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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지연
- 어떻게 지내는가?
"<토지>를 그린다. 1부가 전체 일곱 권인데 현재 7권째 작업하고 있다. 2년 전 시작한 1부가 곧 완결돼 4월 말이나 5월 초쯤 나오고, 이후 2부가 3권, 4부와 5부가 각 2권씩 묶여 나올 예정이다."

- <토지>를 만화화 하게 된 계기는?
"사실 <토지>의 만화화는 내가 만화가가 되기도 전인 이삼십대부터 가진 생각이다. 청년 시절 나는 <토지>를 읽으면서 만화가가 되면 꼭 한 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 만화화에 있어 특별히 고려한 부분이 있다면?
"사실 작품 분량이 방대해서 많이 잘라내야 하고, 만화로 옮겼을 때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도 과감히 쳐내야 했다. 그러나 기존에 문학작품을 만화화한 경우들처럼 문학이 가진 특별한 '맛'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이미 기존에 방영된 드라마들은 원작을 너무 예쁘게 포장하거나 왜곡하고 있는 면이 많은데 만화 <토지>는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선생이 원작에서 말하고자 했던 부분을 살려내고자 했다."

- 구한말과 해방 전후를 배경으로 한 그간의 작품 이력으로 보아 잘 어울리는 듯 보인다. 고건축에 대해 갖고 있는 일가견 또한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그렇다. 나는 이제까지 구한말과 해방 전후를 주로 그려왔는데 그 덕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마로니에북스에서 그 점에서 나를 섭외한 것 같다. 고건축에 대한 공부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웬만한 자료 없이도 무난히 당시의 건물들을 그려낼 수 있다.

어린시절 나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이제 막 신작로가 나고 , 장날이 되면 온동네가 잔치를 여는 듯했던 그때의 느낌이 아직 남아 있다. 쪽을 찐 어머니와 잠뱅이 입으신 아버지가 소 끌고 쟁기질 하시던 풍경, 초가집 밑에서는 새들이 부화하고, 가을에 초가집 이엉을 걷어내면 나던 냄새들까지 모든 것이 내 몸에 완전히 체화돼 있다. 지금 우리 세대가 그것을 그리지 않는다면 산업화 이후 세대들은 빈 껍데기만 그리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들 그대로의 냄새, 향기, 느낌까지도 그려내고 싶다."

- 문학작품의 만화화라는 것에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토지>가 완성되는 데 삼사십 년이 걸렸다. 또한 <태백산맥>만 해도 근 칠팔 년이 걸려 완성된 작품이다. 그러한 수준의 이야기를 만화가가 처음부터 해야 한다면 과연 얼마나 걸릴까. 아마 평생을 해도 못할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미 나와 있는 검증된 작품들을 만화화 하는 작업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만화가 원작의 시녀 역할에 그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화된 문학작품의 주인공이 감독인 것처럼 만화가들도 원작을 단순히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만화가 갖는 풍부한 예술성을 고루 살려낼 수 있어야겠다."

- 그런 점에서 연출에 특별히 더 신경을 썼을 것 같다
"그렇다. 문학이 가진 문학성을 제대로 살려내기 위해 만화의 연출을 적절히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만화화됐을 때 만화가 가진 풍부한 예술성-그림과 글의 조화, 칸의 조화를 최대한 살려 음악만 빠진 종합예술인 만화의 예술성을 충분히 살리고자 했다. 한 컷이 갖는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 박경리 선생이 만화를 썩 탐탁치 않게 본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럴 수 있다. 옛날 분이니.(웃음) 원작에서도 대동아전쟁을 '만화같은 전쟁'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나온다. 만화를 우스꽝스럽거나 얼토당토 않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사실 얼추 1권 분량이 완성됐을 때 머릿글을 받기 위해 선생댁에 가제본을 보낸 적이 있는데 처음엔 들춰보지도 않다가 읽어보시곤 마음에 들었는지 머릿글도 기꺼이 써주시고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더라.

그런데 안 만나려고 한다. 원작자를 만나면 오히려 상상력이 경직되지 않을까 싶다. 원작에 대한 중압감도 생길 것도 같아 작품이 완전히 완성됐을 때 만나고 싶다. 혹 1부가 끝나고 나서 만나 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작품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을 참이다."

- 방대한 작품 때문에 힘든 점은 없는가?
"인물이 너무 많아 고생을 하고는 있다.(웃음) 박경리 선생 말로는 600명이 넘을 거라고 하는데 지금 내 만화에 출연하는 인물 전체가 500명이 넘는다. 내 그림체는 사실체라 더욱 작업이 고되다. 중단했다가 다시 그리면 인물을 잊어버리는 통에 벽은 온통 갖가지 인물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여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예뻐 문제다. 최서희도, 월선이도, 임이네도…. 그런데 그 예쁜 것도 다 다르게 예뻐야 한다. 가끔은 섣불리 시작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웃음)"

- 전작인 <부자의 그림일기>나 <한국단편소설> 등이 미국에서 출판돼 호평받았다고 들었다. <토지>도 해외로 진출할 계획이 있는가?
"<부자의 그림일기>나 <한국단편소설>은 미국 뿐 아니라 최근 프랑스 카트만사와도 출판 계약을 체결했다. <토지> 또한 1부가 나오는 대로 유럽으로 진출하게 될 것 같다."

- 완성은 언제로 내다보는가? 완성 후의 계획은?
"출판사에서는 내년 초까지 마무리 해주길 바라는데 일단 노력해봐야 될 듯하다. 지금은 <토지>만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지만 사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작업이 하나 있다. 옛날 우리 동네 어른들, 또 내가 직접 겪었던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제일 가난했던 그 시대 속 산업화에 낙오된 다양한 민초들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 아마 1천 페이지 정도는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NEWS에도 실렸습니다.


만화 토지 1~17 박스 세트 - 전17권 (흑백, 보급판)

박경리 원작, 오세영.오세영 그림, 조윤아 각색, 마로니에북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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