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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노조 간부들이 촛불을 들고 민중가요를 부르고 있다.
법원노조 간부들이 촛불을 들고 민중가요를 부르고 있다. ⓒ 신종철
판사가 법원 직원을 감금했다는 논란으로 촉발된 법원일반직공무원들과 사법부 수뇌부와의 갈등이 사법사상 최초로 법원에서 사법부를 규탄하는 촛불시위로 확산되는 등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는 법원행정처가 법원내부게시판을 장악하는 부적절한 처신에서 촉발됐다. 이에 법원공무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대법원에 공개사과와 함께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면서 사법사상 최초로 대법원청사에서 대법원장 규탄대회를 개최한데 이어 서울법원종합청사 중앙로비에서 삭발식을 거행했다. 급기야 촛불시위로 이어지며 강력한 반발에 사법부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현재 전국 법원공무원들은 왼쪽 가슴에 "쟁취, 사법민주화… 표현의 자유"라는 리본을 부착하고 나섰다.

법원공무원들은 대법원이 공개사과하지 않을 경우 향후에는 전국의 법원공무원들이 대법원으로 집결해 대법원을 둘러싸는 촛불시위를 개최한다는 방침이어서 대법원에 상당한 압박감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0여명 참석... 주최측 "우리도 놀랐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김도영 본부장과 법원노조 곽승주 위원장(사진 오른쪽).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김도영 본부장과 법원노조 곽승주 위원장(사진 오른쪽). ⓒ 신종철
서울중앙지법 등 법원공무원들은 9일 오후 6시부터 업무를 끝내고 '법원공무원의 언론자유 수호와 권익증진을 위한 촛불문화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하나둘씩 서울법원종합청사 동문입구 야외마당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법원 내에서 촛불시위가 열린 것은 이번이 사법사상 처음이다.

이 자리에는 약 200여명의 법원직원들이 모였다. 최송립 법원노조 서울중앙지부장은 "오늘 행사에 50명 정도 많아야 100명 정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200명가량이 모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곽승주 법원노조위원장도 "오늘 이렇게 많은 동료들이 참석해 줘 큰 힘이 된다"며 "그동안 사법부 수뇌부들은 노조간부 몇 명이 떠들어대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으나 오늘 이 모습을 보면 법원직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됐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이날 촛불시위는 오후 6시 15분부터 시작됐다.

양윤석 서울지역본부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한마디 하겠다"며 "대법원장은 법원직원들에게 친절하라"고 외쳤다. 이에 참석자들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분위기가 한층 고조됐다.

양 본부장은 이어 "곽승주 위원장을 중심으로 대법원의 오만과 독선에 맞서 끝까지 싸워 이번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단결하자"고 호소해 참석자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상원 법원노조 대변인은 "우리에겐 아무 힘이 없어 이렇게 일반직들이 단결할 수밖에 없다"면서 "법원노조 똘똘 뭉쳐 사법개혁 쟁취하자, 법원을 변화시켜 세상을 바꿔보자"는 구호를 외쳤다.

최송립 서울중앙지부장은 "하나로부터 열이 뭉치면 더욱 밝게 빛나는 촛불처럼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참석하니 전국 법원을 밝힐 수 있는 강한 자신감이 생긴다"며 "오늘을 기점으로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지부장은 "오늘의 촛불은 사법부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곽승주 위원장도 "법원에서 재판을 하는 법관이 법원조직원을 지시의 대상으로 보고, 7시간이나 감금한 것은 통탄할 일"이라며 "국민을 섬기겠다는 대법원장이 법원직원조차 챙기지 못하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이외에도 김도영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은 "이 좋은 날에 동지들이 좋은 일도 아니고 썩어빠진 사법부를 규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법원본부는 처음 판사의 감금 사실을 알고도 가능하면 좋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판사와 법원장이 사과를 하지 않아 투쟁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대열 서울가정지부장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격려해 주는 조합원들을 보며 희망을 가질 수 있어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라고 분위기를 띄웠다.

