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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대지 발굴 현장
유상대지 발굴 현장 ⓒ 이용찬
지난 21일, 유상대(流觴臺)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발굴현장(전북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 577-2번지 일원)에서 (재)전북문화재연구원(최완규 연구원장)이 '정읍 유상대지 발굴조사'에 따른 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유상대지는 과거 통일신라시대의 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과 검산대사(劍山大使)가 유상곡수(流相曲水, 구불구불한 물길에 술잔을 흘려보낸다는 뜻)연을 즐겼다는 곳이다. 유상대지 발굴 조사는 2004년 4월 초, 레이저 전자 탐사를 통해 시굴조사를 한 결과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석렬(石烈) 구조가 발견됨에 따라 시작됐다.

유상대 표지석. 하지만 이 표지석은 판독이 불가능한 상태다
유상대 표지석. 하지만 이 표지석은 판독이 불가능한 상태다 ⓒ 이용찬
이후 유성엽 전 정읍시장이 지역 주민들에게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고, 해당 지역을 역사교육장으로 만들기 위해 전북문화재연구원에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를 의뢰했다.

전북문화재연구원은 2005년 11월 8일부터 지난 2006년 3월 16일까지 5개월 동안 발굴하는 과정에서 동, 남, 북쪽 외각에서 석렬 구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북쪽 석렬 구조 남쪽에선 적심석(돌 따위를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는 돌)으로 추정되는 유구(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자취) 1기가 발견됐다.

최치원 선생 풍류 즐기던 곳 발굴 조사 성과 못 내

적심유구
적심유구 ⓒ 이용찬
1차 발굴에서 적심석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가 발견됨에 따라 전북문화재연구원은 2차 추가 발굴조사에 나섰다. 후손들이 최고운 선생을 기리기 위해 1880년대 유상대 옛 터 위에 세웠다는 감운정(感雲亭)을 일시적으로 해체하고, 감운정 터를 비롯한 남쪽 지역에서 추가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큰 기대를 모았던 유상대지 발굴조사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조사결과 발표회장에서 전북문화재연구원 박영민 연구원은 "조사결과 암반위에 쌓인 퇴적층의 토사는 고려시대 이후의 것으로 추정되며, 출토된 유물은 기와편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다"고 밝혔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장의 발굴조사 결과 발표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장의 발굴조사 결과 발표 ⓒ 이용찬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장은 "기둥을 세웠던 기초석인 적심유구와 석축들은 고려시대 초기 것으로, 석축과 적심석이 동시대인 점으로 미루어 이곳이 유상대일 가능성을 어느 때 보다 현실적으로 느꼈다"며 "하지만 신라시대 고운 선생이 즐겼을 암반 위 유상곡수연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성과가 없었음을 털어놓았다.

이어 "다만 조선시대 조지겸, 조항진 등이 유상대에 정자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 발굴 당시 조사된 유구는 1682년, 또는 1738년 당시의 유구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예산 부족으로 한정된 지역만 조사

전북문화재연구원 박영민 연구원이 적심석 돌무더기를 가리키고 있다.
전북문화재연구원 박영민 연구원이 적심석 돌무더기를 가리키고 있다. ⓒ 이용찬
매장문화재 전문기관인 호남문화재연구원 윤덕향 원장은 "적심석이라고 추정되는 돌무더기들이 보이기는 한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그는 "적심석들로 추정되는 돌들로 추상적인 건물 그림을 그려 보았을 때 나름의 집이나 누정과 같은 4각형이 보여야 하지만 현재의 절개지면에서는 그것마저 유추하기 힘든 3각형"이라며 "적심석들로 추정되는 돌무더기들은 보이지만 그것이 모두 건물 터라고 입증하기는 힘든 구조"라고 발굴 조사의 한계성을 지적했다.

윤 원장은 또 "좁은 지역 내에서만 조사가 이루어져 4각형의 건물이 그려지지 않는 건물구조를 나타내고 있으나, 보다 적극적인 발굴 작업을 위해서 좀더 지역에서 광범위한 발굴이 이뤄졌더라면 확증을 찾을 수 있는 결과들이 나왔을 수도 있지 않겠나"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본래 광해군 때 그려진 칠광십현도를 고종황제를 그린 채용신 선생이 다시그린 칠광십현도. 칠광십현도 빨간색 원 안이 유상대.
본래 광해군 때 그려진 칠광십현도를 고종황제를 그린 채용신 선생이 다시그린 칠광십현도. 칠광십현도 빨간색 원 안이 유상대. ⓒ 이용찬
이번 조사와 관련 남전마을 김환빈(73)씨는 보충설명에 나선 전북문화원 최완규 원장에게 "현재의 절개지면보다 도로 아래쪽에 내가 어릴 때, 바위 위에서 물로 뛰어내리던 바위가 있었고 그 옆쪽으로 고목나무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 김씨는 "어릴 때 기억으로 현재 칠광십현도에 표기된 유상대의 옛 터와 제가 수영하고 놀던 곳이 상당부분 흡사하다"며 "그 지역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핵심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유상대의 흔적이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이번 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완규 원장은 이에 대해 "정읍시 발굴 조사 예산이 많지 않아 발굴조사가 보다 넓고 광활한 지역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현재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나타난 지역에서 정확한 유상대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이 지역이 아니다, 라고 표현하기보다 조금은 미흡하지만 최고운 선생을 사모하며 제사 지냈던 옛 터임을 상기해 이곳을 유상곡수연을 즐기던 곳으로 이미지화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유상대 발굴조사를 위해 레이저 전자 탐침 시굴조사를 제외하고 전북문화재연구원에만 4200만원 정도가 투입됐다고 정읍시는 밝혔다.

또한 시 관계자는 "일부 정읍천으로 흐르는 제방 밑에 암반석들이 보인다. 하지만 제방과 제방으로 연결되는 도로와 나무들을 비롯한 장애물들이 많아 예산이 부족한 상태여서 한정된 조사가 이루어졌다"고 이번 조사가 미흡했음을 밝혔다.

이어 "호남문화재 연구원장인 윤덕향 교수가 지적했던, 또 다른 적심석 돌무더기를 찾는 부분 발굴은 계획돼 있지만 유상대지를 확증할 수 있는 대대적인 추가 발굴 작업은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아직 계획이 없는 상태"라고 입장을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남권의 밝은신문 전북투데이(www.jbtoday.com)에도 기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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