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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도 아토피가 없는 큰아이와 작은 아이는 달랐다. 오빠 밥그릇 앞에 있는 노란 계란후라이를 작은 아이는 언제나 군침만을 삼키며 바라봐야 했고, 우유도 마실 수가 없었다. 아이 병 고치려다 외려 아이를 망칠 것 같아 비싼 돈을 들여 알레르기 반응검사까지 했었다. 음식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에 그날 밤 계란파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인터넷에서 아토피에 관한 글을 공모할 때는 어디에도 하지못한 하소연을 하듯 구구절절 그 동안 고생한 얘기를 써서 은나노 코팅이 된 이불과, 집안을 소독해주는 서비스에 당첨되기도 했고, 선물이나 상품을 받을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아토피에 관련된 선물만 받다보니 내 집안엔 진드기 방망이에서부터, 이온 연수기, 오존이 나온다는 공기청정기까지 아토피 퇴치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의 온갖 것들이 쌓여 있다.
하지만 아이는 이런 엄마의 노력이 무색할만치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해두해 자라면서 자라는 부위만큼 아토피의 영역도 넓어지는 듯했다. 아토피연고는 채 한 달을 가지 못했고, 날마다 질펀하게 발라줘야 하는 아이용 로션은 이삼주에 한 번씩 가장 큰 걸로 사야 했다.
그 옛날 아버지가 태우시는 담배값이면 우리 식구도 남들처럼 잘 먹고 살 것만 같았고, 나도 남들처럼 하고 싶은 공부도 원없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딸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면 그야말로 웬만한 집 한 채는 샀을 듯도 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계절은 겨울과 황사바람이 부는 봄, 그리고 땀이 나는 여름에 찬바람 솔솔 나는 가을!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던 대한민국의 사계절이 아토피를 앓는 딸때문에 전부 싫어진 것이다.
아이도 나도 지쳐간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다섯 살밖에 안된 아이가 엄마 몰래 이불 속에서 긁으며, 때로는 긁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로 엄마의 눈치를 본다고 생각해보라. 긁지 말았으면 하는 엄마의 단속이 결국엔 눈치보는 아이로 만든 것 같아 가슴이 너무너무 아파온다.
그런데 얼마 전이었다. 그날도 나는 아이가 깊이 잠들 때까지 등을 만져주며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아토피 아이들에 관한 일들이 보도가 되고 있었다. 과자를 먹는 아이들이 아토피가 심하다는 말과 더불어 과자를 먹기 전과 먹은 후의 반응, 과자 속에 어떠한 색소가 들어가고 만드는 과정은 어떠한지를 자세히 보여주는 프로는 가히 과자가 한순간 입을 즐겁게 하고 허기를 채워주는 군음식이 아닌 아이들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이 입맛이 없을 때, 간식을 요구할 때 나 역시 아무 생각없이 과자를 들이밀었던 기억이 난다. 공으로 얻은 음식이 아님에도 티비를 보노라니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난 과자를 끊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을 때마다 얼마나 해줄 것이 없던지. 하지만 하루이틀 지나면서 이것저것 아이들을 위한 먹거리를 생각하다보니 의외로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간식거리들이 아주 많았다. 누룽지, 떡, 고구마, 감자, 부침개, 팝콘, 튀김, 만두 등등. 이 중에서도 내가 가장 즐겨 만드는 군음식은 바로 누룽지튀김이다.
처음엔 과자없이 과연 내가 아이들의 하루를 완성해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과자없는 날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이유는 푼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유 외에도 아이가 더 이상 긁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유가 꼭 과자때문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 이제껏 만 사년을 요즘처럼 긁지않고 잠든 날이 없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긁는다고 야단을 맞고, 언제나 긁어서 죄송하다고 그 작은 손바닥을 싹싹 빌던 풍경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누룽지를 만드는 그 번거롭고 귀찮은 과정을 이제는 행복의 스무고개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오늘도 나는 먹다남은 누룽지를 모아서 튀겼다. 그 위에 설탕을 조금 뿌려 아이들 앞에 내놓으니 딸아이 입이 금세 함지박만해진다.
"딸아! 엄마가 누룽지를 얼마든지 만들어 줄테니까 우리 앞으로는 긁지 않고 살아보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