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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공기도 맑게 해 준 답니다.^^
집안 공기도 맑게 해 준 답니다.^^ ⓒ 정명희
엄마는 어쩌다 한번 우리 집에 오면 매번 화초에 대한 감탄을 빼놓지 않았다.

“세상에, 야들은 우째 이리 이쁜공?”
“엄마, 엄마도 하나 줄까?”
“냅 둬라, 나는 못 키운다. 그냥 니 집에 올 때마다 이렇게 한번씩 구경이나 할란다.”
“그런데 엄마는 이중에서 어떤 것이 제일 이쁘노?”
“나는 이것하고 저것이 제일 이쁘다. 그리고 이 고구마 이파리 같은 것도 축 늘여 뜨려 놓으니 예쁘네.”

엄마가 예쁘다고 한 것은 영산홍과 이파리 넓은 인도고무나무, 그리고 스킨답서스였다.

“엄마, 외로울 때 이 꽃들을 보고 있으면 기운이 저절로 나을 수도 있으니 한번 키워봐.”
“그래도 싫다. 보기만 할란다.”

‘말은 그렇게 해도 막상 하나 사다주면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그리고 아무리 만사가 귀찮은 노년이라지만 그래도 새순이 돋는 것을 옆에서 보게 되면 당신도 모르게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계산하고 어버이날 선물로 특별히 화초를 사 간적이 있었다.

점잖은 이파리를 가진 인도고무나무와 까슬까슬해 보이는 외양이 생기 있어 보이는데다 손으로 한번 쓰다듬어서 냄새를 맡으면 상큼한 향이 묻어나는 로즈마리를 우선 골랐다. 그리고 율마와 영산홍 그리고 주황색 꽃이 아름다운 레마톤을 사 갔다.

“보기는 좋다만 아무래도 못 키우지 싶다. 도로 가져가라.”
“엄마, 들의 곡식도 키우는데 이걸 와 못 키운다는 말이고. 엄마는 잘 할 수 있다. 자식이라 생각하고 키워봐. 진짜 자식 같다. 그리고 딴 것 필요 없고 물만 주면 된다.”
“아이고 몰라. 자신 없다.”
“일단 한번 키워 보셔.”

그렇게 해서 엄마는 일흔의 끝자락에 난생 처음 화초라는 것을 키우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이따금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할 때면 화초의 안부도 묻곤 하였다.

“동네 사람들이 놀러 와서 다들 이쁘다 카더라.”
“엄마는 안 이쁘고?”
“나도 이쁘다.”
“그럼 됐네. 하여간 물만 줘.”

그러나 한동안 잘 키우나 싶더니 엄마는 내가 갈 때마다 화초의 개수를 하나씩 줄여놓았다. 화초도 키우다 보면 정이 들기에 시들해져 죽어버리면 안타깝고 말라버리는 원인이 무엇인지 답답해진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게 중에 이게 제일 효자다. 잘 크고 이파리도 넓은 것이 볼 만 하다.”

엄마가 얘기한 것은 인도고무나무였다. 인도고무나무는 실내에서는 물론 베란다에서도 잘 자랐다. 어떤 것은 베란다에 두면 괜찮은데 실내로 들여오기만 하면 며칠 안가서 시들시들해지기도 하는데 인도고무나무는 생긴 것처럼 묵직하게 변동이 없었다.

때문에 내게 있어서도 참 믿음직한 친구였는데 녀석은 엄마에게도 그러한 신뢰를 주고 있었다. 인도고무나무는 해마다 봄이 되면 작게는 두장에서 많게는 대 여섯 장의 새 이파리를 틔워낸다. 작년에는 내 것도 엄마네 것도 잎을 많이 틔워서 봄 내내 두 여인은 즐거웠다.

그러나 올해는 어쩐 일인지 나의 인도고무나무에는 아직 새 잎이 전혀 나질 않고 있다. 조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녀석은 천하태평인 듯하다. 설마 건너 뛰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엄마네 인도고무나무도 내 나무처럼 이 봄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새 잎을 죽죽 피워 올렸다면 나의 인도고무나무 보다 키가 더 자랐을 수도 있을 터인데…. 때가 때이니 만큼 이에 대한 궁금증은 전화가 아닌 며칠 후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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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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