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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소녀'의 중학교 때 반주 모습.
'피아노소녀'의 중학교 때 반주 모습. ⓒ 한나영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돈을 벌게 되었다. 아는 분의 소개로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생, 중학생인 아이들 셋을 30분씩 가르쳐주고 주급으로 20달러를 받기로 했으니 시간당 8달러로, 적게 받는 건 아니다.

딸아이는 피아노를 전공하지는 않지만 피아노 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다. 기분이 좋으면 좋아서 피아노를 치고, 나쁘면 나빠서 피아노를 치는 그야말로 피아노에 죽고 피아노에 사는 '피아노 소녀'이다.

그렇게 피아노를 좋아하는 딸은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반주를 해 왔고 미국에 와서도 반주를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대로 잘 치는 것 같다. 그렇긴 해도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피아노를 가르쳐 본 경험은 없는 만큼 사실 피아노 레슨 제의가 부담스럽긴 했다.

"제 아이가 전공도 안 하는데 왜 부탁을 하세요?"
"잘 치니까요. 처음 보는 곡들도 아주 잘 치잖아요. 그런 걸 우리 아이들이 좀 배웠으면 해서요. 우리 애들도 취미로 하는 거니까 그냥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게만 해주면 돼요. 무엇보다 악보를 제대로 읽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목적으로 시작된 딸의 아르바이트였다. 딸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을 벌게 된 일이 무척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식'으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게 되었으니 어찌 신이 안 나겠는가.

""돈 받으면 내가 크게 쏠게."

돈 벌기는커녕 취미생활 할 시간도 없는 한국 청소년들

딸이 크게(?) 쐈어요.
딸이 크게(?) 쐈어요. ⓒ 한나영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자동차 그룹의 비자금' 문제도 사실은 돈을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생긴 비리가 아니던가. 하여간 돈이 생긴다고 하면 누구든 좋아할 것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돈이 필요 없을까? 천만의 말씀! 돈이 필요한 것은 오히려 청소년들이 더할 것이다. 그들은 때가 때이니만큼 사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고, 가고 싶은 데도 많은 '호기심 천국'에 사는 10대들이다. 그런만큼 그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돈을 아이들은 어떻게 충당하나. 대부분은 부모로부터 '거저' 받는다.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저들은 공짜로 돈을 받는다.

물론 아직 미성년자이니 그럴만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좋은 때이긴 하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들이 원하는만큼 돈을 주지 않는다. 아니, 줄 수가 없다. 아이들의 '무한대 욕구'를 충족시켜 줄 만한 엄청난 재력을 가진 부모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늘 궁한 상태로 지내는 게 우리 아이들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직접 벌어서 필요한 용돈을 충당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불가능하다. 아니, 원천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딸아이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다녔다. 그런지라 나는 우리 고등학생들의 '삶'이 어떠한 지를 잘 안다. 한마디로 팍팍하다. 7시가 되기 전에 아이들은 칼칼한 입에 밥을 넣고 하품을 하며 학교로 향한다.

점심, 저녁을 모두 학교 급식으로 때우고 밤10시까지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한다. 여기까지는 모든 학생들이 피할 수 없는 기본이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데 곧장 오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대개는 학원이나 독서실을 가거나, 또는 늦은 밤에 과외를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주말에는 시간이 있을까. '주말반' 학원을 가는 경우도 있고 고3인 경우는 다시 등교를 한다. 그러니 돈을 벌기는커녕 취미 생활을 할 시간도 없다.

"엄마, 대학 첫 학기 등록금만 내 줘요"

"공부도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주차요원 캐시
"공부도 열심히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주차요원 캐시 ⓒ 한나영
이곳은 어떠한가. 고등학생인 딸아이는 매일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정확하게 3시 30분이면 집에 온다. 숙제가 많아서 숙제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치는 등 여가 활동을 즐긴다. 그리고 화요일이면 수업이 끝난 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내가 아는 이곳의 한 남학생은 태권도 공인 3단의 실력을 갖춘 유단자로 11학년이다. 그는 매일 태권도 도장에서 사범의 일을 돕는 '새끼 사범(?)'으로 한 달에 500달러를 벌고 있다. 그 아이 역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아마 부모로부터 서서히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딸아이 친구 가운데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애들이 몇몇 있다. 쇼핑몰에서 점원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몸이 불편한 할머니의 개를 운동시키는 일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시간이 없어서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뒤에도 여전히 손을 내미는 대학생들을 보면 솔직히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캥거루족'의 출현도 어찌보면 어렸을 때 부터 이를 방치해 온 우리 부모들의 잘못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곳에서 내가 만난 대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 버는 일에도 아주 적극적이었다. 학교 주차장에서 시간당 6달러50센트를 받고 일을 하고 있는 캐시. 그녀는 회계학을 전공하는 2학년 학생이다. 많은 한국 엄마들이 벌벌(?)하는 공부와 성적 문제를 그녀에게 물었다.

"아르바이트 하느라 시간을 뺏겨서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게 아니에요?"
"천만에요. 이래봬도 지난 학기에 모두 A학점을 받은 장학생이에요."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곳 학생들을 보면서 딸아이도 깨닫는 바가 많은 것 같다.

"엄마, 대학 첫 학기 등록금만 내 줘요. 그러면 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다닐 게요."

등골이 휜다는 대학 등록금을 한 학기만 대면 된다고 하니 내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물론 그 말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딸아이는 자신이 처음 번 돈으로 우리 네 식구를 베트남 레스토랑으로 초대했다. 크게 쏘겠다는 자신의 말을 실천한 것이다.

그나저나 딸이 돈을 벌어서 제 용돈은 충당한다고 하니 기특하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결국 내 품을 떠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운한 느낌이 드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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