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뼈만 남은 것 같은 앙상한 몸에 하얀 하의 하나를 입고 있는 안경 쓴 노인네, 너무 이름을 많이 들어서 지겨운 사람,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것 같은 고리타분한 사람 정도이다. 이를테면 간디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처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 지겨워진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정작 그가 쓴 글 한 줄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소 놀라워하면서 손을 뻗게 되었다. <간디, 나의 교육철학>.
간디가 매체에 기고했던 에세이 형식의 글을 모아놓은 이 책은 인도의 교육에 대한 그의 철학과 비전, 그리고 절망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한 시간은 86년이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기간의 두 배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기간이다. 이 기간동안 인도라는 나라는 육체적으로 기아에 허덕이고 지저분한 외관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어에 의해 모국어의 자리를 조금씩 침탈당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조금씩조금씩 주체성을 잃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영어로 받았던 교육은 불행히도 나와 영어로 하는 교육을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 가족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들어버렸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셨다. 나는 정말로 그러길 원했지만, 결국 아버지께서는 당시 내가 배우고 있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참으로 많은 것을 알고 계신 분이었지만 영어는 단 한 자도 모르셨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했기 때문에 나는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빨리 우리 집에서 점점 더 이방인이 되어갔다. 그렇다. 영어로 받은 교육 덕택에 나는 그때 분명히 우리 집안에서 가족들보다 '우등'한 종자가 되었고, 나의 옷차림조차도 가족들과 구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든 교육을 영어로 한다는 것은 인도인들을 양분시켰다. 가깝게는 가족들과의 위화감을 조성하게 되었고, 전통과도 당연히 멀어지게 되었다. '교육'하면 당연히 '영어'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모국어로 가르쳤으면 5년이면 배웠을 다른 과목 교육을 영어로 가르쳤기 때문에 12년씩 걸리는 국가적 낭비를 유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영어를 우선시하면서 영어의 발상지인 영국문화, 서양문화를 우등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젊은이들의 인식이 문제였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됨으로써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화적, 정신적 피폐함에 대한 간디의 통렬한 비판을 보면서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간디가 살았던 시절의 인도처럼 가난하거나 위생상태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영어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그에 따른 문화적 종속이라는 면에서 한국의 현주소는 간디가 아파했던 인도의 현실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네 현실에서도 '영어교육'은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으뜸인자로 꼽히고 있고 여기저기서 '영어만 쓰는 마을'까지 생겨나고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아이의 영어구사능력 정도가 부모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표상으로 가늠되고 있는 실정이다.
회사일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스스로도 아연해질 때가 많다. 내가 이 '파일'을 '킵'했다가 '어태치'해 줄 테니까 받아보고 나한테 '컨펌'해줘, '땡큐'. 이 정도의 문장들은 사실 사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가는 말 중의 하나이다. 언어가 문화를 어떻게 지배하게 되는지,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영어구사자들이 어떤 식으로 양분되게 되는지에 대한 간디의 통렬한 비판은 한국인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간디는 또한 문자와 책을 중심으로 하여 관념적인 방향으로만 나아가고 있는 교육을 비판한다.
...문자 익히기는 중요하긴 하지만, 그 중요성이 잘못 강조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감히 경고하고자 한다. 시골 마을 어른이나 어린이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지 않고는 소위 '농촌 교육'이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가정에 기초해서 일을 추진하지 말라. 역사나 지리, 기초 수학과 같이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 중에서 많은 것들이 문자를 모르고도 얼마든지 구어로 전달될 수 있다. 눈과 귀 그리고 혀가 손에 선행한다...
그는 지도를 보면서 지명을 암기하기보다는 동네의 곳곳을 직접 가보면서 산과 강의 지형을 익히는 것이, 천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공식을 배우는 것보다는 직접 물레질을 해보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모든 교육이 실내에서 이루어지고 체육 시간에만 잠깐 동안 신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교육제도도 '신체와 정신의 조화'를 깨뜨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위해, 왜 가르쳐야 하는가'를 먼저 정립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철학에서 출발한 교육방법이다. 역시 '본질적인 교육'을 전혀 시키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재 교육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지금부터 100년도 더 전에 태어났던, 한국에서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말이 구절구절 마음에 와 닿는 것을 보니 왜 간디가 내게 그토록 '지겨운 이름'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도 같다. 그는 인도인만이 아닌 인류 전체의 '마하트마'였던 것이다.
그는 갔고, 인도는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인도의 곳곳에 새겨진 식민통치의 기억은 '영어'라는 두터운 외피와 함께 인도 문화에 깊게 깊게 새겨져 있다. 그가 예견했던 많은 현상들이 실제로 일어났고 인도는 그가 예상했던 여러 문화현상들이 일어날 때마다 두고두고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간디는 '진정한 교육이란 학생들의 내면에서 최선의 것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겉모양은 많이 다르지만 인도의 속내와 많은 면에서 닮아있는 우리나라의 교육계 인사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