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레임덕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임기 말의 노무현 정부가 직면한 현실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보수진영의 정치적 공세뿐만 아니라 FTA, 새만금 사업, 평택 사태 등으로 인한 진보진영 내부의 이반 현상마저 노정되고 있어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도대체 노무현 정부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무얼까? 뜻밖에도 그 대답을 최근 발간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란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 책에서 그동안 진보진영이 간과하고 있던 '프레임'에 주목하는데, 여기서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을 의미한다. 동시대의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바라보는 세상이 하늘과 땅만큼 다를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차이는 바로 개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즉 프레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유권자 반란' 프레임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의 표면적 사유는 캘리포니아주 경기 침체와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에 대한 불신으로 요약된다. 특히 1998년 캘리포니아 주 당국이 전력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발전소를 민영화한 이후 천연가스와 전력 가격이 상승해 에너지 위기가 초래되자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하나둘씩 데이비스 주지사에게서 등을 돌렸고, 결국 주지사 소환으로까지 이어졌다. 이후 '터미네이터'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주지사에 취임한다. 그러나 슈워제네거 주지사 역시 기대에 부응하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조지 레이코프에 의하면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의 이면에는 몇 가지 진실이 은폐되어 있다고 한다. 즉, 당시의 경기 불황은 캘리포니아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 전체의 문제였고, 이미 수년 전부터 공화당이 캘리포니아 경제에 타격을 가해 데이비스 주지사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려고 노력해 왔으며, 데이비스 주지사에게 치명타를 안긴 캘리포니아 에너지 위기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고, 에너지 위기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다름아닌 부시를 지원하는 거대 기업들이었다는 등의 진실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화당의 전술적 포석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는 얘기다.
앞서 말했듯이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을 의미한다. 뉴스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들 속엔 언제나 프레임이 존재하며, 각각의 프레임은 서로 다른 시각을 취한다. 동일한 사실에 대해 <조선>, <동아>, <중앙일보>와 <오마이뉴스>, <한겨레>의 시각이 제각기 다른 이유는 서로 다른 프레임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강력하게 확립된 프레임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면 사실은 무시되고 프레임은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는 프레임 하나를 예시해 보겠다. 현재 보수진영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냉전시대와 대동소이하다. 그로 인해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아무런 결실이 없다'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란 단정적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남북관계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으며, 북한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승리는 예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진영 사람들이 햇볕정책의 결실이 전혀 없다거나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것은 그들의 의식 속에 이미 고정된 프레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프레임은 한국전쟁을 통해 형성되었고, 냉전에 의해 공고해졌으며, 탈냉전 시대에도 보수언론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강력하게 확립된 프레임에 도전하는 진실은 외면받기 십상이다. 반면 그 프레임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거짓 정보들은 환영받는다. 종국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다시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로 돌아가면, 공화당 후보인 슈워제네거는 처음부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잇점은 선거 전략에 그대로 반영되어 강력한 프레임으로 형상화되는데, 조지 레이코프는 이를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으로 명명한다.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이란 간단히 말해서 민주당 출신인 데이비스 주지사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그를 몰아내고 공화당 후보인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슈워제네거의 선거 전략은 그대로 적중했고,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서서히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에 잠식되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권자들은 데이비스 주지사의 무능함에 대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무능할 수도 있다는 가정 역시 배제하기 시작한다.
현재 한국의 보수언론은 이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을 노무현 정부에 그대로 대입하고 있으며, 탄핵 사태 역시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을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탄핵이 실패한 이유는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지금은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보수진영은 내심 정권 탈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앞서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진실이 은폐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작동하고 있는 '유권자의 반란' 프레임의 이면에도 진실이 은폐되어 있다. 이를테면, 대기업들이 공공연히 자본의 파업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고 서민 경제가 위축될 수도 있다는 사실, 미국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2007년 한국의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선점하고 있던 남북한 화해 교류 카드를 무력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일 수 있다는 사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라'는 논리로 과거사ㆍ친일파 청산을 모면하려 하는 보수진영이야말로 과거에 집착한다는 사실(보수진영의 정체성을 이루는 논리들은 대부분 냉전시대, 개발독재 시대로부터 계승한 것), 노무현 정부가 국론 분열을 획책한다고 비난하는 한나라당이야말로 그동안 지역갈등ㆍ국론 분열을 통해 이득을 취해왔다는 사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역시 노무현 정부처럼 신자유주의를 추구한다는 사실(차별성 없음), 기타 등등.
노무현 정부 위기의 본질
만약 조지 레이코프에게 현재 노무현 정부의 위기 상황을 진단케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어쩌면 그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목격한 프레임들이 한국 사회에서 재가동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굳이 조지 레이코프의 전문가적 식견이 아니더라도 지난 4년 동안 한국 사회의 추이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종의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을 개연성을 감지했을 것이다.
물론 프레임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고, 수량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므로 보수와 진보, <오마이뉴스>와 <조선일보>가 모두 자유롭게 프레임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프레임을 만드는 목적이나 역량, 경험 등은 천차만별이고, 적자생존의 원칙에 입각해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프레임만이 살아남는다고 볼 때 아직까지는 진보보다 보수가, <오마이뉴스>보다는 조선일보가 더 강력한 프레임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정은 미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의 위기는 보수진영의 프레임이 진보진영의 그것을 압도함으로써 생긴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난 4년 동안 보수언론이 노무현 정부를 압박할 목적으로 양산한 프레임들, 즉 '노무현 정부는 친북좌파 정권이다' '햇볕정책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생명만 연장할 뿐 실효성이 전혀 없다' '노무현 정부는 무능하고, 경제 상황은 최악이다' '노무현 정부가 양극화의 주범이다' 등등의 프레임은 진보진영의 프레임을 압도했다.
앞서 말했듯이, 만일 강력하게 확립된 프레임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면, 사실은 무시되고 프레임은 유지된다. 따라서 특정 프레임이 대중의 인식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후에 그것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왜냐면 대중이 오직 그 프레임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를 토대로 보수언론은 각종 프로파간다와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유포해 왔다. 만약 보수언론이 '노무현 정부는 무능하고 경제도 엉망이다'란 프레임을 대중의 의식 속에 투사하는데 성공했다면, 노무현 정부가 잘 하면 잘하는 대로 못 하면 못하는 대로 그 프레임은 보수언론의 입맛에 맞게 작동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 위기의 본질을 다른 데서 찾으려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위기의 주범은 바로 노무현 정부 자신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조지 레이코프는 두 가지 측면에서 노무현 정부의 오류를 지적할 것 같다. 첫째, 보수진영의 프레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방어적 태도로 일관한 것. 둘째, 성급하게 오른쪽으로 좌표를 이동함으로써 진보진영의 대표성을 망각한 것.
어쩌면 현재 시국은 한국과 미국의 진보진영이 함께 풀어야 할 딜레마인지도 모르겠다. 한국과 미국의 보수진영이 밀도 높은 공조를 이루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과 미국의 진보진영 역시 상호 협력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보수진영의 프레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론만이라도 공동 연구, 개발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프레임에 갇혀 버린 노무현 정부의 운명이 진보진영 전체의 운명으로 확장되지 않도록 그 어느 때보다 시국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