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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진 앨리슨 래퍼의 임신한 조각상.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진 앨리슨 래퍼의 임신한 조각상. ⓒ 연합뉴스/로이터
세상이 온통 시끄럽습니다. 증오심은 끓어오르고, 욕설이 난무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자취 없이 사라지고, 욕심으로 가득 찬 자들만이 넘쳐나는 듯합니다.

'우리 사이'에서 관용이라는 글자가 사라진 지 오래지요. 저 혼자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팽배한 세상인 듯도 하고요. 남을 용서하는 마음은 전설 속에나 살아있으니,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을 리 만무지요.

그저 자연상태로 되돌아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이 남아 있는 듯도 하군요. 목소리 큰 자가 세상을 집어먹을 듯이 덤벼대니 말입니다.

가진 자들과 잘 난 놈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세상은 빨리 돌아갑니다. '빨리 빨리' 세상이지요. 굼벵이처럼 느린 자들은 다 죽으라는 것이지요. 약육강식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나요?

보다 많이, 더 크게, 더 오래, 더 일류로, 더 건강하게……. '보다 많이', '더'와 같은 비교급도 모자라 최상급을 사용하는 욕심 많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이,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최선의 가치로 삼는 물질만능적 세상이 바로 오늘인 듯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미치게 만듭니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inem)'!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습니다. 진정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참된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한 사람을 통해서 배우는 순간이었습니다. 눈물이 솟아날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미로의 비너스'라 칭하는 사람

그녀는 스스로를 '21세기 미로의 비너스(the Venus de Milo)'라고 부른다고 하는군요. 고전기의 '미로의 비너스'는 어떤 이유로 팔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의 하나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희귀한 염색체 질병으로 팔이 없고 다리가 짧은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하는군요. 1965년에 영국에서 태어났으니, 마흔이 되었겠지요. 인생을 줄곧 그곳에서만 살았다고 합니다.

헤덜리 예술학교(the Heatherley School of Fine Art)를 나온 뒤 1994년에 브라이튼 대학을 최고 우등 학위(First Class Honours)로 졸업하고 지금은 예술가로서 활동하면서 여러 예술학교와 대학에서 예술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21세기 비너스'인 그녀의 이름은 바로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입니다. 어제(23일) 그녀가 아들과 같이 서울에 왔다지요. 그녀는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장애인과 여성들에게 희망의 빛을 던져준 공로로 위민즈 월드상(Women as World) 시상식에서 당당하게 위민즈 어치브먼트상(Women as Achievement)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난해 9월 15일에는 마크 퀸(Marc Quinn)이 조각한 '알리스 래퍼 프레그넌트'란 제목의 조상(彫像)이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졌다고 하네요. 물론 임신한 자신의 몸을 조각한 것이지요. 몇 해 전 미혼모로 아들 패리스(Parys)를 낳았다고 하네요.

사진 작품을 보니 나신인 채로 자기의 아들과 행복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한 것도 더러 있더군요. 자신의 신체적 약점을 살리고 비너스 상의 영향을 받아 사진, 그림 등의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사진 작업에서 미로의 비너스 포즈로 빛의 명암을 이용해 자신의 초상화를 만들어 낸 작품도 있고요. 물론 팔이 없으니 입으로 그림을 그리겠지요. 아들을 출산한 이래로 사진과 디지털 이미지를 사용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모성애와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에 도전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왜 벌거벗은 모습의 임신한 장애 여성의 조상이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져야 하는지, 그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지만, 자신은 늘 이곳이 그 조상이 마땅히 있어야만 하는 가장 적절한 장소라고 생각했다는군요. 그 조상이 너무도 아름답고, 또 광장의 그곳에 있어야 할 가장 적절한 곳이라고 생각했답니다.

또 그것은 21세기가 '모든 사람에게 참으로 동등한 기회를 가지는 미래'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라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이 조상을 보면서 장애에 대한 동정심을 넘어 그 조상의 아름다움을 예술작품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좋아하게 되고, 그 장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생각했답니다.

트라팔가 광장에 자신의 임신한 모습의 조상이 세워진 9월에는 자신의 자서전(My Life in My Hands)이 출간되었는데, 이 자서전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일본어로 번역되었고, 한국어로도 번역된 모양입니다(아직 우리말 출간소식은 미처 듣지 못했지만).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러 왔을까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 탓이었던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거부하는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쉽게 좌절하고, 쉽게 생명을 버리고, 쉽게 부모를 매도하고, 선생과 친구를 배반하고, 자식을 버리는 요즘의 세태에서 21세기 비너스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러 왔을까요?

자식을 자신의 주머니에 있는 소유물쯤으로 여기는 어느 재벌도, 그래서 짧디 짧은 인생을 마감했던 얼마 전의 그 젊은이도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진 저 비너스를 바라보면서 생을 반성하는 시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생각해 봅니다.

쥐꼬리만한 권력과 새털보다 가벼운 지식으로 온갖 세상 물정을 아는 척 세상 사람들을 비웃으며 살아가는 그분들도 저 비너스를 보면서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저 자신부터 이지만요.

"이 세상 마시고 즐겨라. 죽음은 우리의 삶의 끝이고, 우리에게 남겨진 지상에서의 시간은 짧으니까. 그러나 일단 죽으면, 죽음의 끝은 없다."

이렇게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저 분은 '천사'보다도 아름다운 마음씨와 인간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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