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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수요일, 창덕궁을 찾은 길에 난생처음으로 능수벚꽃을 보았다. 흔하게 보던 벚꽃과 달리 가지를 머리카락처럼 늘어뜨리고 그 올올마다 꽃으로 장식을 하고 있었다. 나의 발길을 그 밑에 한참동안 붙들어 두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꽃을 그냥 아름다운 것으로 스쳐 지나간다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다. 그래서 능수벚꽃으로 사랑 연서를 엮었다. 사랑의 기억이 오래가듯이 이렇게 사랑 연서 속에 엮어 놓으면 능수벚꽃의 아름다움이 더 오래갈듯 여겨졌다.

ⓒ 김동원
나는 궁에 살았죠. 그곳은 같은 땅위에 있으면서도 땅이 아닌 곳.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궁은 담장 밖과 높이를 달리하죠. 궁은 말하자면 같은 땅위에 있으면서 높이를 달리하는 곳. 그곳은 높고 화려한 곳. 나는 바로 그곳에서 살았어요. 그곳은 땅위에서 살면서도 발에 흙이 묻지 않는 곳이었어요.

ⓒ 김동원
나는 봄이면 꽃을 피워올렸죠. 알고 보면 그 꽃은 땅으로부터 온 것이었지만 그러나 피고 나면 그 꽃은 땅의 것이 아니었죠. 나의 꽃은 하늘에 받쳐진 꽃이었죠. 하늘에선 내려보지만 땅에선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죠. 땅에서 그 꽃은 아득하기만 했죠.

ⓒ 김동원
내가 높이를 키울수록 나는 땅과는 점점 더 멀어졌죠. 게다가 나는 나의 그 큰 키에 발돋음을 보태어 하늘에 더 가까워지려 했어요.

ⓒ 김동원
그렇게 내가 높이를 키웠을 때 나의 시선을 채운 것은 온통 하늘이었어요. 그때면 마치 내가 하늘이 된 것 같았어요. 나는 땅을 버린 채 그렇게 하늘이 되고 싶었어요.

ⓒ 김동원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죠. 내 몸에 정반대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내가 오직 위만 보며 하늘로 높이를 키울 때 내 몸의 줄기는 높이를 버리고 땅으로 시선을 두었어요. 그리고는 땅으로 몸을 낮추었어요.

ⓒ 김동원
나는 담장을 지나 흙냄새가 코끝에 완연할 정도로 아주 낮게 몸을 낮추었죠.

ⓒ 김동원
나의 몸은 아예 땅으로 내려가 땅에 눕고 싶어 했어요.

ⓒ 김동원
아마도 지금쯤 그대는 눈치챘을 거예요. 내가 왜 높이를 버리고 땅으로 가려했는지. 맞아요. 그곳이 바로 그대가 사는 곳이었으니까요. 나는 모두가 들어와 높이를 가지려 하는 이 곳의 높이를 버리고 싶었어요. 나는 그저 담장 너머 그대의 땅으로 가고 싶었죠.

ⓒ 김동원
그렇게 하여 결국 나는 담장을 넘고 말았어요. 그대가 있는 곳을 향하여.

ⓒ 김동원
나는 알고 있어요. 내가 높이를 키우면 하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곳에 이르면 나는 있지만 그대는 없어요. 이 봄, 나는 또 다시 그대에게 갈 거예요. 알고 보면 내가 높이를 키운 건, 순전히 담장을 넘어 그대에게 가기 위한 것이었어요. 나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그대의 가슴으로 갈 거예요. 그러니 그대, 올봄에도 이 담장 아래로 찾아와 그대의 가슴을 활짝 열어놓아요.

이렇게 매년 그대의 가슴으로 가다보면 언젠가 그대의 땅에서 그대와 함께 살 수 있을 거예요. 그게 바로 나의 꿈이죠. 높이를 얻은 화려한 하나의 나보다 궁핍하고 낮은 사랑의 우리 둘이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니까요.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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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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