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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합쳐 부자(父子)가 회양목을 심고 있습니다.
힘을 합쳐 부자(父子)가 회양목을 심고 있습니다. ⓒ 이승숙
일요일 아침부터 우리 부부는 일복으로 갈아입고 나무 심기에 들어갔다. 먼저 줄을 당겨서 회양목 심을 자리를 한 줄로 나란히 만들었다. 그 다음에 1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 만에 30그루의 회양목을 다 심었다. 그리고 나무에 물을 주고 있는데 동네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우리 마당으로 들어섰다.

"뭐 하시꺄?"

아저씨는 강화도 토박이 말씨로 인사를 건네시며 우리 집 마당을 둘러보셨다. "아저씨, 시원한 맥주 한 잔 하세요"라고 권하니 아저씨는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들어섰다.

우리 집 바로 앞은 너른 들판이라서 일철이면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인다. 그럴 때마다 맥주나 시원한 음료수 한 잔 하시라고 청하면 다들 못 이기는 체 하면서 우리 집으로 들어선다. 우리는 타지에서 이사 와서 그렇게 동네 사람들을 사귀었다.

맥주보다는 소주가 좋다 하시면서도 아저씨는 맥주 한 캔을 들이켰다. 그러면서 동네 돌아가는 사정이나 사람들 소식을 전해 주었다. 우리 동네 반장님이 돌아가셔서 새로 반장님을 뽑았는데 우리 옆집 송씨 아저씨가 반장으로 뽑혔단다. 그런데 송씨 아저씨는 생전 가봐야 말이 없고 조용한 사람이라 반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다.

"그 사람 내하고는 동갑 친군데 너무 완행이야. 좀 몰아치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사람 너무 완행이라서 탈이지. 그래도 남한테 해는 안 끼치는 사람이지."

그러고 있는데 저 쪽에 완행인 송씨 아저씨가 보이는 거였다. 그래서 일요일 늦은 아침에 우리 집 마당에서는 완행과 급행 두 아저씨가 나란히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완행(가운데)과 급행(빨간 모자) 두 아저씨가 나란히 앉았습니다.
완행(가운데)과 급행(빨간 모자) 두 아저씨가 나란히 앉았습니다. ⓒ 이승숙
다시 회양목을 바라보았다. 내 눈높이보다 훨씬 낮은 회양목 나무에선 좋은 꽃향기가 났다. 온통 푸르기만 한데 어디 꽃이 피었단 말인가? 키를 낮춰 나무를 가만히 살펴보니 나뭇잎보다 연한 연둣빛 꽃이 조롱조롱 피어 있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벌 한 마리가 바쁘게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고 있었다.

회양목 꽃은 태가 안 났다. 푸른 잎 끝에 연한 연둣빛 꽃이 피니 모르는 사람은 새순인 양 여길 만했다. 그러나 은은하게 향기를 풍겼다. 스쳐지나가듯 향기가 조용히 풍겨왔다.

화단 울타리로 많이 심어져 있는 회양목에 꽃이 핀다는 걸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것처럼 조용하고 변함없는 사람도 우리 눈에 잘 안 뜨인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시끄럽게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만의 내면의 향기를 맡을 줄 아는 사람에겐 회양목 꽃처럼 피어난다. 그의 존재는 의식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다.

있는 듯 없는 듯이 피어있는 회양목 꽃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조용히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회양목처럼 더디 가더라도 나만의 향내가 나는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있는 듯 없는 듯이 피어있는 향기로운 회양목 꽃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이 피어있는 향기로운 회양목 꽃입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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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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