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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때도 지금도 150억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북특사와 같이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위해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도, 지금도, 다음에도 영광스럽게 수행할 것입니다."

2000년 4월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 2003년 7월부터 3년째 재판을 받고 있는 박지원(사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4일 열린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의 최후진술에서 150억원 수수혐의를 부인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박 전 장관은 150억원 수수혐의와 병합된 대북송금 혐의에 대해서 "나는 지금도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4·8 남북특사 합의서의 주역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실정법을 위반했다면 모두 나의 책임이라고 다시 한 번 밝힌다"고 강조했다.

대북송금 혐의는 실정법 위반을 시인하면서도 뇌물죄(150억원) 기소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떳떳하게 '무죄'를 선고받아 6월로 예정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을 다시 한번 '영광스럽게 수행'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른 재판 때와 마찬가지로 이날 공판에도 비서관을 보내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검찰은 서울고법 형사2부(이재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여전히 박씨의 유죄를 주장하며 징역 20년에 추징금 148억5000여만원을 구형했다.

중수부 과장 시절에 현대비자금 사건 주임검사로서 이날 검찰측 논고(論告)를 맡은 남기춘 청주지검 차장검사는 박 전 장관의 특가법상 뇌물·알선수재, 남북교류협력법·외국환관리법 위반, 권리남용 등 5개 혐의 중 뇌물수수 혐의를 집중 부각시켰다.

검찰 측은 이날도 150억원 수수혐의와 관련, 1억원짜리 무기명양도성예금증서(CD) 150장을 전달했다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법정증언과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김영완씨(해외도피중)의 진술서 등이 박 전 장관의 혐의사실을 입증하는 직접 증거라고 주장을 되풀이했다.

검찰, '영사에 의한 김영완씨 진술청취' 보충증거로 제시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2004년 11월 12일 이 사건을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 가운데 ▲이익치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어 증거능력이 없고 ▲김영완씨가 작성한 진술서는 증거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 기재내용도 신빙성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결국 검찰이 그동안 파기환송심에 제시한 보충증거로는 사실상 김영완씨가 지난해 주일(駐日) 한국대사관에서 작성한 이른바 '영사에 의한 진술청취'가 유일한 셈이다. 검찰은 해외체류중인 김영완씨가 변호인을 통해 제출한 진술서가 대법원에서 증거능력을 배척당하자, 임의성을 보강하기 위해 주일영사 입회하에 일본에 머문 김씨로부터 진술서를 받았다.

그러나 변호인 측은 최후변론에서 "뇌물수수 혐의의 쟁점은 ▲피고인이 고(故) 정몽헌 회장에게 김영완씨를 통해 뇌물을 요구했는지 ▲이익치씨를 통해 CD 150장을 받았는지 ▲김영완씨에게 CD를 보관·관리시켰는지 등 세 가지인데,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은 논리를 뒤집는 새로운 증거는 파기환송심에서 제시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소동기 변호사는 특히 "한·일간에는 범죄인인도협약이 체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범죄인(기소중지자)인 김영완씨가 일본에 체류하고 있는데도 그의 신병을 확보할 권리와 책임을 포기한 채 영사에 의한 진술청취라는 궁여지책까지 동원했다"면서 "검찰이 오로지 피고인에 대한 공소유지에 지나치게 집착해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검찰과 박 전 장관 측은 이익치씨 진술의 신빙성과 증거능력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신경전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박 전 장관은 최후진술에서 "국민의 정부 초기부터 이미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은 주가조작 등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인 중의 한사람으로 청와대에 보고된 사실이 있다"면서 "그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금품을 전달받을 생각을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해 이씨의 진술이 거짓임을 주장했다.

