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나무들은 적게는 수백 년에서 많게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나이테에 간직하고 있는 고목(古木)들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건너오면서도 아직까지도 생명을 잃지 않고 매년 봄이면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천연기념물 나무 앞에서 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에 비하면 기껏해야 100년을 넘기기 어려운 우리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초라한가!
하지만 우리가 느끼게 되는 이러한 자연의 경이나 인생무상(人生無常)은 천연기념물 나무들의 속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친근하고 따스한 느낌으로 우리의 가슴을 채워준다. 천연기념물 나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우리 인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희로애락의 사연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자기 앞으로 등기된 땅을 소유하고 있어서 매년 세금까지 내고 마을의 학생들에게 장학금까지 주고 있는 소나무(천연기념물 제294호 경북 예천군 감천면의 석송령)의 유쾌한 미담이 있는가 하면, 남북 분단으로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 북에 두고 온 아내를 늘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홀아비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4호 인천 강화군 서도면의 은행나무)의 애달픈 사연도 있다.
천연기념물 나무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닮게 된 것은 그들의 탄생이 사람의 손에 의한 것이고 커나가면서도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는 망국의 한을 이기지 못해 금강산으로 향하던 도중에 용문사에 잠시 들른 마의태자가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튼 것이라고 한다.
또한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본관 마당에 있는 백송(천연기념물 제8호)은 김종서 일가의 피로 얼룩진 계유정난과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풍양 조씨의 세도 정치와 안동 김씨를 제거하기 위한 대원군의 왕정복고 모의 등 파란만장한 조선 600년 역사의 현장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자라난 나무이다.
이처럼 왕족이나 귀족 또는 학자들과 같이 역사에 이름이 전해지는 위인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천연기념물 나무들도 있지만, 가진 것 없고 기댈 데도 없는 일반 서민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나무들도 많이 있다. 전북 진안군 마령초등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 300살 먹은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214호)가 바로 그런 나무들 중의 하나이다.
옛날 마령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죽을 때마다 그 아이의 무덤 곁에 이팝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다고 한다. 5월 중순이 되면 새하얀 꽃잎들이 피어나 연초록 나뭇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를 완전히 뒤덮어 버리는 이팝나무의 꽃은 멀리서 보면 마치 그릇에 흰 쌀밥이 수북하게 담겨진 것처럼 보인다. 즉 어린 자식을 땅에 묻으며 이팝나무를 함께 심었던 이유는 한번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하고 죽은 아이의 영혼이 저승에서나마 '이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눈물겨운 마음씀씀이였던 것이다.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의 지은이 박상진 교수는 천연기념물 나무가 품고 있는 이러한 갖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나무와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때로는 천연기념물 나무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이 겪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슬쩍 풀어놓기도 한다. 그 음성이 손자를 앞에 두고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할아버지처럼 한없이 순박하고 정겹다.
하지만 그는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마침내는 분노하는 모습도 가끔씩 보여주는데, 그럴 때면 괜히 우리의 마음도 뜨끔해진다. 추운 겨울날 그가 강화 갑곶리에 있는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8호)를 보러 가기 위하여 택시를 잡아타고 행선지를 말해 주었을 때, "예? 갑곶에 탱자나무가 있었나요?"라고 반문해 그를 실망시켰던 택시 기사는 바로 천연기념물 나무들에 너무나도 무지한 우리의 초상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자꾸 옆으로 퍼지는 나무줄기를 고정시킨답시고 굵은 쇠꼬챙이를 줄기마다 사정없이 박아두고 서로 묶어둔 전북 무주군 설천면의 반송(천연기념물 제291호) 앞에서 그가 토해내는 안타까움과 분노는 멋진 사진을 찍는답시고 울타리를 넘어가 나무의 가지에 올라타고 앉아 사진을 찍곤 했던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겠지만 당하는 나무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이처럼 박상진 교수는 천연기념물 나무들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와 사연들을 알아듣는 밝은 귀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없이 참고 견디고 있는 무시와 고통까지도 알아보는 맑은 눈까지 지니고 있다. 즉, 그는 천연기념물 나무들과 속 깊은 대화를 주고받고 마음 나누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이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경지이다.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들어야 할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나무 사랑의 이야기이다.
3.
나무 사랑은 나무를 심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리라. 그러니 올해 식목일을 맞이하는 내 마음이 어찌 예년과 같을 수 있으랴. 더군다나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을 읽으면서,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식목일의 유래까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광복 다음 해인 1946년 정부는 처음 식목일을 정하면서 어느 날로 할지 고심했다. 역사적인 선례를 찾았더니 조선 9대 임금 성종이 농사를 장려하기 위해 1493년 4월5일 직접 동대문 밖 선농단(先農壇: 사적 제 436호)에 가서 밭 가는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 마침 이 날은 청명과 한식날 전후이므로 조상에게 성묘하고 주변에 나무를 심기에도 좋은 때여서 4월5일을 식목일로 정했다. (27쪽에서)
선농단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제사가 끝나고 난 후 구경나온 백성들에게 대접한 고깃국이 우리가 요즘도 즐겨 먹는 설렁탕의 유래가 되었음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선농단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설령 위치를 알고 있더라도, 선농단을 지키고 서 있는 향나무(천연기념물 제240호)가 500살이나 된 천연기념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풍년을 기원하는 임금의 사랑을 담아 백성들에게 베푼 음식인 설렁탕의 유래와 사람이 나무 사랑을 실천하는 첫걸음인 식목일의 유래가 모두 서울 제기동의 선농단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이 예사롭지 않은 우연이 내게는, 나무 사랑이 곧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여겨져서 의미심장하다.
그러니 이번 주말에는 오랜 세월 말없이 선농단을 지켜온 향나무를 찾아가 그 맑은 향기에 취해보자. 집에서 가까이 있는 천연기념물 나무를 찾아가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리고 올해 식목일에는 식목행사장을 찾아 나의 나무를 심도록 하자. 누가 알겠는가, 내가 오늘 심는 나무가 먼 훗날 천연기념물 나무로 지정되어 나의 이야기를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주게 될 지.
덧붙이는 글 |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
ㅇ박상진 지음
ㅇ랜덤하우스중앙 펴냄
ㅇ2004년 3월 29일 초판 1쇄
ㅇ정가 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