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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프롤로그와 구성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 지리학 교수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1998년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로 퓰리처상을 받은 인물이다. 최근작 <문명의 붕괴(원제 Collapse)>는 2004년에 출간되어 환경파괴와 전쟁 등으로 인한 현대사회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30쪽에 이르는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한 사회가 붕괴하는 다섯 가지 요인을 제시한다.
그것은 '환경훼손', '기후변화', '적대적인 이웃', '우호적인 이웃의 지원중단 혹은 지원감소' 그리고 '사회문제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다. <문명의 붕괴>는 이런 다섯 가지 요인에 기초하여 지금까지 지구 곳곳에서 생성-소멸하였던 여러 사회의 문명을 고찰-분석한다. 나아가 막강한 세계화의 추세를 경험하는 21세기 지구촌의 생존전략을 알려준다.
다이아몬드의 신작은 8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역작이다. 서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감사의 말'과 '참고문헌' 등이 몸체를 뒷받침한다. 저자는 미국인들이 익숙한 몬태나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붕괴한 과거사회를 천착한다. 그것에 바탕을 두고 그는 위기에 처한 현대사회를 조명하고, 미래를 위한 교훈을 설파한다.
과거의 교훈: 어떤 사회가 붕괴하였는가
<문명의 붕괴>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정보는 다양하며 풍부하다. 그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에서 시작하여 호주와 아시아의 일본과 중국을 거쳐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넘어 아프리카의 르완다와 북유럽의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까지 두루 섭렵한다. 길고도 광대한 지역과 시기를 천착한 이유를 저자는 매우 명징하게 밝히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세계의 붕괴가능성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어딘가에서 이룩한 성과에서 빠르게 배울 수 있고, 과거사회가 겪은 성공과 실패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을 누리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다시 말하면 과거에서 배우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 (41쪽)
다이아몬드는 붕괴한 과거사회의 본보기로 아주 작은 섬들, 예컨대 남태평양의 이스터 섬과 핏케언 섬, 뉴멕시코의 아나사지 문명 등을 살핀다. 반면에 그는 마야와 같은 대규모 사회와 문자기록이 충실하게 남아 있는 노르웨이령 그린란드를 고찰한다. 무너진 사회뿐 아니라, 아이슬란드나 뉴기니 및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처럼 성공한 사회도 다루고 있다.
저자가 도달하는 붕괴의 원인분석은 사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붕괴원인은 단 하나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복합적인 상승작용을 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으로 드러난다. 이스터 섬과 마야, 타코피아 등에서는 환경과 인구문제가 내란과 전쟁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그는 말한다. 아나사지 문명붕괴의 교훈에 대한 지적은 음미할 만하다.
"인간이 환경에 미친 영향과 기후변화가 교차될 때, 환경과 인구문제가 전쟁으로 발전할 때, 복잡한 인간사회가 자급자족을 할 수 없어 수입과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때, 그리고 인구와 힘에서 사회가 절정에 이른 후 급속히 몰락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나사지 문명이다." (196-197쪽)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변화: 붕괴를 막는 하나의 방법
저자 스스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환경 결정론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환경훼손을 예방하면서 환경친화적으로 자원을 개발하고 채취하는 기업과 협회들의 성공사례까지 수록하고 있다. 이것에 근거하여 다이아몬드는 대중의 인식변화와 최소한도의 행동을 요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인간의 사고방식이 붕괴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노르웨이령 그린란드가 몰락한 원인을 <문명의 붕괴> 저자에게서 들어보자.
"만일 그들이(그린란드에 정착한 유럽인들이) 생물학적인 생존만큼 사회적 생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면 교회에 투자하는 시간과 자원을 줄였을 것이고, 이누이트족을 모방하거나 그들과 결혼했을 것이다. 요컨대 유럽인보다 더 유럽인처럼 처신한 까닭에 그들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생활방식의 파격적인 변화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47쪽)
그린란드로 이주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럽에 두었다. 시간이 흘러갔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은 확고부동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경쟁관계에 있던 이누이트족에게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 소중화(小中華)를 자랑스레 표방하면서 끝없이 중국을 모방하려 했던 조선시대 사대부계층과 권력집단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불과 27년 전에 백호주의를 포기한 호주의 늦었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지적하면서 책의 저자 다이아몬드는 가치관의 변화, 즉 사고방식의 전환을 넌지시 피력한다.
"반드시 종교가 아니더라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집요하게 매달리는 세속적인 가치의 본보기는 수없이 찾을 수 있다. 한 사회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어떤 가치관을 고수할 것인지, 어떤 가치관을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으로 대체할 것인지 현명하게 판단하는데 있는 듯하다." (591-593쪽)
현대사회와 환경: 세계화와 관련하여
<문명의 붕괴>에서 저자는 현대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열두 가지 환경문제를 제시한다. 그것은 삼림, 수산자원, 야생생물종과 개체군 및 유전적 다양성, 농경지로 인한 토양침식, 석유나 석탄 같은 주요 화석연료 에너지원, 청정한 민물, 햇빛에너지, 공해배출 화학물질, 각종 외래종의 유입, 지구온난화, 인구증가, 인구증가로 인한 영향 등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환경문제와 맞닥뜨리고 있는가. 특히 선진국 문턱에 서 있는 우리로서는 저자가 지적하는 제1세계 문제를 강 건너 불로만 여길 수 없는 형편이다.
"일인당 환경훼손, 즉 소비하는 자원의 양과 배출되는 쓰레기양은 나라별로 천차만별이겠지만, 대체로 제1세계가 높고 제3세계는 낮은 편이다. 일인당 화석연료를 비롯한 자원소비량과 쓰레기 배출량을 평균적으로 계산하면 미국, 서유럽 및 일본주민들이 제3세계 주민들보다 양자 모두에서 32배 가량 높다." (678쪽)
오늘날 이른바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심각한 환경과 사회문제에 대한 다이아몬드의 지적은 통렬하기까지 하다.
"세계화는 한층 개선된 범세계적인 의사소통을 뜻할 뿐이다. 달리 말하면 모든 것을 쌍방향으로 주고받는 세계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환경훼손과 인구과밀로 허덕이는 나라들의 문제가 세계화 덕분에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회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의 위기가 곧 세계의 위기인 것이다."(710-712쪽)
글을 맺으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소리도 없이 홀로 붕괴해갔던 이스터 섬이나 아나사지 혹은 마야왕국처럼 다른 지역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사라지는 문명이나 국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문제는 더 이상 남의 나라 문제만이 아닌 것이다. 제1세계로 유입되는 제3세계 출신자들의 양과 속도에는 가속페달이 달려 있다. 국경 없는 노동자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우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 그 가운데서도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개인의 가치관과 의식, 사회와 국가의 정치적 결단과 의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면서도 자식세대가 앞으로 50년을 살아가야 할 세계를 훼손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당면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지다. 해결책은 지금도 있다. 정작 필요한 것은 해결책을 적용하려는 정치적 의지다." (704-717쪽)
날마다 우리가 소모하고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돌아보면서 어느 선까지 소비가치와 생활수준을 양보할 수 있을 것인지 저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와 같은 근본적인 자세와 입장변화를 염두에 두고 우리가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환경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할 때에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미래의 엄청난 재앙을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문명의 붕괴 Collapse>, 과거의 위대했던 문명은 왜 붕괴했는가,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김영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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