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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3일) 밤 집에서 자고 아쉬움도 없이 씩씩하게 떠나갔다. 이른 아침, 헤어짐의 아쉬움을 용돈 3만원에 담아 주었다. 학교 다닐 때 들어가던 등록금과 생활관비 생각하면 10배는 더 줘도 되는 액수다. 그걸 받고도 새날이는 거듭 감사해 했다. 이별 인사 몇 마디에 내 마음을 다 담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시커먼 얼굴과 아무렇게나 걸친 옷가지들을 훑어보니 웃음이 픽 나왔다. 신발도 문제가 없다. 다리도 안 아프다. 잘 먹으니 걱정마라. 뭐 해 줄까 물어도 아무것도 필요 없단다. 뭐가 되려고 이제 열여덟 저 나이에 저 모양으로 돌아다닐까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어제 잠자리에 누워서 오래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졸려 나 먼저 잠이 들었다. 새벽에 나는 두 번 깼다. 새날이가 나를 불러서였다.
"아빠, 이건 어떻게 풀어야 돼요?"하는 소리에 깼는데 이 녀석이 잠꼬대하는 소리였다. 볼을 한번 쓰다듬어 주자 다시 잠이 들었는데 얼마 안 지나서 또 '아빠!'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잠이 깬 내가 순간적으로 '왜?' 했더니 우물우물 하면서 돌아누워 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 꿈은 뭔가 새날이가 나를 가로막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넷에 내가 새날이 이야기를 써 올리는 꿈이었든지 내 카메라가 새날이를 찍는 꿈이었을 것이다. 새날이가 극구 반대하는 것이 자기가 사진 찍는 것과 자기 얘기를 글로 쓰는 거다.
잠자리에 들 때 나는 탁발순례단의 소소한 일화들을 듣고 싶었고 그걸 물었었다. 새날이는 매일매일 순례단 누리집에 순례일지를 쓰고 있으므로 그걸 보라고 했다. 이미 다 읽고서도 채워지지 않는 아이의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자식의 관심은 딴 데 가 있었다.
왜 이승만이는 독립운동을 했으면서도 친일분자들을 중용했냐고 내게 물었다. 새날이가 들고 있는 책을 흘낏 보니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이었다. 저 책 어디에서 이승만이를 떠올렸을까 궁금했다.
장황한 내 설명이 지루했을까. 두 번째 질문을 했다. 프랑스혁명 때 빠리꼼뮨이 만들어졌는데 혁명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1,2차에 걸친 프랑스혁명을 신이 나서 설명했다. 최초고용계약제 입법이 프랑스 학생들과 노동자들에 의해 저지된 것은 지구를 뒤덮고 있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맞이한 첫 좌절이라고 덧붙였다.
아침에 집을 떠나면서 서고에 올라갔던 새날이는 홍세화 선생의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를 빼 들고 내려왔다. 순례 중에 읽겠단다. 마침 5월23일에 홍세화 선생과 함께 파리기행을 떠나는데 따른 사전공부인 모양이다. 한겨레신문 큰 지킴이 활동을 열심히 했더니 내가 파리기행에 선발되었다는 연락이 왔기에 딸을 대신 보낸다고 허락을 얻어 새날이를 프랑스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용돈 3만원보다 파리에 가게 된 것이 더 감사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농어민신문> 5월초에 실리는 글.
새날이는 올 2월 다니던 풀무학교를 자퇴하고 가정학교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