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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의 미’란 말이 있다. 끝맺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광해군(재위 1608~1623년)이 16년간 ‘군주’로 군림하다가 나중에 ‘군’으로 격하된 것은, ‘유종의 미’를 등한히 한 데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대외정책에 중대 변경(친명외교->중립외교)을 가하면서도 그 대외정책을 지탱하는 권력기반을 마지막까지 튼튼히 지키지 못한 잘못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2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내년 12월이 대선이고 대선 이전 수개월 동안은 권력누수기임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1년 하고도 3, 4개월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그도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종의 미’가 중요

그런데 이제까지 노무현 대통령이 취한 대외정책들을 보면, 과연 그가 유종의 미를 거두고 퇴임 후에도 존경받는 국가원로로 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대외정책들이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란하게 시작했다가 어느새 유야무야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정치적 기반이 취약해서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하나의 ‘정치적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적 기반이 튼튼하다는 것은 그만큼 기득권층에 얽매여 있다는 말이 된다. 기득권층에 얽매인 정권은 대내외 정책에 있어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힘들 것이다.

구 기득권층과 미국에 별로 얽매일 것이 없다는 점은, 노무현 정권의 약점이 아니라 도리어 강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구 기득권층과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과감히 소신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존경받은 정권들은, 대개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딛고 일어나 개혁에 성공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정권의 안정을 공고히 한 집단들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기반이 취약해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그저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핑계를 댈 것 같으면, 처음부터 그런 취약한 기반을 갖고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신의 기반이 취약해서 대통령이 되어도 별다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도 ‘고의로’ 대통령에 출마한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유권자와 국민을 기만한 ‘사기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신 없으면 처음부터 나오지 말았어야

국내정치는 별론으로 하고, 노무현 정권이 대외정책 측면에서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1월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가서 “미국이 대북 위협을 포기하는 것이 북핵해법”이라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일격을 가했다. 이에 당황한 부시 대통령은 같은 달 20일의 산티아고 한미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에 대한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인정하면서 한국을 달래는 포즈를 취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1월 12일부터 12월 9일까지 3개 대륙 9개국을 순방하면서 “한국 주도의 도덕적 포용을 통해 평화와 번영의 동아시아공동체를 건설한다’는 내용의 일명 ‘노무현 독트린’을 ‘전파’함으로써, 자주외교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을 한껏 높여 놓았다.

그래서 한국이 6자회담에서 자주적 목소리를 내게 되는가 하는 기대감이 조성되었지만,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은 2005년 1월부터 6자회담은 북-미 양국의 일방적 무대로 회귀하고 말았다. 특히 미국은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행사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 8월을 뜨겁게 달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시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저지할 것처럼 행동했지만, 그 후 중국정부가 교과서에서 고구려사를 포함한 한국사 관련 기술을 아예 삭제하거나 혹은 왜곡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제지를 가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의뢰를 받아 중국 교과서 왜곡 실태를 연구한 한 학자의 전언(傳言)에 의하면, “우리 정부가 한중관계 악화를 우려하여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교과서 문제가 가급적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고구려를 지키겠노라!”던 당초의 호언장담은 그냥 호언장담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호언장담은 호언장담으로 끝인가

또 2005년 2월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의 날’을 제정하는 등 노골적인 침탈 야욕을 보이자, 노무현 대통령은 3월 22일 육군3사관학교 제40기 졸업식 자리에서 이른 바 ‘동북아 균형자론’을 천명하면서 강경한 ‘대일(對日)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보란 듯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과거사 망언을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독도 사태만 해도 그렇다. 한·일 외무차관 회담 이전만 해도, 노무현 대통령은 ‘강경한 대응’으로 기조를 바꿀 것임을 시사했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도 4월 20일에 “해저 지명 문제는 우리의 권리와 같은 것”이라면서 원칙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기대감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막상 회담에 들어간 후로는 또 예전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지금 일본 네티즌들이 이번 협상결과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만큼 그들의 기대치가 크다는 것이고 또 일본정부가 ‘표정관리’를 잘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해저에 우리가 지명을 붙이는 것은 우리의 주권적 권리인데, 일본의 압박과 위협에 밀려 지명 신청을 연기했다는 것은 대일 굴욕외교라 아니할 수 없다. 강조하건대, 이번에 한국이 일본 해상보안청 선박을 돌려보낸 게 아니라, 일본측이 목적(한국측의 지명신청 저지)을 달성하고 스스로 돌아간 것이다.

이처럼 노무현 정권의 대외정책은 처음에는 언제나 ‘용의 머리’처럼 거창하게 시작되었다가 나중에는 어김없이 ‘뱀의 꼬리’처럼 슬그머니 숨어들곤 한다. 소리만 요란할 뿐, 한 번도 제대로 끝맺음을 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용두사미라 하는 것이다.

‘용두용미’가 되어야 하는데...

광해군은 애민정책을 펴고도 끝까지 권력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다시 말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여, 16년간 멀쩡히 군주로 재위해 놓고도 왕자급(級)의 ‘군’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당했다. 그래서 오늘날 어린 학생들에게 “광해군은 군주였다”는 말을 해줘도 “광해군이 군인데 무슨 군주였나?”는 반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노무현 정권이 민족의 안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국민적 기반을 송두리째 잃고 그로 인해 수구세력이 ‘인조반정’에 성공하게 되면, 그 역시 노무현 대통령에서 ‘노무현 군(君)’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겪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자주외교’의 기회를 잃고 또다시 저 지긋지긋한 명나라(미국)의 휘하로 들어가는 불행을 겪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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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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