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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5 장 단사애사(彖辭哀事)

다음날 떠날 것 같던 연병문은 무슨 까닭인지 미적거리다 사흘 후에 출발했다. 조사를 하러 떠나는 사람치고는 주변 정리나 미진한 일을 매끄럽게 정리했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는 천병정을 향해 오후에 출발한 일행은 세 대의 마차와 삼십 명이나 되는 호위무사를 대동한 위풍당당한 행렬이었다. 조사하러 떠나는 사람이 가지고 갈 물건이 무에 그리 많아 두 대의 마차에 짐을 실어 놓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기야 천관의 실세를 가진 인물이니 그럴 만도 했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북경 남로를 빠져나온 행렬은 북경을 벗어나자마자 남서쪽으로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호위무사들은 모두 무장을 하고 말을 타고 있었는데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훈련이 잘 된 군병 같았다.

마차의 휘장을 잠시 걷어 밖을 내다보던 연병문이 입가에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휘장을 닫았다.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음에도 안락하고 푹신하게 만들어진 자리에 느긋하게 등을 기댔다.

이제 황실에서 해야 할 자신이 맡은 역할은 모두 마친 셈이었다. 다시 북경으로 돌아올 때는 이 행렬보다 더욱 크고 화려하게, 그리고 만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운데 위풍당당한 모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천관을 틀어쥐고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이 만든 조직은 결정적인 순간에 움직일 것이고, 그는 상상만으로도 흐뭇했다.

“.............!”

그 순간 그의 귀로 호위무사들의 일정한 말발굽 소리가 아닌 귀에 거슬리는 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함태감이 사람이라도 보낸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자신을 뒤늦게 따라 오는 것일까?

그가 무심코 생각을 흘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갑자기 항문 쪽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두 눈을 부릅떴다. 이어 그의 자신의 상복부 쪽으로 삐쭉 솟아오른 칼날이 눈에 들어왔다. 피....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어찌된 일이지....? 이 고통은 무엇일까? 왜 눈에 어둠이 덮히고 있는 것일까?

덜컹---!

달리는 마차 문이 열렸다. 감히 누가...? 희미해지는 시야로 마차의 속도에 맞춰 말을 달리며 안을 바라보는 인물이 보였다. 사립을 깊게 눌러쓰고 있어 누군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고, 눈에는 자꾸 어둠이 내리고 있어 사물을 분간 할 수 어려운 상태였다. 더구나 마차 안으로 들어 온 인물은 거침없이 깡마른 손을 내밀어 죽어가는 자신의 목을 쥐어틀었다.

“잘 가거라. 네 놈을 이리 간단히 죽이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네 시신만큼은 개밥으로 던져줄 것을 약속하지.”

멀어져 가는 의식의 끝에 연병문이 뇌리에 떠올린 것은 오직 한 사람이었다.

(상대부..... 그가 살아 돌아왔다.......!)

더 이상 숨을 쉴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이미 연병문의 목뼈가 부러졌기 때문이었다. 연병문의 상복부에 삐쭉 솟아나왔던 칼끝이 사라지자 그의 몸은 스륵 옆으로 쓰러졌다. 무심한 행렬은 연병문의 죽음과 상관없이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일어난 이 사건은 곧 바로 스무 명이 넘는 황궁의 조신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나흘간에 걸쳐 괴이하게 잇달아 발생한 죽음은 많은 관료와 조신들을 공포에 빠지게 했다.

그들의 죽음은 각기 달랐다. 귀가를 하다가 부랑배들에게 맞아 죽은 자가 있는가 하면, 멀쩡히 집에서 애첩을 안고 방사를 하다가 복상사한 자도 있었다. 집무실에서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은 자나 술에 취해 연못에 빠져 죽은 자도 있었다.

사인은 분명했지만 이리도 갑작스럽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괴사라 할만했다. 허나 알만한 사람들은 그들이 왜 죽었는지 알았다. 다만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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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 안의 냄새는 아주 지독했다. 깨끗한 천으로 전신을 몇 번이나 닦아냈는지 모른다. 생사금침을 뽑아낸 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하지만 담천의의 모공에서는 땀이 나는 것처럼 여전히 거무스름하고 찐득거리는 액체가 모공을 통해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만하면 다행이었다. 생사금침의 효능이 발휘되기 때문에 불순물과 탁기가 밀려 나오는 것이라 확신했다. 외상이 아물어가는 것도 분명했고, 부풀어 올랐던 혈맥도 가라 앉아 제 피부색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생사금침의 시술이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문제는 체력이었다. 체력이 고갈되어 있는 상태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가운데 사흘이 흐르고 있었다.

갈인규의 노력은 헌신적이었다. 그의 옆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거들고 있는 남궁산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끔 구양휘와 형제들이 들어오고 싶어 했지만 갈인규는 극구 말렸다.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기도 했지만 남궁산산을 배려한 일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담천의의 온 몸을 닦아내고 있는 사람은 남궁산산이었다. 갈인규는 생사금침을 뽑고 나서 실신하듯 쓰러진 후 꼬박 여섯 시진 후에 일어났던 것이다. 생사금침을 시술한다는 것은 치열한 혈투를 벌인 것과 같이 진력을 고갈시키는 일이었다.

갈인규는 화로의 온도를 조절하면서 약을 달이고 있었다. 담천의의 가슴을 닦아내며 시선을 담천의의 얼굴 쪽으로 돌리던 남궁산산의 손길이 문득 멈췄다. 숨이 막히는 듯 했다.

“.............!”

언제 깨어난 것일까? 담천의는 애잔한 눈길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시선을 돌리며 애꿎게 담천의의 가슴을 천으로 벅벅 밀었다.

“아프구나......”

담천의가 피식 웃으며 힘없이 말했다. 그 말에 남궁산산은 또 다시 화들짝 놀랐다. 어쩔 줄 몰라 그랬을 뿐이었는데.... 갈인규가 탕약을 달이다말고 몸을 일으켰다.

“미..... 미안해요.”

“정작 미안한 것은 나다. 산산.... 너에게 계속 몹쓸 짓을 시키는구나.....”

“아니에요...”

그 순간 갈인규가 끼어들었다.

“그 말은 맞소. 형님. 산산누님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아시기나 하오? 물론 소제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소.”

갈인규 답지 않게 고함치듯 너스레를 떠는 모양이 두 사람 간의 어색함을 지워주기 위한 것일 게다. 그것을 모를 두 사람이 아니다.

“녀석.... 고생이 심하긴 했던 모양이구나.... 얼굴이 핼쓱하구나.”

“형님이 깨어나면 술을 한 턱 크게 사라고 할 생각이었소. 그 동안 소제도 술이 늘어 한두 동이 정도 가지고는 안 될 거요.”

“약속하지.”

그러자 갈인규가 문득 생각이 난 듯 자신의 손으로 이마를 쳤다. 그리고는 중얼거리며 화로로 가 탕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살며시 뚜껑을 열자 천막 안으로 짙은 탕약 내음이 번졌다.

“이런 정신도..... 술을 먹으려면 몸부터 건사해야지.....”

담천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갈인규의 과장된 모습을 바라보다가 힘겹게 손을 움직여 남궁산산의 손을 잡고 꼬옥 쥐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남궁산산의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번지는 듯 했다. 그리고는 슬쩍 손을 빼내어 다시 담천의의 몸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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