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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이병완 비서실장,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4월 29일 열린 청와대 회동.
노무현 대통령과 이병완 비서실장,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4월 29일 열린 청와대 회동. ⓒ 청와대 홈페이지

노무현 대통령은 왜 사학법에 대한 여당의 '대승적 양보'를 갑자기 '권고'하고 나섰을까. 노 대통령은 "국정의 큰 틀에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30 부동산대책' 후속 법안에 대한 걱정이 컸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배경설명도 전해진다.

앞서가는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결국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탈당을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 대연정 구상의 부활이 아니냐는 해석으로까지 이어진다.

아직까지의 정황으로 보아서는 과다한 정치적 해석보다는, 비교적 단순한 해석이 현실에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양보 불가'라는 열린우리당의 회신에도 불구하고, 당·청간 갈등파문을 최소화시키려는 청와대의 모습을 보면, 국정운영에 대한 고민 이외의 다른 정치적 저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가 갑작스러운 것만은 분명하다. 당정분리라는 원칙에도 배치되고, 선거를 앞둔 열린우리당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종종 그러했듯이, 노 대통령의 이번 '권고'는 일반적 예측을 뛰어넘는 역발상의 성격이 강해보인다.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권고를 거부하고 '양보 불가'를 선언했다. 열린우리당의 메시지는 신속하고도 분명했다. 정동영 의장까지 앞에 나섰다. 전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다급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명분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는 상황을 막을 수는 없었다. 노 대통령의 '권고'에 힘입어 한나라당은 사학법 재개정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벌써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마련한 사학법 재개정안은 타협할 수 없는 최종안이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법안 통과는 있을 수 없다고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이제 열린우리당을 향해 "대통령의 권고까지도 거부하고 양보할 줄 모르는 정당"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노 대통령 한마디에 명분은 한나라당으로

또한 노 대통령의 권고를 계기로, 사학법 재개정 문제는 다시 정국의 최대 관심사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 역시 한나라당이 거두게 된 소득이다. 열린우리당의 '소승적' 입장에서 보자면, 노 대통령의 권고는 사학법 대치국면에서 적전분열이요, 결과적으로 이적행위가 되어버린 셈이다.

"당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청와대 측의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파장이 간단할 수는 없다. 사학법정국의 주도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 대통령은 자기세력으로부터 고립되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여당은 노 대통령의 권고를 즉각 거부했고, 강금실 예비후보도 "사학법을 훼손하거나 변질시켜선 안 된다"며 노 대통령의 권고내용을 반박했다. 노 대통령의 지지층에서도 '개혁법안의 유일한 성과에 대한 포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상황을 가지고 '레임덕'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성급하지만, 최소한 노 대통령의 '헛발질'이 되어버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승적 양보'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여당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물론 대통령의 위치와 여당의 위치는 다르다. 따라서 대통령의 위치에서 보는 것과 여당의 위치에서 보는 것이 언제나 같은 결론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사학법을 고수하는 문제와, 3·30 후속법안같은 국정현안의 비중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도 있다.

문제는 일을 풀어가는 방식이다. 역발상에 기초한 '깜짝 제안' 방식이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데 역효과를 낸다는 것은 지난번 대연정 구상때도 확인된 바 있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전날 밤까지 한나라당이 마련한 사학법 재개정안에 대해 불가입장을 고수해온 여당에게 갑자기 '대승적 양보'를 공개주문하고 나서니, 여당이 어찌하겠는가.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고 해서 갑자기 입장을 바꾸는 모습이 되었을 때, 그 여당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는 불을 보듯이 뻔한 노릇이다.

여당 입장 고려않은 '사학법 양보' 권고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이번 권고는, 국정의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 이전에, 여당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노 대통령의 권고를 수용하든 거부하든, 두 경우 모두 부담을 안게되어 있었다.

열린우리당은 당장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당이다. 대통령이 선거를 의식하지 않는 초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평가해야 할 일인지 모르지만, 적어도 열린우리당으로부터는 야속하다는 소리를 듣게되어 있다.

선거의 기본전략은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을 우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권고내용은 지지층의 해체를 촉발시킬 인화성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청와대와 여당 사이의 정서적 거리가 얼마나 먼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장면이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근래 들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이해찬 총리 사의수용 이래로, 자신의 '소신'보다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겸손'에 대한 다짐도 있었다. 노 대통령의 그러한 새로운 모습을 반기었는지, 그에 대한 지지율은 그동안 회복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이번의 '양보 권고' 는 이전의 노 대통령 모습이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여당이라는 동반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나홀로 판단'을 불쑥 꺼내놓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상처를 입은 것은 노 대통령 자신과 열린우리당이요, 힘을 얻은 것은 한나라당이다. 이것이 '대승적 양보 권고' 파문에 대한 '소승적' 대차대조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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