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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화상통화가 되는 3세대 단말기로 교체할 경우 '010'을 빼고는 011, 016, 109 등 다른 사업자별 식별번호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독점 방지가 그 목적이라는데 한 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논지를 전개하기에 앞서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본인은 특정 이동통신업체와는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일반 소비자임을 미리 밝혀둔다.

내가 어처구니가 없다고 하는 이유는 사업자별 식별번호가 일종의 '고유브랜드'고, 이를 토대로 한 이동통신 가입자 개개인들의 전화번호는 각 개인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사유재산'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독점 방지라는 그럴 듯한 명분이 있다고는 하나 이것을 정부의 말 몇 마디로 빼앗는 것은 문제가 많다.

먼저 고유브랜드만 해도 그렇다. 브랜드경영이라는 말이 횡행하고 '00사는 브랜드 가치가 얼마여서 우량회사'라는 평가가 시장에서의 기업가치나 투자 우선순위를 좌우할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브랜드는 큰 의미를 갖는다.

이에 따라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회사들은 어떻게든 자기네 회사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곤 한다.

필연적으로 엄청난 광고비 등 마케팅 비용이 투자되고, 이에 더해 수많은 시간과 적지 않은 인력이 소모된다. 그렇게 하고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성공한 브랜드 하나를 만드는 일은 그리 성공 가능성이 높은 편은 아니다. 사업자별 식별번호는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꽤 성공한 축에 드는 일종의 '고유브랜드'다.

당연히 사업자별 식별번호에는 각 이동통신사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들여온 엄청난 노력이 깃들어 있다. 비록 그 기초재료 격인 사업자별 식별번호를 당초 국가가 제공했다고 해도 그것을 고유브랜드화 해 경쟁력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었다면 해당회사에게도 소유권의 상당 부분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본다.

고유브랜드 문제를 떠나 실사용자인 이동통신 가입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봐도 010을 제외한 사업자별 식별번호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10년 이상 사용해 온 자신만의 전화번호를 앞으로는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사다닐 때마다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는 흑색 전화기를 경험해 본 세대들은 잘 알겠지만, 전화번호를 한번 바꾼다는 것은 여간 번거롭고 성가신 일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바뀐 번호를 다 알려줘야 하고, 간혹 실수로 누굴 빼놓기라도 했다간 그걸로 영영 연락두절이 되는 경우 또한 적지 않아서다.

요즘은 기술의 발달로 전화번호가 바뀔 경우 일정 기간 바뀐 번호를 자동으로 안내해주는 등의 서비스가 있어 찾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바뀐 전화번호를 추적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영업사원 등 수많은 사람들과 긴밀한 연락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경우 바뀐 전화번호까지 추적해가며 연락을 해 올 고객이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폐해를 고려하면 독점 방지는 백번 천번 필요한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일종의 고유브랜드화된 특정 사업자의 식별번호나 이동통신 가입자들 개개인의 사유재산 격인 전화번호를 강제로 뺏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식이라면 누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고유브랜드를 개발할 것이며, 수많은 이동통신 가입자들이 필연적으로 겪게 될 크고 작은 피해들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독점 방지를 위해 노력하되 그 방법은 잘 뛰는 선수의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채우려 드는 마이너패널티 방식이 아니라, 못 뛰는 선수들의 경기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 포지티브적 방식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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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순간 입술가로 따뜻한 웃음이 배어나는 사는이야기류의 글을 좋아합니다. 주로 이런 따뜻한 웃음이 배어나는 글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좀 더 낫게 고칠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이런 쪽에도 관심이 많구요, 능력이 닿는데까지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글들을 써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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