 강남벨트에는 투기적 가수요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이는 지난 2000년부터 2005년 6월까지 부동산가격이 급등한 서울 소재 9개 아파트단지의 전체 거래량 2만 6821건 중 3주택 이상 보유자의 취득건수가 1만 5761건으로 무려 전체의 58.8%에 이른다는 점, 작년 상반기까지 강남, 분당, 용인의 주택 담보대출증가액이 전국 증가분의 43%를 차지한 점, 강남구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2001년 51.4%에서 작년 6월 현재 31.7%로 매우 안정되어 있다는 점 등을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으면 8·31대책 발표 이전까지만 해도 투기적 가수요가 창궐하던 강남벨트가 8·31대책 발표 이후에는 실수요자들로 완전히 재편되었다는 말인데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정부는 무주택자나 1주택자들이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실수요자로 간주하고 있는데 바로 이 같은 정부의 인식에 치명적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정부는 1주택자도 실수요자의 범주에 포함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정부가 무슨 근거로 강남벨트 소재 주택을 구입하는 1주택자를 투기적 가수요자가 아니라 실수요자로 분류하는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또한 8·31대책 발표 이후 강남벨트에 있는 주택을 구입한 무주택자를 무턱대고 실수요자로 간주하는 것도 문제가 많다. 물론 통계상으로만 보면 무주택자가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실수요자로 간주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무주택자라고 해서 다 같은 무주택자가 아니다. 고급 오피스텔을 소유하고 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주택을 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고소득자들을 일반적 의미의 무주택자로 분류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난점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8·31대책 발표 이후 강남벨트에 집을 장만한 무주택자들이 왜 그토록 비싼 대가를 치러가며 굳이 강남벨트에 자기 집을 마련하려고 했는지도 의심스럽다.
결국 통계가 말해주는 것은 진실의 일각에 불과한 셈이다. 따라서 "강남 실수요자 80%론"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서는 시장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밖에 없다.
3월 25일자 〈조인스랜드〉에 실린 아래의 기사는 "강남 실수요자 80%론"이 지닌 허구성을 낱낱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최근 강남 개포동 재건축 대상의 저밀도지구 아파트를 매입한 사람들은 대개 연령층이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의 전문직종인 사람이나 맞벌이 부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게 중개사들의 얘기다. 현재 거주지역은 서울 강북이나 분당 등지의 수도권 사람과 지방 사람이 섞여있다고 한다.
매입자 중 20∼30%만 실제 거주하고 나머지는 그냥 사놓는 수요란다. 앞으로 5∼7년 장기적으로 갖고 있겠다는 것이다. 그때쯤에는 재건축이 되어 가격도 엄청 오르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재건축이 되면 들어와 살겠다는 수요도 있다.
더 세밀하게 분석해보자. 중개사들이 말하는 전문직종은 의사ㆍ변호사ㆍ세무사ㆍ법무사 등의 고수익 계층들이다. 맞벌이 부부도 그럴듯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어서 이 또한 잘사는 편에 속하는 부류로 진단할 수 있다.
이 같은 구매수요의 성향은 강남과 함께 동반 상승한 죽전ㆍ목동 등지도 비슷한 양상이고 돈 되는 곳을 찾아주는 재테크컨설팅업체들의 분석과도 일치하는 대목이 많았다.
물론 강남에 집값이 많이 뛴 목동이나 분당 등지에 살던 사람이 집을 팔고 여기에 돈을 좀 보태 입성한 실제 거주수요도 있다. 특히 이번 기회에 강남 아파트를 못 잡으면 상류층 반열에 들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젖어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강남행 열차를 타야 한다는 수요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제 거주가 아닌 투자 차원에서 집을 산 사람이라는 게 일선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여전히 투기적 가수요자들에게 "강남은 내 운명"
자! 어떤가? 위에서 차근차근 살펴본 것처럼 "강남 실수요자 80%론"은 통계가 빚어낸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8·31대책의 입법화에도 여전히 미흡한 보유세와 양도세의 존재에다 저금리로 인한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 정권 교체 가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불로소득을 좇는 투기적 가수요가 한사코 강남벨트 등으로 몰려들어 집값이 상승하고 있다는 보는 것이, 최근 강남권역 등에서 집값이 상승하는 원인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 투기목적으로 구입한 기존 소유자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다 무늬만 실수요자인 가수요자들이 매수에 나서는 마당이니 강남 집값이 올라가지 않고 배길 도리가 없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8·31대책 발표 이후에도 강남은 여전히 투기적 가수요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와 같음에도 정부는 현상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고, 보수언론과 주류경제학자들은 연일 국민을 오도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와 뉴스앤조이, 다음블로그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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