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를 뽑는 내부 경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당락을 가를 대의원·당원 표심 향배에 대해 어느 후보 측에서도 단언하지 못했다. 자기 진영의 우세를 점치면서도, 종래에는 "확신할 수 없다, 뚜껑을 까봐야 안다"는 반응이다.
① 이심 vs 오풍
'2강(오세훈-맹형규) 1중(홍준표)' 구도로 보도되는 데 대해 불만을 가져온 홍준표 의원 캠프에 23일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춘식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방문이 그것. 캠프쪽에선 "MB(이명박)가 보낸 모종의 사인이 아니겠냐"고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당초 홍 의원은 이날 이명박 시장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과의 공동 기자회견을 기획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반면 '이심(李心)'이 쟁점화되는 걸 견제해온 맹형규 후보는 이 시장 최측근과의 통화내용을 공개하며 "이 시장의 지원을 받는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믿지 말라고 했다"고 홍 의원을 겨냥했다.
"오세훈의 본선경쟁력, 맹형규의 조직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무기가 약했던 홍 의원은 이명박 시장의 우회적인 지지표명을 기대해 왔다. 홍 의원은 "경선에 임박해 이 시장의 속내가 드러날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오세훈 vs 맹형규 구도가 형성된 터닝포인트는 지난 10일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가 한나라당 서울시 당원 500명을 상대로 한 전화면접 결과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서울시장 후보감을 묻는 질문에 ▲오세훈 28.3% ▲맹형규 25.3% ▲홍준표 17.8%순으로 나타난 결과를 발표하며 "당원들의 표심은 2강 1중 구조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홍 의원은 "맹형규 의원이 제공한 샘플을 가지고 조사한 결과"라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크게 반발했다. 지난 18일경 한길리서치에 의뢰한 자체 여론조사결과(대의원 699명 상대 조사)에 따르면 ▲홍준표(32.0%) ▲맹형규(31.9%) ▲오세훈(26.3%)순으로 나타났다며 "맹·홍의 박빙승부"임을 강조하고 있다.
② 폭로전문가 vs 강남오렌지족
2주 전 오세훈 전 의원의 등장으로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의 판도는 급회전했다. 당초 맹·홍 2강에, 박진·박계동 의원, 권문용 전 강남구청장이 뒤를 따르는 식이었으나 오 전 의원이 등장하면서 '2박'은 자진 사퇴했고, 맹·홍이 뒤로 밀려났다. 홍 의원이 오세훈 전 의원의 등장과 함께 소장파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당초 홍 의원은 '박근혜 vs 이명박' 대리전 양상의 '맹형규 vs 홍준표' 대결구도가 짜여지길 내심 기대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재오 의원(이명박 측)이 김무성 원내대표(박근혜 측)를 누른 분위기를 살려가겠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강금실 대항마론이 일면서 오세훈 카드가 급부상하자 홍 의원은 "오세훈을 불러들인" 소장파를 향해 "학교에 도시락 싸들고 찾아온 청소부 아버지가 부끄러워 피하는 아들"에 비유하며 "나는 10년 이상 피눈물을 흘리며 당을 위해 싸웠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한 자신의 '대여 저격수' 등 강성 이미지를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소장파의 논리"라며 "내가 여권의 권력비리를 파헤칠 때 강남에서 술 마시고 헬스클럽에서 몸 만들지 않았냐"며 오세훈 전 의원과 소장파를 싸잡아 '강남족' '오렌지족'이라 비난했다.
사실 홍준표 의원과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으로 대표되는 소장파의 '악연'은 오래된 얘기다. 소장파는 지난 총선 전, 5·6공 인사들과 함께 색깔론과 무책임한 폭로를 주도한 세력은 당을 떠나야 한다며 인적청산을 제기했고, 그 중 한명으로 홍준표 의원을 지목했다. 2004년 2월 홍 의원의 '노 대통령의 1300원억 당선 축하금' 폭로가 허위로 드러난 뒤였다.
홍 의원이 당시 소장파의 주장에 밀려 당직을 그만두면서도 "내가 최병렬 대표 체제 들어선 뒤 마구 날뛰는 소장파의 군기를 잡았다"며 "그래서 소장파가 이번 기회를 잡아 나에게 사퇴를 하라고 한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대선자금비리, 이른바 '차떼기 사건'이 터진 뒤 최병렬 체제에 대한 이 둘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다.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던 홍 의원은 최 대표를 마지막까지 지키는 입장에 섰지만, 미래연대로 대표되는 소장파는 최 대표의 퇴진을 주도하며 전당대회를 통해 '박근혜 시대'를 열었다.
