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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운 상상
그럼에도 번역가들이 있다. 자리를 지키는 것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고달픔을 딛고 그들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 <번역은 내 운명>에서 만난 여섯 명의 번역가, 책 제목 그대로 '번역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강주현, 권남희, 김춘미, 송병선, 이종인, 최정수씨이다.

그동안 번역가들의 고단한 처지, 번역의 문제를 지적하는 책들은 많았다. 하지만 번역가들의 속내를 그들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드물었다. 그렇기에 이 땅에서 번역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는 6인의 전문 번역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만남부터 설레게 한다. 그럼 번역가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짝 엿보도록 하자.

첫 번째로 만날 수 있는 이는 강주현이다. 촘스키 작품의 번역가로도 유명한 그는 번역가이자 에이전트로 활동 중이다. 강주현은 <번역은 내 운명>에서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그는 번역해도 “잘 먹고 잘 산다!”고 말하며 번역가로 사는 소소한 즐거움을 털어놓는다. 소소한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하루 8시간을 자면서 서재와 거실 사이를 들락대면서 텔레비전 보는 재미가 있고 새벽에도 술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다.

너무 소소하게 보이는가? 어쨌든 이 모습은 골방에서 산더미 같은 책을 쌓아두고 있을 번역가의 풍경만 생각하던 이들에게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잘 나가는 번역가 대열에 속한 경우라고 해도 말이다. 두 번째로 만날 수 있는 이는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권남희는 어떨까? 권남희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낸다. 애 딸린 이혼녀가 된 과거를 꺼낸 것이다. 왜 이것을 꺼낸 것일까? 그토록 어려운 시기, 먹고 살 걱정을 하던 시기에 번역을 했고 충분히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번역이 쉽다는 말일까? 그건 절대 아니다. 권남희는 “이판사판 목숨 걸고” 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여 “막혀 있는 미래”를 뚫어보라고 말한다. 유명한 번역가가 이렇게 말했다면 뻔한 소리로 여겨졌을 테다. 하지만 권남희이기에 그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아무리 고달파보여도 뜻이 있는 곳이 길이 있다는 것일까? 그렇게 권남희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면서 좋은 방법도 알려준다. 인터넷에서 외국 사이트 직접 들어가서 작품을 찾고 검토서를 작성해서 출판사에 보내라고. 가만히 앉아서 토끼가 오길 바라지 말고 직접 가서 잡으라는 말일 게다.

다음으로 만날 수 있는 김춘미와 송병선은 어떨까? 김춘미는 좋은 번역을 이야기해주며 일본 문학이 각광받게 된 과정을 설명해준다. 번역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귀기울여 들을 귀한 내용을 들려주는 것인데 이는 송병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남미 작품을 주로 번역하는 송병선은 말린체를 소개하고 있다. 송병선은 왜 말린체를 이야기하는가?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번역가라고 할 만한 말린체는 ‘반역자’와 ‘창조자’의 행위를 동시에 보여줬다.

송병선은 그것을 통해 번역가들이 문화들의 가교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자’라는 점을 밝히며 번역가의 정체성, 나아가 그 중요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번역가들 입장에서 보면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할 테지만 동시에 큰 격려가 되는 말일 게다.

이종인과 최정수는 어떨까? 이종인은 번역가의 고단함에 대해 꽤 상세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특히 원고료에 관한 것이 그것인데 이 내용은 번역가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도움이 된다. 번역가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종인이 고단한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이종인은 번역가의 즐거움, 특히 언어를 표현하는 것을 말하는데 듣고만 있어도 그 재미가 쏠쏠해 보인다. 이는 힘들어도 번역가의 끈을 놓지 않은 이유를 엿보게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이름을 알려준 최정수는 자신이 번역한 작품들을 이야기하는데 주력했다. 자부심이랄까. 작품을 언급하는 말 하나하나에 뿌듯함이 보인다. 아마도 번역가로서 가장 기쁜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이상 여섯 명의 번역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든 번역가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고단한 처지에서 일하는 이들도 많을 것인데 그런 면에서 <번역은 내 운명>에게는 그들에게 즐거운 지향점이 될 것이다. 물론 그것보다 더 큰 의미는 대중에게 번역가들의 삶을 이야기해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번역가를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웠던가. <번역은 내 운명>은 다소나마 그들의 모습을 엿보도록 해주고 있다. 비록 이것이 단편적인 모습일지라도 그것으로 족하다. 간만에 번역가들의 즐거운 표정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나아가 번역의 중요성을 두 번, 세 번 알려주고 있으니 대중에게 번역가를 소개하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번역은 내 운명 - 번역이 좋아 번역가로 살아가는 6人6色

이종인 외 지음, 즐거운상상(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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