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세계 10대 컨테이너 항구 | | | | 1.홍콩 - 20.449.000 TEU
2.싱가포르 - 18.411.000 TEU
3.상하이 - 11.280.000 TEU
4.선전 - 10.650.000 TEU
5.부산 - 10.408.000 TEU
6.가오슝 - 8.843.000 TEU
7.로스엔젤레스 - 7.179.000 TEU
8.로테르담 - 7.179.000 TEU
9.함부르그 - 6.138.000 TEU
10.앤트워프 - 5.445.000 TEU
*자료: Capgemini (2006년) | | | | |
1956년 4월 26일. '아이디얼 X'라는 이름의 배 한 척이 58개의 알루미늄 박스를 싣고 뉴저지의 항구를 떠났다. 5일 후 배는 텍사스 휴스턴 항에 닻을 내렸고 이 알루미늄 박스는 최종 목적지로 가는 트럭에 다시 옮겨졌다. 인류 최초의 컨테이너 박스 수송은 이렇게 시작됐다.
미국의 운송업자 말콤 맥린이 경비 절감을 위한 고민 끝에 내놓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컨테이너 박스는 이제 세계적으로 현재 2천만 개가 넘게 움직이면서 인류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무엇보다 컨테이너 박스는 부산항, 크게는 한국 경제의 산업화를 촉발시킨 촉매였다.
말콤 맥린이 컨테이너 박스라는 규격화된 운송장치를 고안해 내기 전까지 항구는 더럽고 혼란스러운 곳이었다. 화물은 크기가 제 멋대로였고 걸핏하면 분실되기 일쑤였다. 컨테이너 박스는 전근대적이던 항구의 하역 작업을 표준화하고 규격화해 제품가격의 최고 25%에 달하던 운송비를 획기적으로 낮추었고 이에 따라 원거리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선박, 하역 크레인, 운송트럭 및 기차에 이르기까지 화물의 운송 경로에 있는 모든 설비가 규격화된 사이즈에 따라 설계돼 수십만 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끊임없이 이동시켜 주면서 운송 효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졌기 때문. 현재 컨테이너 박스 1개의 수송비는 길이 40피트 짜리를 기준으로 2천 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은 저렴한 수송비 덕에 저임금을 찾아 한국과 동남아 등에 생산기지를 속속 지었고, 이들 공장에서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된 제품들은 부산항을 통해 미국과 세계 곳곳의 항구로 실려나갔다.
부산항은 이 컨테이너박스에 힘입어 세계 유수의 항구로 성장할 수 있었다. 비록 급속하게 성장하는 중국에 밀려 지금은 한 풀 기세가 꺾였지만 부산항은 여전히 연간 1140만 TEU(*20피트 짜리 컨테이너 1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처리하며 세계 5위의 항구로서 위상을 지키고 있다.
규격화와 표준화를 통해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컨테이너 박스는 인터넷과도 매우 흡사하다. 인터넷은 국가와 통신사마다 제 각각이던 통신 규정을 데이터 패킷 통신에 바탕 한 TCP-IP 프로토콜로 통일시켰고 이에 따라 인류의 통신효율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부산항이 차세대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를 도입해 첨단의 물류기지를 구축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그래서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인류가 20세기에 고안해낸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표준화 도구인 컨테이너와 TCP-IP가 부산에서 결합하고 있기 때문. 부산항은 모든 컨테이너에 RFID 전자 칩을 부착해 물류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IT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중국의 거센 추격을 따돌린다는 유포트(U-Port)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경제가 IT를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달라지면서 20세기 제조업 시대의 총아였던 부산항의 위상도 이제 많이 달라졌다. 이제 한국 최대의 교역 항은 부산항이 아니라 인천공항이다. 인천공항은 2004년 통관금액 기준으로 1588억 달러의 교역량을 기록해, 1565억 달러의 수출입 물량을 취급한 부산항을 앞지르며 세계 3위의 화물공항으로 부상했다.
중량 기준으로는 전체 수출입 화물의 0.3%에 불과하지만 반도체, 휴대폰, LCD스크린 등 주로 고가의 IT제품을 집중적으로 취급했기 때문. 인천공항의 약진에 힘입어 대한항공 역시 독일의 루프트한자를 제치고 항공화물 수송 부문에서 세계 1위를 달성했다.
20세기 경제 발전과 세계화의 촉매였던 컨테이너 박스지만 9·11 이후 테러 공포가 커지면서 이제 컨테이너 박스는 미국 정부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금속제 박스에 화물을 가두어 놓는 수송방식의 특성상 도대체 그 안에 어떤 물건이 실려 있는지 외관상 알 수가 없기 때문.
미국 정부는 테러범이 컨테이너 박스에 핵무기나 방사능물질 등 대량살상무기를 담아 미국을 타격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항구에 대한 검색과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그 많은 컨테이너 박스를 일일이 열어보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에 미국은 커다란 X레이 투사기에 박스를 하나씩 통과시켜 본다는 계획이지만, 테러예방효과는 미지수다.
이제 세계 경제를 마비시키기로 작심하지 않은 다음에야 어느 누구도 감히 컨테이너 박스를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것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4월 26일. 길거리에 지나가는 컨테이너 박스를 보거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속으로 50세 생일축하 노래라도 읊어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