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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본듀란트 존스(Nancy Bondurant Jones). 프리랜서 작가인 낸시는 30여 년 동안 공립학교 영어선생으로 일했다.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낸시는 이곳에서 발행되는 일간지인 < The Daily News-Record >에 지역 역사와 관련된 칼럼을 쓰고 있다. 벌써 11년째다.
낸시는 이쪽 쉐난도 밸리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진 역사학자이자 작가이다. 또한 그녀는 버지니아 주립대학의 소렌슨 연구소의 위원으로 봉사하고 있고 미국 '여성문인 협회'와 '일하는 여성 포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 유명한 낸시를 어떻게 만났느냐고? 시간이 날 때 마다 나는 JMU(제임스메디슨대학교) 음악대학의 게시판을 꼼꼼히 살핀다. 혹시 볼 만한 공연이 있을까 해서다. 그런데 지난 주에 내 눈길을 끄는 공연이 있었다. 바로 점심시간에 시내 한 교회에서 열리는 '런치타임 콘서트 시리즈'였다.
그 공연에서는 우리 귀에 익숙한 차이코프스키와 쇼팽, 슈베르트와 포레 등의 곡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연주가 끝난 뒤 우리에게 악수를 청하는 사람이 있었다.
"저는 낸시예요. 매월 마지막 주에 열리는 이 '런치콘서트'에 꼭 와요. 아름다운 공연이죠. 저는 작가예요."
낸시는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면서 'Writer'라고 씌어진 자신의 명함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나이가 많이 들어보이는데 작가라고? 그럼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 현역 작가란 말이야?'
낸시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할 일 없고 따분하고 심심한' 노인분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자신의 직업을 당당하게 '작가'라고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인사를 한 '작가 낸시'의 모습은 대단히 신선했다.
"잘 사귀어 봐."
옆에 있던 남편이 괜히 신이 나서 나를 부추겼다. 혹시 낸시를 알아두면 이곳에서도 내 이름을 걸고 글이라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생각치 않은 달러를 벌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야무진(?) 기대감에서 그러는 것이리라.
"무슨…. 영어도 못하는데."
"당신은 주로 무슨 글을 쓰세요?"
"논픽션이죠. 전기도 쓰고 향토 역사와 관련된 글을 쓰기도 해요. 아참, JMU에 계시다고 했죠. 2년 전에 JMU 역사를 기록한 책을 출간했어요. 제가 총장을 만났는데..."
낸시는 역대 총장의 이름을 거론하며 자신이 쓴 책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자기가 쓴 책이 교회 도서실에 비치되어 있으니 함께 가보자고 했다.
"이게 바로 2년 전에 썼던 책이에요. JMU 역사를 훑어볼 수 있지요. 2004년에 나왔는데 한국에서 인쇄가 되었어요. 여기 보이죠? Printed in Korea."
낸시가 쓴 책이 한국에서 인쇄되었다는 사실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연로한 할머니가 A4 크기에 288페이지나 되는 두툼한 책을 썼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저, 실례지만, 얼마나 젊으세요?"
나이를 묻는 질문 'How old are you?' 대신에 나이 든 분들에게는 센스있게(?) 'How young are you?'라고 하면 더 좋아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낸시에게 물었다.
"올해 일흔 다섯이에요."
"와우~. 그럼 저 두꺼운 책을 일흔 셋에 썼다고요? 대단하세요.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세요?"
도서실에 비치된 여러 권의 책 가운데 낸시가 뽑은 자신의 책은 모두 다섯 권이었다. 낸시는 자신의 서명과 함께 그 책을 교회에 기증한 것이었다. 낸시는 이제까지 십 여권의 책을 썼다고 한다. 학교 선생을 그만 둔 뒤에 쓴 책들이 대부분이다.
낸시를 보면서 많은 걸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나이가 들면 정년 퇴임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요즘 같은 때에는 정년이 채 되기도 전에 직장을 그만 두는 경우도 많다. 그러면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지고 무기력해진다.
하지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책을 펴내고 신문과 잡지 등에도 활발하게 기고를 하는 낸시를 보면서 '나이는 다만 숫자일 뿐'이라는 공허한 표현이 앞으로 내가 경험하게 될 현실 언어로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그래,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지. 열정과 패기만 있으면 그깟 나이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나는 아직 시퍼런(?) 청춘이다!'
앞으로 내 노년의 삶이 어떠해야 할 지를 깨닫게 해 준 낸시. 그녀를 내 삶의 '역할 모델'로 생각하며 열정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