박씨는 특히 "이익치는 당시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었고 다른 몇 건의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다"면서 "특검이 이익치의 기소의견을 검찰에 제출하였지만 검찰에서 기소하지 않은 것을 지금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검찰과 이씨 사이에 이뤄진 '플리바기닝' 의혹을 제기했다. 박씨는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이익치의 막대한 해외재산 도피문제를 거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남기춘 검사는 "피고인이 언론계에 구축해 놓은 다양한 인맥을 활용해 이익치 회장이 거짓말쟁이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이익치 회장 본인이 각종 소송을 통해 모두 심판받게 할 것"이라고 밝혀, 이익치의 거짓진술과 해외재산 의혹을 파헤친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박 전 장관 또한 "일부 언론에서 이익치의 막대한 해외재산 도피문제를 거론하는 것과 관련, 검찰은 마치 내가 언론 플레이를 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나는 내 사건 발생 이후 이 사건과 관련 기자와 접촉한 일이 한 번도 없다"면서 "이는 나와 해당 언론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씨는 검찰이 광범위한 계좌추적 과정에서 밝혀낸 기업인 2명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분의 기업인으로부터 비록 후의였지만 금품을 수수한 것은 사실이다"면서 "검찰조사 처음부터 이를 인정하였고 당시 공직자로서 적절치 않은 처신이었음을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씨는 "150억 뇌물수수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나는 150억원을 누구에게도 요청한 적도 없고 받지도 않았으며 보관시킨 적은 더더욱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송두환 특검 "국가 위해 봉사할 기회 있길 기대"

그는 이어 "수감 투병중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잠언시집을 감명 깊게 읽었다"면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경제인의 후의(1억원)를 거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친목모임인 주암회 회장이던 손길승 전 SK 회장 등으로부터 주암회 운영비 등으로 1억원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150억원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그러나 대북특사와 같이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위해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도, 지금도, 다음에도 영광스럽게 수행할 것"이라고 최후진술을 끝맺었다.

한편 이날 법정에 나온 송두환 대북송금 특별검사는 재판이 끝난 뒤에 법정 복도에서 박지원 피고인을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다"면서 "국가를 위해 봉사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덕담을 건네 눈길을 끌었다.

박 전 장관은 대북사업 추진과 관련해 현대그룹으로부터 15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2003년 6월 대북송금 특검에 구속되어 1·2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지만, 대법원은 2004년 11월 증인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법에 돌려보냈다.

선고 공판은 5월 4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

다음은 박지원 피고인의 최후진술 전문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먼저 재판부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에게 치료를 받게 배려해주셔서 생명과 함께 세상을 바로 보게 하셨습니다. 담낭제거, 담도보조관 설치, 심장, 허리디스크 그리고 두눈을 수술할 수 있었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그나마 현재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2002년 12월 대선 후 저는 3년 3개월이 넘는 오늘까지 많은 시련을 감내하며 제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제가 받고 있는 혐의는 사실인 것도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그에 관해 약간 길겠지만 재판장님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최후 진술을 하고자 합니다.

