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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일들은 그리움만큼 아름답습니다. 살아갈수록 옛 일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나만의 푸념일까? 어제는 남편이 오랜만에 한잔 하고 왔습니다. 거실에 들어서면서 딸아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는 걸 보니 소주 한 병은 족히 마셨나 봅니다.
하루의 고단함을 한잔 술에 흘려보내고 재충전할 기회를 갖고자 술을 찾는 것인데 술과 분위기에 취해 밤새도록 술잔을 돌리다 보면 오히려 피로를 안게 됩니다. 요즘엔 회식 문화가 바뀌면서 퇴근 후 한 시간 정도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정보 교환과 화합을 다지는 시간으로 정착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 여가 생활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게 되었고, 회식 문화의 변화를 통해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지켜낼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지요.
안주와 술, 찬거리까지 꼼꼼하게 챙겨 묵직한 봉투를 양손에 들고 "형수님"을 부르며 들어서던 남편의 직장 동료들 모습은 옛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85년 5월 군산 경암동에서 시작된 신혼부터 93년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까지 한 달에 서너 번은 남편 직장 동료들의 방문으로 북적였습니다. 그 불시 방문은 항상 밤 10시를 넘기는 게 대부분이었고, 예고 없는 쳐들어(?)옴이었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습니다. 상을 차릴 수 있는 안주와 음료수 술 그리고 찌개를 끊일 수 있는 재료들을 넉넉하게 사가지고 왔으니까요.
남편의 직장 후배 양 주임을(지금은 차장) 만난 것도 그 때였습니다. 직원들의 방문이 있는 날이면 가장 먼저 들어서며 봉지를 내밀었고 "형수님!"이라 불러주었지요. 남편은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으니 '형수님' 호칭은 저에게 가족 이상의 기쁨을 주었습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던, 그래서 모든 직원들에게 인기가 대단한 - 유망주라며 들려주곤 했던 양 주임에 대한 남편의 자랑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뜨겁던 여름밤이었습니다. 퇴근 무렵 늦을 거라는 남편의 연락을 받고 일찍 잠을 잤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인터폰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머리맡 전등을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가 가까워오고 있었습니다. 다시 눈을 비빌 즈음 또 인터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차! 남편이 안 왔음이 확인되었고 벌떡 일어나 인터폰을 들었습니다. (인터폰화면이 없었음)
"누구세요?"
"형수님! 양 주임입니다. 형님이 술을 좀 드셔서요..."
"네에? 안녕하세요. 양 주임님!"
옷을 갈아입고 대문으로 나갔습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처절한 몸부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남편이었습니다. 양 주임이 남편의 팔에 어깨동무하고 일어서려 했지만 끔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양 주임님! 눕혀서 양쪽(팔과 다리)에서 들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양 주임이 남편의 양쪽 겨드랑이를 잡고 내가 양쪽 발목을 들었습니다. 양 주임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훤한 밤중에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풍경에 제가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낄낄 웃다가 씩씩 소리를 번갈아내며 겨우 집안으로 들어왔지요. 그런데 이 남자 세상모르게 코를 골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이가 없어서 양 주임과 저는 한바탕 또 웃었습니다.
이렇게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양 주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죄송하다는 말을 한 후 황급히 현관을 뛰어나갔습니다. 택시비를 지불해주기 위해 지갑을 들고 따라나섰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남편은 전날 상황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관리를 철저히 하는 자존심 강한 남편의 흔들림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나에 대한 쌓였던 불만의 시위(?)는 아니었을까?
가족 같은 끈을 마음과 정성으로 청실홍실 엮어 주었던 정, 양 주임의 따뜻한 심성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뜨거워진다는 남편의 고백은 결혼 후 내게 했던 가장 진실한 고백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웬만해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평소 모습이기에 표현한 것만으로도 그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있었지요.
그 후 양 주임은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서울 본사로 가게 되었고, 홍 대리님, 형 주임, 왕 주임, 박 주임도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면서 야밤의 방문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가슴까지 따뜻해 오던 호칭
"형수님".
다시 듣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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