16대 국회 말, 오세훈 전 의원은 불출마 선언으로 소장파의 인적청산론에 힘을 실었고, 홍 의원은 의원직을 내놓을 만큼 잘못한 게 없다며 17대 총선에 나서 탄핵 회오리를 뚫고 3선 배지를 달았다.
③ 15대 소장파 vs 16대 소장파
박근혜 체제에 들어서 홍 의원과 소장파의 관계는 조금 달라졌다. 박 대표에게 실망한 소장파가 비주류를 자임하며 '반박(反朴)' 성향으로 돌아서면서다. 박근혜 대세론을 견제하는 입장의 소장파와 친이명박 성향의 홍 의원은 지도체제와 대선 후보 결정에 영향을 미칠 혁신안(위원장 홍준표)을 놓고 공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내 '비주류'로서 이해관계가 맞았던 것.
그런 속에서도 긴장 관계는 여전했다. 혁신안 원안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원희룡 의원은 "홍 의원이 박 대표의 치마폭에 묻혀 꼬리를 내렸다"며 "서울시장 후보 경선 낙선운동을 벌여서라도 압력을 행사하겠다"고 압박했다. 이에 홍 의원은 "내가 어떻게 다 책임을 지냐"고 '말만 앞세우는' 소장파에 화살을 되돌리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필요할 때는 관계를 맺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소장파가 맞불었을 때, 홍 의원은 박사모의 당내 세력화를 견제하며 "소장파로 인해 한나라당의 수구 이미지가 탈색된다"고 소장파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한 당직자는 홍 의원과 소장파의 관계에 대해 "그때그때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노선의 차이라기보다 정치스타일과 세대 대결의 측면이 크다"고 말한다.
사실 홍 의원도 소장파인 때가 있었다. '모래시계' 검사로 명성을 날린 홍 의원은 15대 국회 때 개혁세력으로 영입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나바론 특공대'에 투입되면서 대통령 측근비리 등을 폭로하는 대여저격수로서의 이미지를 굳혀왔다. 오세훈 전 의원을 상대로 "나는 내 이미지가 상처 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당에 대한 헌신성을 내세우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④ 리더십 없는 개인기 = 조직력 없는 샤우팅
'독고다이' '돈키호테' '좌충우돌' '독불장군'…. 홍 의원을 가리키는 표현들이다. 앞서의 당직자는 "개인적인 인기도 있고 개혁성향을 갖고도 있지만 조직 플레이를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며 "리더십보다는 개인기로 성장했다"고 평가한다. 소장파의 '한계'와 오버랩 되는 대목이다.
당내에선 "소장파가 깃발을 들면 누가 가겠나"라며 조직력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언론용 샤우팅(목소리 내기) 정치로 컸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실제로 오세훈 전 의원이 대의원과 당원 조직의 한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소장파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 의원측의 한 관계자는 "오세훈=원희룡 홍보 효과는 되레 마이너스"라며 "박계동 의원이 가장 열심히 뛰고 있다"고 말한다. 한 초선의원은 소장파에 대해 "어울리기는 하지만 정작 서로를 키워줘야 할 대목에선 적극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16대 국회 초선 배지를 단 원희룡·오세훈 의원 등은 재선의 남경필 의원과 함께 세를 형성하며 당 개혁 분위기를 이끌었다. 15대 때 소장파를 형성한 김문수·홍준표·이재오 등이 강성 이미지로 추진력을 발휘했다면, 이들은 여론을 의식하며 합리적 행보를 해왔다.
이들은 곧잘 오세훈-홍준표, 김문수-남경필, 이재오-원희룡 짝으로 묶여져 비교된다. 김-남의 경우 경기도지사 후보에서 단일화를 이뤄냈지만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한판 대결을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해 수요모임 소속의 한 의원은 "경기도의 경우 '시대싸움'으로 가자는 것에 동의가 이뤄졌지만 서울시장의 경우 (홍준표 의원) 개인의 정치적 성취욕이 너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과 경기에서 오세훈과 남경필이 됐으면 세대교체가 이뤄졌겠지만 50대 선배들이 아직은 '우리 세대'라고 나서는 상황 아니냐"며 "준표 형 시대냐, 우리 시대냐"라고 세대간 신경전을 드러냈다.
그 심판이 내려지는 25일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