먼저 저는 알선수재에 관한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두 분의 기업인으로부터 비록 후의였지만 금품을 수수한 것은 사실입니다. 검찰조사 처음부터 이를 인정하였고 당시 공직자로서 적절치 않은 처신이었음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과거 잘못된 정치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이한 생각의 결과이기에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투명한 정치는 시대의 흐름으로 아무도 거역할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150억 뇌물수수 혐의는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150억원을 누구에게도 요청한 적도 없고 받지도 않았으며 보관시킨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2003년 6월 구속기소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당시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문제로 정몽헌 회장을 수시로 만날 수 있었던 제가 정회장이 아닌 잘 알지도 못하는 이익치를 통해 금품을 받았다는 검찰의 주장은 상식에도 벗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정부 초기부터 이미 현대증권 이익치회장은 주가조작 등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인중의 한사람으로 청와대에 보고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금품을 전달받을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익치는 특검에서, 검찰에서, 국회 국정감사에서 심지어는 이 법정에서도 진술을 오락가락하며 수차 번복했습니다. 주머니속에 들어가는 CD를 저와 플라자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었다면서 계동에 있는 현대사옥에서 사장으로부터 받아 보관하지 않고 밤 8시 워커힐 공원앞에까지 사장에게 가지고 오라 해서 받았다는 상식밖의 진술을 한 바 있습니다. 플라자 호텔 주차 장소만 해도 4-5차례 바꾸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이익치가 그 큰돈을 전달한 날짜만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2000년 대북특사로 싱가폴, 상해, 북경을 다닐 때 이익치는 김영완이 저와 동행했다고 법정에서 주장했습니다. 정몽헌도 김영완을 회담 장소 근처에서 만난 적이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조회 결과 김영완은 네차례 모두 홍콩 등을 이익치와 함께 경유하며 같은 비행기, 같은 호텔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일본인 요시다와의 회동에 대해서도 이익치는 당시 요시다는 한국에 오지도 않았고 현재 연락도 안된다고 법정에서 진술했지만 저의 변호인의 신문에 검찰에서 일본으로 전화하여 요시다와 통화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주장한대로 출입국조회 결과 요시다는 2000년 2월 초 입국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이익치는 당시 구속되었다가 석방되었고 다른 수건의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특검이 이익치의 기소의견을 검찰에 제출하였지만 검찰에서 기소하지 않은 것을 지금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이익치의 막대한 해외재산 도피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제가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언론에서 이익치의 막대한 해외재산 도피문제를 거론하는 것과 관련 마치 제가 언론 플레이를 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저는 제 사건 발생 이후 이 사건과 관련 기자와 접촉한 일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검찰의 주장은 저와 해당 언론인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익치는 지금 현재까지도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익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었으면서도 플라자호텔에 간 적이 한번도 없다는 상식밖의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김영완은 2003년 3월 특검이 시작되기 직전에 출국했습니다. 출국직전 가지고 있던 여권이 만료되기도 전에 새여권을 발급받았으며 변호사들과 골프회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변호인을 선임했고 그들은 김영완이 해외에서 진술서를 작성할 때마다 외국으로 출국하여 진술서 작성을 도왔습니다. 여기서부터 의문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제가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해서 정몽헌에게 금품을 요구했다고 김영완도 정몽헌도 진술했습니다. 다시 카지노 허가를 위해 저에게 금품을 주었다고 진술을 바꿉니다. 당시 저는 문화관광부 장관으로서 어떠한 카지노 사업장 허가도 없다고 밝혔고 그 내용이 재판부에 제출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검찰에서 입수한 현대의 업무일지에도 문화관광부로부터 카지노 사업장허가가 불가하다는 공문을 접수하고 현대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을 통해 카지노 허가를 통일부로부터 받기위하여 통일부를 접촉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기록 또한 재판부에 제출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재벌이라고 하지만 150억원이라는 거금을 2000년 4월에 저에 주었다 하면서 그 후 국민의 정부가 끝나는 3년 동안이나 단 한번도 저에게 직접 거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몽헌은 저에게서 돈을 달라는 말은 들은 적도 없고 김영완이 요구를 했으며 150억원 CD를 저에게 전달된 후에도 저를 수차 만났지만 저에게서는 아무런 감사의 말도 듣지 않았고 오직 김영완에게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받았다는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관광부 장관 퇴임후 저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특보, 비서실장을 역임했습니다. 국정전반을 총괄하는 이 당시에도 카지노에 대해서 논의나 관계기관간의 회의도 단 한 차례 열린 사실이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제가 150억 CD를 받았다면 왜 하필이면 김영완에게 맡기겠습니까. 부피가 큽니까. 제가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3년이 지나도록 김영완을 믿고 그런 막대한 돈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입니다.

김영완이 주장한대로 제가 그에게 돈을 보관시켰다면 왜 그 많은 사업을 두고 김영완은 가족과 함께 해외로 도주했겠습니까.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하면서 특검에도 검찰에도 법정에도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가족과 함께 외국에서 있으면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변호인을 선임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자술서를 제출한다면 누가 법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에서도 김영완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영완의 변호인을 통해서만 연락이 되고 심지어 변호인도 김영완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만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보고에 따르면 검찰에서 요구한 필요한 사항을 김영완의 변호인은 1시간이내에 검찰에 제출한 적도 있습니다. 김영완은 출국후에도 국내의 같은 주소지로 10여건의 재판을 진행을 했습니다. 자기에게 유리할 땐 언제든지 연락이 되고 불리하면 소재불명이 되는 편리한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김영완은 권노갑 사건에 공범으로 기소중지된 자입니다. 검찰에서는 저에 관한 사건을 조사하면서 김영완을 단순 참고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파기환송후 현 재판부에서 두 번의 김영완 차명계좌 압수수색 영장청구에서는 저와 공범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재판장님께는 참고인이라 하고 영장담당판사님에게는 공범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동일사건 동일인물을 이렇게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홍콩정부 금융정보분석원에서는 2005년 3월 우리 정부 금융정보분석원에 김영완의 수상한 송금사실을 통보했습니다. 우리 정부 금융정보분석원은 대검 중수부에 이 사실을 이첩했으며 대검 중수부에서는 김영완의 해외체류로 2005년 7월에 내사를 중지했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대검 중수부에서는 일본 주재 한국공관에서 제 사건으로 2005년 10월 소위 영사신문을 했습니다. 홍콩정부가 김영완의 수상한 송금사실을 통보한 사실을 보도한 것도, 검찰이 주장하듯 언론 플레이의 결과입니까?

