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미국 백악관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환영식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촉구할 것"이라며 중국이 대북 압력을 행사할 것을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제의한 '상당한 영향력'은 주로 북·중 경제협력의 중단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담 뒤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 교착 상태의 해소를 위해 각 당사국들이 유연성을 발휘할 것을 촉구했다. 부시 대통령의 요구를 간접적인 의사표현 방법으로 사실상 거절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기본적인 입장을 고려할 때 미국이 중국에 제안한 대북 압력 촉구는 실현되기 힘든 것이었다. 중국은 북미관계 악화를 틈타 북중관계를 강화한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은 6자회담이 미국의 의도대로 끝나도록 협조할 생각이 거의 없는 입장이다.
미국은 2003년 이래 중국을 중재자로 내세워 6자회담을 이끌어 왔지만 그동안 미국이 의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이다. 또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본격화 한 2005년 9월 이래 중국은 대북 경제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선 북미관계보다 북중관계가 더 중요
중국 입장에서 북중관계를 더 강화하지 못하면 자칫 러시아에게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 '감춰 둔 저항심'을 품고 있지만, 러시아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일종의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러시아가 중국 바로 옆에 있는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중국인들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사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이 6자회담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은 북·미 핵대결의 와중에 북한이 미국에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북한과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것은 라이벌인 러시아·한국·일본 등에게 북한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6자회담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과, 북한과 경제적 협력을 하는 것 모두가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은 북중관계가 침해되지 않는 선에서 6자회담 중재자 역할에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북중관계를 지키는 선에서 미국에 협력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종영된 서울방송(SBS) 드라마 <서동요>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역사 드라마 자체가 허구에 바탕을 둔 것이고 또 고대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일수록 그 허구의 정도는 더 심해지지만, 여기서는 '역사 속의 선화공주'보다 '드라마 속의 선화공주'에 주목하기로 한다.
서동(무왕)이 훗날을 위해 부여선(법왕)에게 굴신(屈伸)하고 있을 때에 궁궐에 출입하던 선화공주는 겉으로 부여선을 돕는 척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연인' 서동을 도왔다. '역사 속의 선화공주'가 '드라마 속의 선화공주'보다 더 예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드라마 속의 부여선은 선화공주의 미소와 속임수에 넘어가 서동에 대한 견제를 게을리하고 말았다.
'선화공주'가 '부여선'의 지시를 들을까?
미국이 아무리 중국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하려 해도 미국과 중국은 부여선과 선화공주의 관계처럼 기본적으로 '결합'될 수 없는 사이다. 둘 사이에 그 어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상이몽'에 불과한 것이다.
선화공주(중국)가 겉으로는 궁궐(백악관)에 출입하며 부여선(미국)을 위해 6자회담을 중재하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동(북한)과 경제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것에서 그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북중관계를 볼 때에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으리라는 미국의 발상은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당사자들 간에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꾸 제3자들을 개입시키려는 미국의 접근법에도 문제가 많다. 미국이 진정으로 북한과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자꾸 '이웃집' 문을 두드릴 게 아니라 직접 '북한'의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이다. 어떤 형식을 취하든 간에 북·미 양국이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문제를 논의하는 것보다 더 나은 해법은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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