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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개골은 요즘 녹차 채엽으로 부산합니다. 22일만 해도 지리산에 눈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23일)은 전형적인 4월의 따뜻한 날씨입니다. 섬진강 100리 길을 달려 화개장터를 지나 녹차 채취현장에 도착하니 아주머니들은 벌써 차 잎 채취에 바쁜 손을 놀리고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차는 겨울을 이겨낸 첫 잎이어서 맛이 각별하다고 합니다. 이때 나온 차 잎으로 만든 녹차를 '우전'이라고 합니다. 보통 곡우(이십사절기의 하나, 4월 20일경)를 기준으로 곡우 이전 차 잎으로 만든 것을 우전이라 하고 곡우 이후에 나온 차 잎으로 만든 차를 '세작'이라고 하지만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우전이나 세작은 고급 녹차로 그 향과 맛이 각별하지만 잎이 너무 작아 그 잎을 따는 것만도 쉬운 작업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동 화개에서 30년 넘게 채엽을 한 노련한 아주머니들이 하루 종일 일해도 1kg 이상 채취가 힘들다 하니 차 잎의 크기가 얼마나 작고 그 작업이 힘 드는지 짐작이 갑니다. 한 아주머니가 몇 시간 동안 채취한 것이라며 향을 맡아보라고 합니다. 코끝에 전해지는 차향이 기가 막힙니다. 순하고 부드러우면서 은은한 향이 마음까지 개운해지는 것 같습니다.
녹차 하면 보성... 차 시배지는 화개
녹차 하면 흔히 보성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차를 먼저 심고 만든 곳은 지리산 일대입니다. 지리산에서 녹차 재배가 시작된 것은 벌써 1300년이 넘는 반면 보성의 경우 일제시대에 조성됐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에 '흥덕왕 3년(823년) 대렴공이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온 후 왕명으로 지리산에 차 씨를 심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지리산의 차 재배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전에도 화개에 야생차가 자라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보통 여기 사람들은 1300년쯤 되었다고 보통 이야기를 합니다.
화개장터보다 유명한 화개 녹차
화개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차 만드는 것을 눈으로 보고 배운다고 합니다. 차 만드는 집이 흔하기 때문에 "화개 사람이라면 녹차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화개에서 녹차는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라면을 먹을 때도 녹차를 넣는 사람들이 이곳 화개 사람들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약보다 먼저 발효녹차를 마시기도 했다니 녹차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의 생활 속에서 함께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녹차 만드는 과정 한 번 배워볼까요?
먼저 따온 차 잎을 대나무 소쿠리에서 정리를 한 다음 차 잎에서 잡티를 가려냅니다. 가려진 차 잎을 키질을 해서 다시 한 번 걸러낸 다음 무쇠솥을 300도 이상 달군 다음 차 잎을 넣고 덖어내야 합니다. 이때는 물을 넣어 하는 것이 아니라 생엽만 넣어서 4분 정도 익히는 작업입니다. 이때 골고루 잘 익혀야 좋은 차가 됩니다.
여기서 덖는다는 표현은 솥에 차 잎을 넣고 손으로 섞어 골고루 열이 가해지도록 하는 손작업을 말합니다. 이것을 기계로 하는 경우가 있고 손으로 직접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으로 한 것을 '손 덖음 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손으로 작업하는 경우 차를 만들 수 있는 양이 적어 기계를 사용하지만 역시 손으로 작업했을 때 맛과 향이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규모 공장에서는 스팀으로 찌는 작업을 해서 녹차를 만듭니다. 여기서는 손으로 하는 수작업을 기준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렇게 덖은 차를 멍석에다가 비빕니다. 그냥 멍석에다 하면 티가 올라와서 멍석 위에 녹차 물이 든 광목을 깔고 작업을 합니다. 비비는 건 차 잎에 상처를 내는 과정인데 이렇게 해야만 차를 우릴 때 차가 잘 우려지기 때문입니다. 차 잎을 비비면 덩어리가 되는데 이를 골고루 잘 털어서 채반에 널어 약간 건조를 합니다. 작업이 끝난 것은 모두 대소쿠리에 모아서 적당한 양으로 한 뭉치씩 나누어 놓습니다.
이제 다시 재벌작업을 합니다. 여러 번 솥에 들어갈수록 차가 순하고 부드러워집니다. 몇 번을 덖었느냐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두 번째 솥에서부터는 장갑을 안 끼는데 그 이유는 손끝의 감각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다시 키질을 합니다. 이때도 잡티가 나갑니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면서 차가 깨끗해지는 것이죠.
솥에 넣었다가 솥에서 꺼낼 때마다 키질을 하고 비비는 힘든 작업을 반복합니다. 어느새 온 몸이 땀으로 젖습니다. 솥의 뜨거운 열기와 차를 만드는 사람의 열정이 작업실 안을 가득 메우면서 열기가 고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솥에 들어가고 비비고 널어놓는 작업을 계속 반복합니다. 어느 정도 되면 방에서 건조를 하는 데 이때는 나무 때는 온돌방에서 합니다. 이렇게 하여 건조가 다 되면 1차 작업이 끝납니다.
1차 작업이 다된 차는 다시 마무리 열처리(가향작업)를 위해 다시 키질을 합니다. 키질을 많이 할수록 차의 잡티가 적어집니다. 이렇게 키질을 한 것을 다시 솥에 넣습니다. 이때 솥은 저온으로 합니다. 약 70도 정도의 저온에서 2~3시간 정도 마무리합니다. 솥에서 수분을 줄이고 향을 첨가하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가 가장 힘이 든다고 합니다. 만약 실수를 해서 온도가 높으면 맛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거친 차 잎의 모양이 아름답게 되고, 은은한 향이 퍼집니다. 이 때 차에 붙어 있던 솜털들이 떨어지면서 솜털이 날립니다. 이 솜털이 온몸에 쌓이면서 차의 향은 더욱 좋아집니다. 좋은 차일수록 솜털도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두 시간 이상 이 작업을 하면 머리며 얼굴이며 마치 하얀 분장을 한 것처럼 됩니다. 이제 드디어 마무리 열처리와 가향(加香)작업이 다된 것입니다. 길고 긴 녹차 만드는 작업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이제 포장을 하면 지리산 화개 녹차로서 당당한 제품이 되는 것입니다. 이 녹차는 은은한 향을 내며 여러분을 유혹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시는 수제녹차는 이런 식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엇 하나 소홀히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녹차 맛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 작업해야 한다고 한다. 이제 녹차가 만들어졌습니다. 수제 녹차 한 잔에는 지리산의 정기와 작은 차 잎을 따는 아주머니의 허리 굽은 노동과 차를 만드는 사람의 손끝의 미묘한 감각, 그리고 열정이 만든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맛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 이제 지리산 정기가 담긴 화개 녹차 한잔 하시죠?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리산 화개면의 차시배지 부근 혜림농원의 구해진님의 도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