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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그녀는 뚝 위에 섬처럼 동그마니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그물은 뚝에서 걸음을 시작하여 바다로 길게 목을 빼고 있었다. 나는 그물하면 물 속으로 깊숙이 쳐두었다가 건져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그녀의 그물은 뻘에 세워놓은 나뭇가지에 의지하여 직립의 자세로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바닷물이 좀더 빠지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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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녀의 그물은 바다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매일매일 어김없이 바다가 그녀의 그물을 찾아온다. 그녀의 그물은 곧 그녀이기도 해서 그것은 곧 바다가 그녀를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다. 바다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 김동원
그녀가 바다로 간다. 그리고 그녀의 발자국이 그 뒤를 따라간다. 원래 발자국은 항상 우리를 쫓아다니면서도 돌아보면 그 흔적이 지워져 있지만 뻘에선 발자국이 선명하게 그녀의 뒤를 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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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전 바다가 자신을 그득 채워놓았을 그 자리에 지금은 그녀가 있다. 바다는 이제 바로 그녀의 눈앞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바다는 매일 그녀의 그물을 가득 채워놓고 그녀를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길에 드디어 그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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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물에서 물고기를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뻘에서 물고기를 줍는다. 망둥이, 바다가재 등등. 펄떡거리는 바다를 주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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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사랑한 바다는 매일 그녀를 찾아와 그녀의 그물에서 그녀를 만나고 돌아간다. 그리고 바다는 돌아가는 길에 항상 그녀를 위한 선물을 잊지 않는다. 바다의 선물은 살아서 펄떡펄떡 숨쉰다. 그건 바다의 마음이 그대로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녀도 바다를 사랑한다. 매일매일 잊지 않고 찾아주고, 그녀가 바닷가로 나올 때까지 그 기다림을 마다않고, 갈 때면 그저 아낌없이 주고 가는 그 바다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그물 속에서 그녀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거 알아요? 바다에도 계절이 있다는 걸. 뭍의 계절이야 꽃이 가져다주지만 바다의 계절은 물고기들이 가져다 준다우. 계절마다 그물에 올라오는 고기들이 다르거든. 뭍의 꽃들이야 기온이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정신을 잃고 계절도 모른 채 피기도 하지만 물고기에 실려 오는 바다의 계절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다우."

나는 처음에는 그녀가 물고기를 잡는다고 생각했었으나 그러나 그녀는 물고기가 아니라 바다에서 계절을 낚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의 손끝에선 봄이 낚이고 있었다. 오늘 그녀가 낚은 바다의 봄은 아주 풍요로웠다.

ⓒ 김동원
그녀는 생각보다 물이 금방 빠진다며 그녀가 낚은 봄을 바다에 헹구었다. 그녀가 헹군 봄을 내가 뚝으로 날랐다. 오호, 살다보니 이런 행운이 다 있다. 살면서 많은 것을 들어보았지만 봄을 어깨에 메고 날라본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 김동원
그녀는 지금 오늘 봄걷이 마지막 작업을 하는 중. 뭍의 가을걷이와 달리 그녀는 이렇게 매일매일 그녀의 그물에서 봄을 거두어들인다.

ⓒ 김동원
그녀는 내게 망둥이도 가을 망둥이와 봄 망둥이가 다르다고 했다. 위의 긴 것이 가을에 나온 망둥이고 아래 것이 봄에 나온 망둥이다. 나는 길이로 구분하나 했지만 그녀는 봄 망둥이는 몸에 점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봄 망둥이의 점은 망둥이의 몸을 빌려 바다에서 피는 봄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동원
그녀가 잡아 올린 한가득한 오늘의 봄이요! 그 봄은 그녀가 집에 도착한 뒤까지 살아서 펄떡펄떡 뛰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서 생새우를 얹은 새우덮밥을 얻어먹었다. 뱃속 깊이 봄이 가득 찼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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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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