검찰에서는 김영완 해외도피후 인터폴에 수사의뢰도 하지 않고 단순히 미국정부에 주소확인 의뢰를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김영완은 미국에 체류하지 않고 있다고 검찰은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영사신문의 법적문제는 이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례로 지적된 바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재판정에서 책임있는 진술을 해야 하고 피고인의 탄핵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는 체포되어야 할 기소중지자가 한국공관내 검사앞에서 영사신문을 받은 후 다시 도피하는 것은 상식에도 법에도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완은 제가 수첩을 보이면서 돈이 필요할 때마다 1-2천만원을 타다 썼다고 했습니다. 자기돈을 맡겨놓고 구차하게 수첩까지 보이면서 돈은 타쓰는 일은 누구도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저에게 주었다는 현금 전달자는 이미 죽은 사람을 내세웠습니다. 백만원권 자기앞 수표 2-3억원을 저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표추적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50억원 CD는 2000년 4월 중순 저에게 전달되었다고 하였지만 검찰의 조사 결과 이미 10억원은 동년 4월초에 유통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검찰은 150억 CD추적결과를 요구하는 저의 변호인 말에 법정에서 파기되었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백만원권 수표 1천6백여장을 김영완의 차명계좌에서 추적한 결과 검찰은 그 중 단 11장이 언론인 6명에게서 나왔다며 마치 제가 사용한 것처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변호인은 11장 이외의 나머지 수표추적 결과를 요구했지만 검찰은 사생활 보호라며 이 법정에서 거절했습니다. 이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50억중 단 천백만원이 문제가 되어 오늘까지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에서 이와 관련하여 신청한 모든 증인들은 저에게서 받지 않았다고 진술하였고 마지막으로 3백만원도 저와 무관함이 오늘 밝혀졌습니다. 이미 149억 9천7백만원이 저와 관련 없음이 밝혀진 상태에서 오늘 마지막 남은 3백만원과 관련하여 그 사이 몇차례 이 사실을 밝힌 증인의 서면 사유서를 확인하면서 저는 비감함을 금치 못합니다.

2004년 11월12일 대법원에서는 본 사건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그 후 1년 5개월동안 12번째 이 법정에서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검찰의 몫이지만 이익치의 진술의 신빙성 문제나 김영완 진술의 법적인 문제는 물론 수표추적 결과나 모든 증인들의 법정진술 결과는 검찰의 주장이 근거없는 것임을 증명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 오히려 하지 않은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 저로서는 필요하고도 충분하게 저의 주장을 모두 입증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끝으로 대북송금에 대해서 말씀 올리겠습니다.

대북송금 특검은 처음부터 잘못된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특검에서도 북한에 제공된 5억달러는 현대가 상업베이스로 제공하였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현대의 금융지원에 대해서는 당시 대우 부도사태후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국무회의, 경제장관회의 등 모든 기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합의된 바 있는 사안입니다. 저도 그런 정부내 공감대에 동의를 표시한 것입니다.

본 사건에 문제된 산업은행 4천억 대출문제는 현대에서 완전 상환하였고 정부나 개인 그 누구도 피해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2000년 당시 저는 4천억원 대출문제 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2002년 10월 정기국회에서 한 야당의원이 주장하여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산업은행 금감원 간부는 물론 소위 롯데호텔 조찬회동에서도 제가 관계했다는 어떤 진술이나 증거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회사를 퇴사한 이익치가 공적자금 투입에 제가 간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무맹랑한 거짓입니다.

외환은행의 송금에 대한 국정원 개입에도 제가 무관함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대북특사로서 협상과정 등 일부분에 대해 저는 법정에서 진술을 거부하였습니다. 저의 책임을 면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조국 대한민국과 민족의 장래, 통일이라는 국익을 생각할 때, 그리고 외교관례상 언급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진술을 거부하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4.8남북특사합의서의 주역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정법을 위반했다면 모두 저의 책임이라고 다시 한번 밝힙니다.

저는 재판부의 배려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투병중 지인으로부터 시인 류시화씨가 엮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잠언시집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경제인의 후의를 거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150억원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북특사와 같이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위해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도 지금도 다음에도 영광스럽게 수행할 것입니다.

제게 장시간 진술기회를 주신 재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2006. 4. 4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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