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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끼~엑! 깨엑!"

산속 깊숙한 오래 된 집터 자리에 군락을 이룬 머위를 뜯고 있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집 개, 곰순이 녀석이 뭔가를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곰순이! 너 거기서 뭣 혀!"

내 호통 소리와 마주친 녀석은 하던 동작을 멈추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딴청을 부렸습니다. 녀석의 발 아래에서는 여전히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들쥐나 청설모 쯤으로 여기고 성급히 달려가 보니 놀랍게도 새끼 산토끼였습니다.

이미 뱃가죽이 벗겨진 산토끼는 더 이상 비명조차 지르지도 못하고 한 순간 두 다리를 바르르 떨다가 멈췄습니다. 산토끼를 들어올리자 몸체가 힘없이 툭 꺾였습니다. 숨이 끊어진 것 같았지만 몸은 따뜻했습니다.

난 한달에 서너 차례 고기 뜯으면서 이 놈을 야단쳐?

"이 놈! 살아있는 거 함부로 물어뜯지 말랬지!"

녀석은 얼마 전 닭장에서 뛰쳐나온 닭을 물어뜯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먹이감을 빼앗길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녀석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지게 작대기까지 치켜 올려가며 소리소리 지르자 녀석은 잔뜩 겁에 질려 '나 죽었네'로 그 자리에 발라당 누워 애교를 떨었습니다. 선하게 생긴 축 처진 두 눈으로 잘못했다며 싹싹 빌고 있는 것이었지요.

사실 녀석은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알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주인의 유별난 행위에 잔뜩 겁먹은 녀석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습니다. 한 달에 서너 차례씩 고기를 먹는 인간이 이빨 성성한 놈에게 뭘 물어뜯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있었으니까요.

산토끼를 묻어줄까 생각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애써 잡은 사냥감을 묻어 둔다는 것이 어찌 보면 더 희극적인 일이었습니다.

지게에 머위와 부엽토를 한 자루씩 실어 오면서 나는 곰순이 녀석이 뒤따라오든 말든 모른 체하고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녀석은 지게 뒤꽁무니를 뒤따라오는 척 하다가 산토끼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렇게 녀석은 그날 주인의 묵인으로 사냥감을 포식했습니다.

녀석이 산토끼의 허리를 꺾어놓고 거침없이 먹어치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비록 5개월 밖에 안 된 어린 녀석이었지만 깊숙한 곳에 야성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 날 나는 약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피비린내나는 생고기를 먹게 되면 야성이 살아나 위험한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하지만 녀석의 야성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었습니다. 녀석이 좀 더 크면 개 줄에 묶여 꼬박꼬박 개밥이나 축내며 일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루 한두 차례의 산책으로 위로받으면서요.

'거시기네 아버지'가 곰순이를 탐한 이유는

곰순이가 산토끼의 머리만 남기고 통째로 먹어 치운 며칠 후. 녀석과 함께 산책길을 나서다가 우리 동네 '거시기네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거시기, 그거 어디서 구할 수 없나?"
"뭘유?"

평소 인사를 건네면 공연히 먼 산을 바라보곤 했던 '거시기네 아버지'. 이번에는 먼저 말까지 걸어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해 불편한 몸이지만 늘 흙묻은 작업복에 발통 네 개 달린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는, 동네에서 드물게 성실한 농사꾼입니다.

"아, 그 개 말여."
"이 개 구하기 힘든디."
"거시기, 그거 나 한티 팔면 안 뎌?"
"에이, 이거 파는 거 아뉴, 인저 오 개월밖에 안 된 새낀디."
"그람 어디서 줌 구해줘, 그거 어디서 데리고 온겨?"
"아는 사람이 준규, 혓바닥까지 까만 중국개 차우차운디, 돈주고 살라믄 비쌀 건디."

인사조차 받지 않아 속사정을 통 모르고 지내던 터라 나는 그때까지 '거시기네 아버지'가 개를 엄청 좋아하는 애견가인 줄 알았습니다. 곰순이 녀석에게 유별난 관심을 보이고 있었으니까요.

"그 놈 암놈여, 숫놈여?"
"암놈인디?"
"잘됐네, 새끼 나믄 한 마리 줘, 내가 몸이 약해서…."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거시기네 아버지'가 힘이 쏙 빠진 표정으로 간청했습니다. 어째 낌새가 좀 이상했습니다.

"근디? 혹시…."
"그려, 내 몸에는 까만 개가 조티야, 약에 쓰는 흑염소도 까맣찮여, 푹 고아먹으면 조티야, 그거 혓바닥까지 까맣타며."

축 처진 눈매에 부실부실한 털 때문인지 털보인 나를 빼닮았다는 곰순이를 푹 삶아 먹고 싶다니,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화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거시기네 아버지'의 표정이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버럭 화를 내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습니다.

'거시기네 아버지'는 저만치 가면서도 아쉬운 듯 자꾸만 뒤돌아보았습니다. 개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현장을 목격했다면 난리났겠지요? 하지만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겠습니까? '거시기네 아버지'의 표정은 곰순이가 산토끼를 잡아놓고 먹고 싶어 환장하겠다는 그런 표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곰순이에게 흐르는 야생의 피는

그날 저녁, 곰순이 녀석이 어디선가 뼈다귀 하나를 물고 왔습니다. 닭 뼈다귀도 아니었고, 소나 돼지뼈 같지도 않았습니다. 아내가 뼈다귀를 가만히 뜯어보더니 그럽니다.

"저거 거시기네 집 주변에서 물고 온 거 아녀?"
"…그려?"
"그 집 개 많았는데, 요즘은 한 마리도 없잖어."
"어? 그려? 곰순이 동네 밖으로 내보내면 안 되겠다. 개뼈다귀 물어뜯다가는 광견병 걸릴 염려도 있고, 또 '거시기네 아버지'가 곰순이를 무지무지 하게 좋아하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도 개 풀어놓는 거 무지 싫어하니까 이젠 묶어놔야지."

곰순이를 산에 풀어놓자니 산짐승들이 불쌍하고 동네방네 싸돌아다니게 하자니 사람들이 가만 놔두질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곰순이를 묶어놓고 어쩌다 산책이나 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야성을 잃어가는 자연생태처럼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생태전문잡지 월간 <자연과 생태(www.econature.co.kr)> 5월호에 송고한 내용을 수정해서 올립니다. 곰순이는 지난 4월 4일자 기사 <우리집 '곰순이'와 '야옹이'의 전쟁>에 자세히 소개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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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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