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상자가 다시 등장했다. 4억원의 현금다발을 가득담은 채 말이다. 그것도 현장에서 적발되었으니,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 될 상황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다르다. 사과한다면서도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화갑 대표는 특별당비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구속된 조재환 사무총장도 처음에는 선물인줄 알고 받았다고 했다가, 특별당비였다고 말을 바꿨다.
기본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선물로 생각했다면 돈이 들어있는줄 몰랐다는 이야기이고, 특별당비였다면 돈이 들어있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며 억지를 부리고 있는 모습이다.
특별당비라면 왜 마약대금 주고받듯이 한밤 호텔주차장에서, 그것도 사과상자에 현금을 담아 주고받았을까. 은행은 두었다 뭐에 쓰려고 만든 곳일까.
과거의 일이지만 우리 정당들은 선거를 앞두고 특별당비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중 총재 시절의 옛날 민주당에서도 전국구 공천을 할 때 특별당비를 받았다. 야당들이 선거자금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던 당시의 정치상황에서는 불가피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당이 개설한 공식계좌를 통해 받았지, 사과상자를 주고받지는 않았다.
민주당은 물의가 빚어지자 최낙도 전 의원을 출당조치했다.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빚얻어 가면서 4억원씩이나 특별당비를 낸 공로자에게 감사장은 주지 못할망정 출당조치라니…. 특별당비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이유이다.
민주당은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노무현 정권의 '민주당 죽이기' 음모라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검은 돈 주고받는 일이 어떻게 정권의 음모가 될 수 있을까. 그러면 사과상자를 준 최낙도 전 의원이 노무현 정권의 '프락치'라는 말인가. 역시 적반하장의 억지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석고대죄의 모습은 커녕...
결국 법원은 조 사무총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발부 사유를 보면 우리의 상식적인 판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증거인멸의 개연성이 크고, 돈의 명목에 대해 조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한 순수한 당비로 보기 어렵고, 공천과 유관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상황이 이쯤되었으면 민주당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어떻게 국민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참담한 생각이 든다. 지금 민주당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과 억지로 사태를 모면하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정치가 이렇게까지 뻔뻔해도 되는 것일까. 백일하에 드러난 검은 돈 거래의 실체를 눈앞에 두고도, 상식에 반하는 거짓으로 이를 덮으려는 모습. 그 중심에 한때 '리틀 DJ'로 불리웠던 한화갑 대표가 있다. 지금 민주당의 모습이, 자신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과 얼마나 배치되는가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지난 총선에서 '삼보일배'를 했던 민주당이었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 뒤늦게 삼보일배를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참회하는 모습이라도 보이겠다는 마음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그 때와도 달라보인다.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당내에 돌고 있는 각종 공천비리설을 뿌리뽑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공천장사'도 문제이지만, 드러난 사실을 거짓으로 덮으려는 모습도 더 큰 문제임을 민주당 지도부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일까. 민주당 안에서 터져나오는 자성의 목소리에 이제라도 민주당 지도부가 귀기울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