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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즘(aphorism)은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나 글. 격언, 금언, 잠언, 경구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원래 '아포리즘(aphorism)'은 '분리하다(aphorizein)'란 그리스어에서 파생한 기술적 용어로 초기엔 예술, 농학, 의학, 법학, 정치학처럼 독자적인 원리나 방법론이 뒤늦게 발달한 학문 분야에서 주로 사용되었다.(엠파스 백과사전 참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금언으로도 유명한 히포크라테스의 의서(醫書) <아포리즘(Aphorisms)>에 최초로 등장한 이후 17세기 유럽에서 파스칼의 <팡세>, 라 로슈푸코의 <잠언집>, 라 브뤼예르의 <성격론> 등과 같은 아포리즘의 고전들이 대중적 인기를 획득한 데 힘입어 현재는 잠언, 단상, 경구, 명언, 격언, 금언 등을 망라한 문학 형식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아포리즘은 철학적 단상, 인생에 관한 잠언, 위인들의 명언 등으로 다채롭게 변주되어 분망(奔忙)한 현대인의 일상에 작은 위로와 안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문학과 대중, 대중과 작가를 매개하는 의사소통 수단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반면 아포리즘의 한계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데, 얼마전 시인 정은숙씨는 '잠언류의 글의 맹점은 전체와 맥락을 잘 보여주지 않아 무좌표의 충고에 그친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해 독자의 가슴속에 공명하는 아포리즘의 생명력은 가히 영속적이라 하겠다.

구약성경의 <잠언>, <전도서>,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파스칼의 <팡세>, 라 로슈푸코의 <잠언집>, 니체의 <서광>,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콜리지의 <내성(內省)의 안내> 등이 아포리즘의 고전으로 불릴 만한 작품들이다. 우리는 파스칼과 니체의 아포리즘을 통해 깊이 모를 천재의 심연을 들여다 보며, 아우렐리우스와 라 로슈푸코의 잠언을 통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란 텍스트의 일단을 독해한다. 또한 롤랑 바르트, 쇼펜하우어, 베이컨, 고은, 이어령 등 국내외 작가들이 남긴 주옥 같은 아포리즘은 밤하늘의 별처럼 명멸하며 우리의 앞길을 밝혀준다.

라 로슈푸코의 잠언

라 로슈푸코의 삶은 파란만장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스페인 전쟁, 프롱드의 난과 같은 격랑이 그의 운명을 휩쓸고 지나간 탓에 그의 얼굴과 목엔 항상 크고 작은 상처들이 훈장처럼 각인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허황된 무용담 대신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에 대한 도저한 통찰의 샘물을 길어 올린다. 그것은 모진 세월을 이겨낸 대가로 얻은 값진 전리품이었다.

그러나 그가 전장(戰場)에서 목도한 인간 군상의 참상은 그의 뇌리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로 인해 '인간의 미덕은 대개의 경우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로 시작하는 그의 <잠언집>엔 인간에 대한 회의와 혐오가 짙게 배어 있다. 그의 잠언을 일부 음미해 보는 것만으로도 이같은 경향은 쉽게 확인된다.

'모든 삶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자기애의 거대한 작동이다. 바다야말로 자기애의 생생한 이미지이다. 끊임없이 파도치는 바다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 자기애는 자신의 사유와 쉼없는 충동 사이에 계속되는 혼란과도 비슷한 것을 발견한다.' '강물이 바다로 사라지듯 미덕은 이기심 속으로 사라진다.' '오만은 만인에게 평등한 것이다. 다만 그것을 남 앞에서 드러내는 수단과 태도가 다를 뿐이다.' '세상에 솔직한 사람은 얼마 없다. 보통 세간에서 찾아 보게 되는 솔직은 다른 사람에게 신용을 얻고자 하는 교묘한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은 우정보다는 오히려 증오에 가깝다' '태양과 죽음은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자기 자신도 지킬 수 없는 자기의 비밀을 남이 지켜주길 바라는가?' '선의 극단은 악이요, 악의 극단은 선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쇼펜하우어에 비견될 만한 염세론자, 회의주의자였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궁극적으로 그가 전달하려 했던 주제는 인간의 유한성, 나아가 운명, 우주, 자연에 내재한 불가항력성이었다.

그의 잠언이 루이 14세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17세기 프랑스를 훌쩍 뛰어넘어 21세기의 서막이 오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대중적 호소력을 지니는 것은 인간의 위선과 허영, 이기심 등을 특유의 직관과 통찰로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 스탕달, 토마스 하디, 앙드레 지드 등이 그의 추종자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니체와 앙드레 지드는 라 로슈푸코의 계보를 잇는 아포리즘의 연금술사들이다.

아포리즘을 즐겨라

아포리즘의 마력에 이끌려 잠언집, 명언집 등을 탐독하다 보면 종종 발췌·초록의 충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이는 수동적인 독서에서 보다 능동적인 발췌·초록의 단계로, 궁극적으로는 창작의 단계로 이행하려는 열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적인 대문호들도 일반 독자에서 전문 작가의 관점으로 이행하기까지 필수 불가결한 몇 가지 단계를 거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발췌, 초록은 두 지점을 연결해 주는 고리 역할로서도 적합하다.

특히 디지털 시대가 도래해 종이에 의존하지 않고도 무한정 기록·저장할 수 있게 된 덕분에 갈수록 독서와 발췌·초록은 상호 보완적·동반적 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 명언, 격언 등을 주제별로 구분해서 정리해 놓거나 책에서 뽑은 단장적구를 수록한 사이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뇌수에 차곡차곡 쌓아 놓기만 하는 것보다 주제별로 정리해 두면 활용 가치가 더욱 커진다. 즉,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사랑, 우정, 친구, 여행, 효(孝), 교육, 결혼, 선(善), 악(惡) 등 주제별로 분류해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럼 힘들여 기억의 회로를 더듬지 않고도 쉽게 자료를 검색하고 활용할 수가 있다.

임어당은 "봄에는 문인(文人)들의 책을, 여름에는 사서(史書)를, 가을에는 선철(先哲)들의 책을, 겨울에는 경서(經書)를 읽는 것이 좋다" 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경쾌하고 생동감 넘치는 봄날의 왈츠 같은 아포리즘 몇 편을 골라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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