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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리더십>
<케네디 리더십> ⓒ 마젤란
총에 맞아 자신의 뇌수를 대중 앞에서 흘리며 죽어갔던 미국의 대통령 존.F.케네디. 드라마틱한 죽음 이후 그는 미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그리운 이름으로 새겨졌다. 미국의 대통령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기 마련인 케네디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업적을 남겼기에 미국 국민들에게 그토록 사랑받는 것일까.

존 바네스의 <케네디 리더십>은 세월이라는 두께와 함께 더더욱 신화성을 드높여 가는 케네디라는 사람, 그가 발휘했던 리더십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연구서이다.

그룹의 CEO나 조직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일반인이 읽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는 쉬운 문체로 쓰여 있다. 대부분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 형식이기 때문에 케네디라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케네디의 업적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 크지 않았다. 그의 치세 동안 미국의 경제 사정이 그리 뚜렷하게 나아진 것도 아니고, 소련과의 대치 상태에도 그대로였다. 쿠바나 아프리카 신생국들과의 관계에서 비공식적으로 간섭을 하여 미국의 악명을 사방에 떨쳤다는 측면에서 보면 외교적으로도 어쩌면 실패한 대통령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케네디는 왜 오늘날 성공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로 남게 되었을까.

...휴잇은 케네디가 토론 1주일 전에 자신과 만나자고 하면서 "내가 어느 자리에 서 있게 되나요?"라고 묻는 등 집에서 지켜볼 시청자들에게 어떤 각도로 모습이 비춰지는지를 꼼꼼히 확인하였노라고 회상한다...

케네디는 어쩌면 정치가 한 판 연극과도 같다는 것을 일찌감치 직감했던 정치인이었다. 그는 텔레비전 토론이 유행하기 전, 즉 텔레비전이 정치와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직전에 정가에 발을 들여놓았고 향후 텔레비전이 정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를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신문, 라디오 등 모든 종류의 대중매체가 결국 선거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재빨리 파악한 그는 대중매체를 통해 나타나는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최초의 정치인이었다.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케네디는 상대와 저널리스트 패널들이 어떤 질문을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전적으로 텔레비전 시청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토론은 국내정책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오프닝 발언에서 케네디는 국내정책을 해외정책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교묘하게 닉슨의 기반을 공격했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닉슨은 오프닝 발언에서 케네디의 주장에 동조하고 말 수밖에 없었다. 대학 때 토론의 달인이었던 닉슨은 집에서 지켜보는 청중들에 집중하지 못하고, 케네디가 지적한 문제에 대답하는 데 급급하여 그에게 기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토론 후 여론조사에서 케네디는 닉슨보다 청중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다가선 것으로 평가되면서 선거기간 중 최초로 확실한 우세를 보였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TV를 틀기만 하면 어느 한 채널에서는 꼭 정치토론을 하고 있을 정도로 TV 정치토론은 커다란 흐름이 되었다. 케네디가 TV라는 매체의 속성을 십분 활용해 미국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장면을 읽다보면, 정치 토론에 출연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왜 언제나 토론의 주제와 상관없는 말들만 늘어놓다 가곤 했는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는 토론내용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그들의 동문서답과 노골적인 당선 전 행위도 한결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것 같아 쓴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미지로 호소하는 사람이라면 왠지 굉장히 감성적일 것 같지만, 사실 케네디는 굉장히 냉철한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연설의 원고 작성에 직접 관여하여 한 문장 한 문장 심혈을 기울였고, 모호한 문장이나 감성적인 어구를 극도로 자제했다. 적절한 곳에 이미지와 상징을 사용하면서도 주장에 들어가서는 언제나 이유와 논리, 그리고 증거로 무장하곤 했다.

특히 그는 숫자와 통계사용을 극도로 즐겼다. 확실한 메시지가 아니면 대중들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중들은 그의 연설을 듣고 나면 언제나 확실한 메시지 한가지는 저절로 기억하게 되었고, 그가 했던 수많은 연설들은 지금 훌륭한 연설의 전범으로 수많은 교과서와 책에서 널리 인용되고 있다.

결국 그의 핵심 키워드는 '소통'이었던 것이다. 그는 대중의 심리를 잘 알았고, 그의 마음이 대중들에게 잘 전달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가능한 한 언론 관계자들과 친근하게 지내려 노력한 케네디는 자신에게는 기본적으로 다른 본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예를 들어 자신에 대해 뭔가 잘못된 오해가 있었다면 이를 기자들에게 주저 없이 알렸다. 사실 그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에 매우 민감했기 때문에 볼멘소리를 하는 대통령을 비난하는 이야기들이 나돌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네디가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확실히 일부 기자들에게는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어느 정도 억제되었다. 케네디는 자신에 대한 호의적인 뉴스가 많아지도록 하는 몇 가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일반대중들이 볼 수 있는 대통령의 모습은 결국 '언론에 비춰진 모습'뿐이다. 대중들은 언론에 비춰진 대통령의 모습으로 거의 모든 것을 평가한다.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지대하거나 그 분야를 전공으로 하고 있지 않는 이상 정치인에 대한 판단은 거의 모두가 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직 매체의 힘이 지금처럼 비대해지기도 전에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케네디는 얼마나 여우같은 대통령이었던가.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이미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미지가 존재의 일부분으로 스며들어버린 삶을 살게 돼 있다. 한국에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미지 정치를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미지 정치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사람 자신도 이미 커다란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정치인들은 매체에 비친 이미지가 자신의 정치여정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충분히 알고 전력을 다해 이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그런 공방조차 대중에게 어필하고 싶은 이미지의 한 부분이라는 말인데, 아아,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복잡해진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물론 본인이 전혀 그렇지 않은데 이미지만 그런 식으로 조작해서 내보냈다면 케네디는 결코 훌륭한 대통령으로 회자되지 못했을 것이다. 케네디는 기본적으로 평화와 인권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전쟁이 쓸모없는 소모전이고, 전쟁에서는 어느 나라도 진정한 승자로 남을 수 없는 인류의 비극일 뿐이라는 사실을 참전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또한 링컨이 노예제 폐지로 인종차별폐지운동의 서막을 열었다면, 그는 그 후 여러 법제정을 통해 흑·백이 실질적으로 평등한 삶을 살도록 운동을 활성화시킨 대통령이었다.

이 책은 전형적인 미국인의 책이다. 미국인이 쓴 미국인 대통령에 관한 글이기 때문에 책 곳곳에서 케네디의 업적을 더 빛나게 하고 그의 실패를 '국제적인 상황이 어쩔 수 없이 그를 그렇게 하게 만들었다'는 식으로 변명해주려는 편향성이 빤히 보이는 책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케네디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그의 신화적인 모습이 결국 '이미지'에 많이 빚지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케네디라는 인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스케치를 갖고 싶은 사람이 편하게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에 대한 아이디어도 상당 부분 얻을 수 있다.

케네디 리더십

존 바네스 지음, 김명철 옮김, 마젤란(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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