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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곤 유고 국제전범재판소 재판관은 "밀로셰비치는 자연사했다"면서 독살설을 일축했다.
권오곤 유고 국제전범재판소 재판관은 "밀로셰비치는 자연사했다"면서 독살설을 일축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권오곤(53)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 이하 유고 국제전범재판소) 재판관은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은 평소 '좌심실 비대증'으로 혈압(140-220)이 굉장히 높았다"면서 "심근경색으로 인한 자연사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치된 유고 국제전범재판소에서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을 직접 심리해온 권 재판관은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가 죽기 직전에 주 화란(네델란드) 러시아 대사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혈액검사에서 항생제가 검출된 것과 관련 '독살설'을 쓴 것 때문에 독살설이 난무했지만 '자연사'로 확정되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전쟁범죄 관련 재판에 회부된 최초의 국가원수인 밀로셰비치 사건을 심리한 재판관 3인 중 한명인 권 재판관은 "밀로셰비치는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고혈압 환자였는데도 담배를 많이 피우고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직접 재판준비를 하느라 육체적·심리적 부담이 컸다"면서 "재판부에서 변호사를 선임해주었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는 법원을 위해 왜 변호사를 선임하냐'면서 혼자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말해 독살설을 일축했다.

'발칸의 도살자'로 불린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은 지난 3월 11일 헤이그의 유엔 구치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밀로셰비치는 1989년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2000년 실각하기까지 약 12년간 발칸반도를 전쟁과 인종청소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다. 코소보 전쟁 등 90년대 발칸에서 일어난 66건의 참상이 세르비아에 의한 유고연방 지배를 추구한 그에 의해 촉발됐다.

유고 국제전범재판소는 2001년 전쟁과 반인륜 범죄, 보스니아의 무슬림 7500여명 학살 혐의를 적용해 그를 기소하고 수감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재판은 올해 말 종신형 선고로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지난 2001년 박춘호(76)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두번째로 국제재판소 재판관에 선출되어 임기 4년을 마치고 지난해부터 연임한 권 재판관은 최근 부활절 휴가를 맞이해 일시귀국해 가진 인터뷰에서 "대량 학살로 재판에 회부된 국가원수에 대한 최초의 재판이었는데, 판결선고에 이르지 못하고 끝나 아쉽다"고 밝혔다.

"밀로셰비치, 고혈압 환자임에도 담배 피우고..."

지난 2002년 1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치된 유고 국제전범재판소에 출두한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의 모습. 그는 재판을 받던 도중인 지난 3월 11일 헤이그의 유엔 구치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2002년 1월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치된 유고 국제전범재판소에 출두한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의 모습. 그는 재판을 받던 도중인 지난 3월 11일 헤이그의 유엔 구치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AP/연합뉴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권 재판관은 아울러 "국제형사법은 그 실체법의 면에서나 절차법의 면에서 아직도 형성 과정 중에 있다"고 전제하고 "밀로셰비치 재판에 대해서도 영미식 직접주의가 강조되어 재판이 지연되었다는 반성에서 대륙법 제도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 하는 논의가 있다"면서 "이에 비추어 우리나라 형사재판제도는 완전 대륙식도 아니고 영미법 요소를 많이 받아들인 효율성 있는 좋은 제도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러나 이처럼 외형적으로 좋은 제도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공정한 재판을 위한 무죄추정의 원칙, 판사의 독립성과 공평성, 무기 대응의 원칙(equality of arms) 등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특히 공정한 재판 및 피고인의 권리 보호에 관하여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는 기준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부분을 국제적 기준에 합당하게 개혁하는 것이 한국 형사사법 선진화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재판관은 구체적으로 "무기 대등의 원칙은 공정한 재판 이념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피고인이 검찰과의 관계에 있어서 절차상으로 심각하게 불리한 위치에 처해져서는 안된다는 개념인데, 검찰은 재판 직전에 증거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공판 중심주의'라고 말한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법원과의 관계에서 적용되는 것이지 피고와의 관계에서는 재판 전에 다 주는 것이 검찰의 기본적 의무이자 피고의 권리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본다면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게되면 왜 유죄인지를 알아야 하고 항소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우리는 법관이 무죄 판결은 (이유를) 자세히 쓰지만 유죄 판결은 간단해서 피고측의 증거는 왜 안 받아들였는지, 또 예를 들어 양형이 왜 5년이고, 집행유예가 왜 안되고, 보석 결정은 왜 허용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서술 안한다"고 말해 법관들의 반성을 촉구했다.

권 재판관은 특히 "재판의 중요한 내용이 밀실에서, 로비 또는 청탁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일반의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면서 "정의는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행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Justice must not only be done but also be seen to be done)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재판관은 18일 이용훈 대법원장을 면담한 데 이어 이날 오후 대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법원 사법제도비교연구회(위원장 이규홍 대법관) 회의에 참석해 '국제형사재판과 우리나라 형사재판의 비교법적 고찰'이란 주제 발표를 했다. 또 19일에는 사법연수생들에게 특강을 했고 24일 국회 법사위원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바쁜 국내일정을 소화한 뒤에 임지로 복귀한다.

한국인으로서는 국제재판소에 두번째로 진출한 권오곤 유고 국제전범재판소 재판관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국제재판소에 두번째로 진출한 권오곤 유고 국제전범재판소 재판관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권오곤(53) 재판관은 대구고법 부장판사 시절인 2001년에 유엔총회에서 정부 추천으로 14명을 뽑는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 ICTY) 재판관에 출마해 1차 투표에서 당선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연임에 성공해 11월부터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ICTY는 구 유고슬라비아 전범을 처리하기 위해 2008년까지 활동을 목표로 한 한시적 국제재판소다. ICTY는 재판부, 검찰, 사무국으로 구성돼 있다. 재판부는 1심 3개 재판부에 9명의 판사, 항소부에 7명의 판사로 구성되어 있고 27명의 임시판사가 추가로 관여하고 있다.

특히 권 재판관이 심리를 맡은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국가원수에 대해 이뤄지는 첫 국제형사재판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권 재판관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77년부터 판사로 활동해왔으며 판사 재직중에 1985년 하버드대 법과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면서 법원 내의 대표적 국제통으로 자리를 굳혀왔다.

현재 국제재판소에 진출한 한국인 재판관으로는 지난 1996년에 선출되어 연임중인 박춘호(76)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이 최초이고, 권 재판관이 두번째이다.

이어 지난 2003년에는 송상현(64) 서울대 교수가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집단살해죄 등 중대한 국제법을 위반한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2002년 7월 설립된 상설 국제사법기구인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초대 재판관으로 선출되어 최근 연임에 성공했다.

이밖에 ICTY(유고 국제전범재판소)의 '자매재판소'인 르완다 국제전범재판소(ICTR)에는 군 법무관 출신의 박선기 변호사가 비상임재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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