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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아직 이른 봄, 지리산에 대규모의 야생 금낭화 군락지가 있다며 꽃이 피면 꽃 구경을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어제 다시 꽃이 피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화개골로 금낭화를 맞으러 나섰다.
섬진강변엔 벚꽃이 가득 피어 평상시엔 뻥 뚫린 도로가 꽉 막혀 있다. 섬진강변에 늘어선 벚꽃 나무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분홍 꽃잎을 보며 금낭화를 만나러 간다. 꽃 길을 달리면서 다른 꽃을 만나러 가니 벚꽃을 배신하고 바람을 피우는 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벚꽃은 집 앞에도 많은데 야생 금낭화는 찾기도 어려우니 말이다. 사실 금낭화는 정원이나 화원에서 쉽게 볼 수 있어 야생 들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분들도 많은데, 금낭화는 야생의 꽃을 화단에 옮겨 심은 엄연한 야생화다.
정체되는 길을 겨우 빠져 나와 금낭화 군락지의 지인이 사는 곳에 도착했다. 지인이 직접 키운 녹차로 만든 발효차 한 잔을 마시고 금낭화가 있다는 군락지로 향한다. 가파른 산길을 20여분 오르니 100여 미터에 이르는 대규모 군락지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금낭화는 마치 붉은 주머니를 단 어여쁜 처자들이 봄 마중을 나온 것 같은 모습을 하고 계곡 가득 피어 있었다. 어느새 크기도 40-50cm까지 자라고 꽃도 주렁주렁 달려 있다. 보통 금낭화는 5-6월에 핀다고 알려져 있지만 따뜻한 지리산 남쪽이라 그런지 4월초에 벌써 꽃을 피운 것이다.
금낭화(錦囊花)라는 이름은 비난 주머니 꽃이라는 뜻인데 옛날 처녀들이 가지고 다니던 비단 주머니와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붉은 4장의 꽃잎이 꽃술을 감싸듯 심장 모양으로 피어 있는데 붉은 주머니들이 활처럼 긴 꽃대에 줄지어 피어 종을 달아 소리를 내는 악기처럼 보인다. 손으로 '톡'하고 건들면 예쁜 소리를 내며 금세 아름다운 연주라도 할 것 같다.
지인에 말에 따르면 군락지는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마른 계곡에 집중적으로 피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금낭화의 씨앗이 계곡을 타고 내려오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금낭화는 양지보다 음지를 좋아하는데, 이 계곡은 동쪽에서 시작해서 서쪽으로 흐르고 양쪽에 가파른 산이 있어 금낭화가 자생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 골짜기에 금낭화가 군락지를 이룬 것은 몇 해 전의 일인데, 군락지의 규모는 해가 거듭할수록 넓어지고 있어 이 자생군락지의 크기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산은 지인의 사유림인데 앞으로도 군락지를 자연 그대로 보존할 생각이며 외부에는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이 곳이 만약 외부인에게 알려지면 몰래 들어와 꽃을 캐가기 때문에 군락지를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위치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를 부탁했다. 그래서 자세한 지명과 지인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 더불어 사유림에 허락 없이 들어가는 가는 불법이며 산채는 절도에 해당하는 중죄다.
금낭화는 지리산이나 한라산 같은 산에 야생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산이 좋아서 산을 자주 찾는 기자 역시 산에서 금낭화를 만나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야생 금낭화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보이는 즉시 사람들이 캐가기 때문이다.
다행히 여기 금낭화 군락지는 마음 착한 산주를 만나서 잘 보존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산주의 넉넉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금낭화를 뒤로 하고 지리산을 내려왔다. 이 금낭화 군락지가 자연 그대로 오랫동안 보존 되기를 기원하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금낭화 군락지 보존을 위해 정확한 위치를 공개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