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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끊임없이 진행되는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 노력과 일본의 독도 침탈 기도, 미국의 쌀시장 침탈 노력을 보면서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것을 느낀다.

한중수교 이래 지난 12년간 한국이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공을 들였지만, 중국은 한편으로는 학자들을 동원하여 고구려사는 물론 한국사 전체를 왜곡하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중국과 경제협력을 해야겠지만, 우리는 외세의 본질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이 미국·일본과 함께 3각 동맹에 참여해 왔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라고는 미국의 냉대와 일본의 위협뿐이었다. 미국이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 경제 원조를 했다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한국 경제의 '노른자위'는 사실상 미국에게 모두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한국이 6자회담과 관련하여 일정 정도 일본과 공조를 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와 동해에 대한 침탈 시도를 그치지 않고 있다.

이제 우리가 분명히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남은 어디까지나 남이며 내 운명은 내 스스로 개척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19세기말에도 우리가 주권을 지키기 위해 청나라·미국·러시아·일본 등에게 기댄 적이 있지만,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국권 상실뿐이었다.

그러므로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우리는 민족 내부에서 그 해법을 구할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은 민족 전체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하는 것이다. 남녀 간의 평등을 통해, 계층 간의 화합을 통해, 지역 간의 균형을 통해 민족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민족 역량을 결집하는 가장 궁극적인 방법은, 바로 남과 북의 민족공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민족공조 통해 민족역량 결집해야

'민족공조' 하면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은 북측의 대남 적화전술이 아닌가 하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족공조는 이미 지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때 남과 북이 정식으로 합의한 사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동의한 사안이라는 말이다.

7·4 남북공동성명 때에 남과 북이 합의한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 중에서 '민족 대단결'이 바로 민족공조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2004년 평양출판사가 발행한 <6.15 시대와 민족공조>라는 책의 45페이지에는 "민족공조이자 민족대단결이며 민족대단결이자 민족공조"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즉 민족공조와 민족대단결이 동질적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민족공조와 민족 대단결에는 세부적인 차이점이 있다. 위 책의 같은 페이지에 의하면, 민족 대단결은 통일을 위한 주체적 역량을 만드는 사업이고, 민족공조는 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공동 행동을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민족 대단결은 '민족이 일단 뭉치는 것'이고 민족공조는 '민족이 공동 행동을 하는 것'이다.

민족공조와 민족 대단결에 세부적인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양자가 기본적으로 통일을 목적으로 민족적 역량 통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본다면, 이 두 가지가 본질적으로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위 책에서도 "민족공조이자 민족대단결이며 민족대단결이자 민족공조"라고 한 것이다.

민족 대단결이 곧 민족공조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한국 보수파들이 내심 아직도 지지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도 민족 대단결, 곧 민족공조에 동의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까지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민족 대단결 곧 민족공조가 시대적·역사적 당위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족공조가 민족적 역량의 통합을 꾀하는 것이고 또 민족통일을 위한 기본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민족공조는 곧 우리 민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행복을 위한 민족공조를 반대하고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빨갱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빨갱이'는 공동체의 행복과 번영을 방해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민족공조도 좋고 민족 대단결도 좋지만, 나는 김정일과는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개인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싫어할 수는 있다. 또 김 위원장이 없다고 해서 민족공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통일이 불가능한 것은 더 더욱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다. 북측 지도자를 선출할 권리는 북측 동포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북측 국민들의 동의 하에 그리고 북측의 자체적 헌법 하에 선출된 지도자의 정통성을 두고 외부에서 논란을 벌일 수는 없다. 정당한 권한 없는 사람들이 그 문제를 논하는 것은 북측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만약 김 위원장을 정 하야시키고 싶다면, 통일된 다음에 김 위원장을 반대하면 되는 것이다. 통일 코리아가 어떤 정치형태를 취할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김정일 후보'가 통일 대통령에 출마하면 그때 그를 안 찍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이란 한 인물을 놓고 민족공조를 평가하는 것은 민족공조 자체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민족공조는 우리 민족 전체에게 부여된 사명이다. 그리고 지금 남·북·해외에 있는 수많은 동포들이 민족공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그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통일과 민족공조를 위해 열심히 헌신하고 있는데, 김 위원장 한 사람만 보고서 민족공조를 운운한다는 것은 전체 민족공조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일' 혼자 민족공조 하는 게 아니다

아무튼 지금 우리가 처한 국제적 위기를 돌파하려면, 민족 내부에서 힘을 도출할 수밖에 없다. 만약 지금 우리가 민족공조를 외면한다면, 이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전쟁)의 실패와 유사한 전철을 밟는 것이 된다.

당시 민족적 위기를 구하기 위하여 조선사회의 상층과 하층에서 각각 근대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상층에서 추진한 근대화 운동의 사례로는 갑신정변(1884년) 등을 들 수 있고, 하층에서 추진한 근대화 운동의 사례로는 갑오농민전쟁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당시의 조선 사회는 상층과 하층의 두 역량을 통합하는 데에 실패했다. 특히 갑오농민전쟁 시기의 경우에는 조선 정부가 외세(일본)의 힘을 빌려 하층의 역량을 파괴했다.

상층과 하층의 근대화 역량을 통합하는 것은 일종의 '민족공조'였다. 그런데 조선정부는 '민족공조'를 외면했다. '상놈'들과는 같은 밥상에 앉을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래서 일본을 불러들여 갑오농민군대를 진압했다. 그들에게는 세금 잘 내는 '상놈'들보다는 일본이 더 존귀한 존재로 인식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생긴 결과가 바로 1910년 국권상실이었다. 당시 우리 조상들은 민족 내부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파괴했기 때문에 외세에게 주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19세기말의 '민족공조' 실패가 국권상실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19세기 판 민족공조 실패가 국권상실 초래

만약 지금 우리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갖고 민조공조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민족 내부의 역량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제2의 국권 상실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번 독도 사태에서 느낄 수 있는 바와 같이, 남은 어디까지나 남이다. 그래서 믿을 건 내 혈육밖에 없는 것이다. 한-미-일 3각 동맹 하에서 일본과 협력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과거사 망언과 독도 침탈 기도뿐이다.

하지만, 북측이 독도를 빼앗고 역사를 왜곡할 가능성은 전무 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삼천리금수강산이 모두 남과 북의 공동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이번과 같은 사태를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민조공조를 통해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결집시켜야 할 것이다. 박정희 같은 사람도 1974년에 민족 대단결 즉 민족공조에 동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조공조는 그 누구도 거역하기 힘든 민족의 대명제다.

'김정일' 때문에 죽어도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조금만 더 참았다가 통일 후에 그를 낙선시키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싫더라도 민족공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거기에 민족의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싫어도 해야 하는 일

사회생활을 하거나 가족을 부양하려면, 밖에서 싫은 사람들과도 끊임없이 부딪혀야 하고 또 때로는 함께 술도 마셔야 한다. 어떤 때는 억지웃음도 지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만 내 주위에 둘 수는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종교 모임에 가도 싫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설령 '김정일'이 싫더라도, 민족의 행복을 위해서 큰마음을 먹고 그와 함께 민족공조를 추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가장'만 바라보는 '식솔'들을 생각한다면, 싫은 사람과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가정의 행복'을 우선시해야 할 것이 아닌가?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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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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