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태조부터 18대 의종까지는 삼국이나 조선과 같이 왕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지만, 19대 명종부터 24대 원종까지는 무신들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 또 25대 충렬왕부터 30대 충정왕까지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31대 공민왕부터 34대 공양왕까지는 원나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고려사 이야기 1>에는 태조 왕건에서 시작하여 목종까지를 실었다. 이 시기는 건국 초기로 왕권강화에 힘쓰던 때이다. 고려 태조가 나라를 건국하는 일도 험난했지만, 후대 왕들이 귀족들로부터 왕권을 지키는 노력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이를 예견한 왕건은 지방귀족 딸들과 정략결혼으로 왕권강화를 꾀하였고, <훈요10조>를 자손들에게 남겨 왕권을 유지하는 지침으로 삼게 했다.
그러나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한 정략결혼은 왕권다툼의 씨앗이 되었다. 2대왕인 혜종에서, 정종, 광종, 경종에 이르기까지 왕권다툼 속에서도 왕권을 안정시키려 노력한 시기였다. 성종에 들어서 비로소 안정기를 맞이한다. 성종은 광종이 귀족세력을 억제하는 목적으로 만들었던 노비안검법을 없애고, 노비환천법을 실시하여 오히려 귀족세력을 끌어안았다. 대신에 유학을 장려하여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는 것으로 귀족세력을 억제하였다. 성종이 이런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유교 개혁론자인 최승로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유학자 최승로는 <정관정요>를 편찬하여 현종에게 바치기도 했다. 태조에서 경종에 이르기까지 5대 조를 논평한 것으로, 다섯 왕의 과를 경계하기 보다는 덕을 배워 왕도정치를 이루라는 내용이다.
‘태조에게는 넓은 마음과 포용력을 배우고, 혜종에게는 왕족 사이의 우애를 지키려는 마음을 배우고, 정종에게서는 사직을 보존하려는 의지를 배우고, 광종에게는 공평무사함을 배우고, 경종에게서는 현명한 판단을 배우라고 한 것이 다섯 왕에 대한 논평의 주제였다. 물론 각 왕의 잘못된 점을 밝히며 그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목종까지 7대 왕 중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성종과 목종이었다. 성종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왕도정치를 이룬 왕이다. 임종에 가까워 성종이 자리에 눕자, 신하들이 건강 회복을 위해 대사면령을 내리자고 한다. 이에 성종은 자신의 업적을 만들기 보다는 다음 왕이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도록 사양하는 초연함을 보인다.
반면, 목종은 가장 불우한 왕이다. 두 살에 아버지인 경종이 죽고 왕위에 올라서도 어머니 헌애왕후의 섭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헌애왕후는 김치양이라는 정부를 두어 아이까지 낳는다. 더욱이 아들인 목종을 죽이고 정부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 했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여불위나, 로마의 네로황제가 남긴 비극에 버금가는 비화가 우리 역사에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고려사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지 않은 까닭은 보수적인 역사가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밝히기에 껄끄러웠던 탓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목종은 동성애자였다. 목종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사랑한 ‘유행간’ ‘유충정’이란 사내들이 공공연하게 권력행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 것으로 보아, 고려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유로운 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자유분방한 모습은 역대 왕조의 왕후들에게도 찾아 볼 수 있다. 일단, 헌애왕후가 정부를 드린 것도 그렇지만, 성종의 첫째 부인인 문덕왕후 유씨가 성종과 재혼한 왕후라는 사실이 그렇다. 조선시대를 사고로 본다면 상상하가 어려운 일이다.
당시는 여인들의 재혼은 물론이고 이혼도 허용되었다고 한다. 또 문덕왕후 유씨는 할머니의 성을 따랐다. 고려시대는 여인들은 보통 어머니 성을 따르기도 하고 유씨처럼 아버지의 외가 성을 쓰기도 했다. 지금의 사회적 통념을 넘어선 고려의 사회상을 보면서, 조선의 500년 역사가 지금까지도 우리 고정관념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고려사에서 특이한 점은 왕족간의 결혼이 많았다는 거다. 심지어는 같은 삼촌간의 결혼은 물론이고 한 아버지에 배다른 남매간에 결혼도 허용되었다. 다만, 어머니가 같은 경우는 결혼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도 지금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종족의 순수성을 보존하여 기득권을 누리려는 목적으로 장려되었다고 한다.
<고려사 이야기>는 내용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서 잘 꾸며진 책이다. 해당시대의 세계 약사와 인물소개, 용어해설 따위 설명이 충실하며, 효과적으로 배치되었다. 다른 역사책들과 달리 왕조 중심으로 고려사를 다루고 있어 산만함을 피하고 맥락 잡는데 수월하다. 여기에는 왕과 왕후들의 계보도가 잘 정리되어 있어 한몫 한다.
왕들이 행한 정책 내용설명과 채택 배경설명은 암기식 역사에서 벗어나 이해하는 역사로 만들어 준다. 또, 역대 왕들을 평가한 문헌을 명시하여 신뢰성을 준다. 왕가의 비화를 솔직히 다루어 흥미롭다. 파란색 페이지에 단락을 보충 정리하고 있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요즘 출간되는 어린이 책들을 보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 지식을 전하는 책들이 전에는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실고 있었다면, 요즘 책들은 목표를 설정하여 저자가 전하고자하는 내용에 따라 정교하게 짜여진다. 이런 방법은 많은 정보를 담은 책보다 더 많은 것을 독자에게 남긴다. 아이들이 <고려사 이야기>를 통해 고려사를 깊이 있게 읽어, 암기하는 역사가 아니라 느낄 수 있는 역사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고려사 이야기 / 박영규 / 주니어 김영사 /쪽수 P175 / 값 9,500원
대상 6학년 이상 보기를 권합니다.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네이버에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