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의 고백에 의하면 디지털한양은 학술적 가치는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자료는 풍부해 활용가치는 매우 크다고 한다. 하지만 학술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알고 보면 개발범위가 매우 광범위한 데 따른 것일 뿐이다.
"외세의 침략과 서구화가 본격화되지 않은 18세기 후반의 한양 모습에 초점을 맞췄는데 도성 내 대표 성격을 지닌 7개 공간을 선정한 것이 욕심이었어요. 통치와 왕실을 보여주는 경복궁, 관아인 육조거리와 서대문밖, 중심상가인 운종가, 전통 주거지인 북촌, 서민 주거지인 청계천변, 제사 등과 관련된 종묘사직 등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니 자료는 많은 반면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거든요."
이 대표는 7대 공간에 스스로 무덤을 파서 개발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특히 경복궁과 육조거리 등 각각의 공간에 담긴 내용을 풀어내려던 '공간 속 이야기'는 정작 복원작업에 치어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그래서 엔포디는 디지털한양의 보완작업으로 2004년부터 '디지털동궐' 콘텐츠를 추가로 개발했다. 경복궁이 북궐, 경희궁이 서궐로 불리듯이 디지털동궐은 한양 도성의 동쪽에 위치한 창덕궁과 창경궁을 중심으로 풀어낸 각종 의례를 담고 있다. 조회, 상참, 내조하 등을 인정전, 선정전, 대조전 등 공간에 따라 구성해 의례와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진흥원의 디지털복원사업을 수행했던 대부분의 개발책임자들은 무척 힘든 사업의 성격 때문에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들 하소연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그 힘겨운 사업을 2번에 걸쳐 진행했다. 아무리 건축학을 전공했고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하지만 남다른 각오가 있지 않으면 쉽지 않았을 터.
"우리나라처럼 과거와 단절이 심한 나라는 없을 겁니다. 일제강점기와 6·25 등을 거치면서 역사에 대한 파괴가 무분별하게 자행됐잖아요. 육조거리가 지금의 세종로인데, 호조의 경우 미대사관 자리라는 것뿐 자세한 정보는 모르잖아요. 역사도시를 개발 등 과거의 복원은 반드시 필요해요. 엔포디가 개발한 콘텐츠는 복원을 위한 '기본지도' 개념입니다."
이 대표는 특별히 '공간 지리 정보'에 주목했다. 육조거리든 경복궁이든 정확한 공간 정보가 바탕이 돼야 거기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복식, 의식, 생활사 등이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육조거리 복원의 경우, 전문학자들과 논의하며 수정한 횟수만 31번에 이른다"며 "역사공간은 머리 속에 그려져야 의미가 있기에 힘들어도 수십 차례 고증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도시 복원, 방송제작, 만화영화 배경 등 콘텐츠 활용분야 넓어
디지털한양과 디지털동궐의 활용은 역사도시 복원 사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방송의 사전제작단계에서 풍부한 공간정보와, 만화영화 및 만화의 배경 등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왕의 남자>에 제공했던 경복궁의 디지털복원 자료는 영화 제작비를 줄이는 효과와 궁궐의 정확한 고증이라는 2마리 토끼를 잡음으로써 활용가치가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예전 역사 시간에 '호조'라고 할 때 떠오르지 않던 공간이미지가 디지털한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디지털콘텐츠는 역사 공부 보조자료로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존에 개발된 결과물은 인프라 성격이지 완성된 상품이 아니므로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해요. 인프라 역시 임계점에 도달할 때 폭발적인 관심을 끌 수 있으니까요."
이 대표는 여러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만든 콘텐츠에 상당한 애착을 드러냈는데, 이것엔 역사도시 개발이든 교육자료든 저작권에 연연하지 말고 맘껏 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단적으로 담겨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바람은 저작권이 중요한 문화콘텐츠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외였다. 무슨 의도가 있기에 저작권을 강조하지 않는 것일까?
"작업을 함께 한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결국 저작권인 것은 맞아요. 특히 교수님들이 그렇죠. 하지만 결과물은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할 때 의미가 있는데, 실제 활용하는 것을 보면 저작권의 울타리에 갇혀 너무 폐쇄적이에요. 극단적인 이야기겠지만 여러 업체가 주목할만한 성과를 낸 후에 저작권 갖고 분쟁 좀 일으켜 봤으면 좋겠어요(웃음)."
"콘텐츠 활용성과 낸 후 저작권 분쟁 좀 일으켜보자"
이 대표는 "문화콘텐츠는 고증과 복원을 생명으로 한다"고 강조하며 "지금까지 어떤 콘텐츠를 말할 때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라고 고증내용에 대해 물었다면 이제부터는 '이것이 맞다'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문화를 다루는 내용일수록 확실한 고증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은 많은 인구와 그 영향력만큼이나 청계천, 역사도시, 행정수도 등 숱한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고 있다. 600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 서울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 일이다. '디지털한양'과 '디지털동궐'이 주목되는 이유인데, 이 대표의 말은 곰곰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양이든 동궐이든 정부가 지원한 사업을 정부가 활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단절된 역사를 바로 잇자는 자부심을 갖고 개발한 콘텐츠는 '우리 국토의 사이버 구축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희 같은 업체는 많습니다. 모쪼록 힘들게 개발한 결과물들이 여러 곳에서 활용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