또 이영렬 경기·강원지역본부장은 "오늘 대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가 대법원에서 간담회를 가졌다"며 "사실은 간담회가 아니라 서울법대 동창회를 한 것이고, 이것이 우리 법원의 현실"이라고 사법부를 비난했다.

"대법원장은 법원직원들에게 친절하라"

백연옥 여성위원장이 삭발하자 동료 여직원들이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다.
백연옥 여성위원장이 삭발하자 동료 여직원들이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다. ⓒ 신종철
이날 저녁 7시 무렵부터는 촛불시위에 참석한 법원공무원들이 술렁이며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유일한 법원노조 여성간부인 백연옥 여성위원장이 삭발 투쟁의 전면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 이에 여성 직원들은 법원노조 집행부에 "백 위원장은 제외해달라"는 만류의 부탁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백연옥 위원장은 이런 분위기가 흐르자 마이크 잡아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백 위원장은 "법원생활 22년을 하는 동안 지금까지 이곳이 자유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코트넷(법원내부게시판)에 글 하나를 올리지 못하는 참담한 상황"이라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백 위원장은 "어제 저녁에는 삭발에 대한 마음이 흔들릴까봐 노래 '바위처럼'을 1시간이나 따라 부르며 마음을 굳게 먹었고, 오늘 오후 남편이 삭발투쟁에 힘을 실어주는 이메일을 보내왔다"며 "삭발할 때 여러분들이 노래 '바위처럼'을 계속 불러 달라, 여러분 힘 실어 주실 거죠"라고 요구했다. 이같이 백 위원장이 결연한 의지를 보이자 여성 직원들의 눈시울을 붉혔으며, 참석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격려의 박수로 화답했다.

삭발이 시작되자 백 위원장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이를 지켜보던 여성 직원들은 어느새 하나둘씩 삭발현장 가까이로 나와 눈물을 쏟아냈고, 참석자들은 백 위원장의 부탁대로 '바위처럼'을 불렀다.

삭발이 끝나고 동료들이 백 위원장을 껴안자 백 위원장도 입술을 굳게 깨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삭발한 노조간부 홍일점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다"

백 위원장은 "노래 '바위처럼'의 가사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라는 가사그대로 바위처럼 흔들림 없이 살고 싶고, 삭발 의지가 흔들리지 않게 어젯밤부터 이 노래를 계속 들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삭발을 지켜본 여성동료들은 "법원행정처가 사태를 왜 이 지경으로 내모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법원행정처는 제발 법원직원들의 입과 귀를 막지 말고, 법원직원들의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삭발에 동참한 양윤석 서울지역본부장은 "법원행정처에는 70∼80명의 판사들이 있는데 모두가 1등만 했고, 특히 사법시험 동기 중에서도 1∼2등만이 법원행정처에 갈 수 있기에 자신들만이 똑똑한 줄 알다"며 "보통사람들의 인권은 생각하지 않는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양 서울지역본부장은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이를 깨지 않는 한 법원가족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번 투쟁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기 위해 삭발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김성환 대전지부장은 "법원행정처에서 내놓은 사과문이 만족스럽지 못해 삭발이라는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고, 김대열 서울가정지부장은 "삭발은 투쟁의 시작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해 향후 전개될 법원노조의 강도 높은 투쟁을 시사했다.

이날 삭발투쟁에는 최송립 서울지부장도 참여했다. 이날에 앞서 지난 1일 곽승주 위원장과 이성철 사무총장이 삭발을 단행했다.

이날 촛불시위는 저녁 8시30분 정도에 끝났으며, 앞서 대법원청사에서 대법원장 규탄대회와 서울법원종합청사 로비에서 삭발식 거행 때와는 달리 법원 경비대가 시위를 막지 않아 충돌은 없었다.

삭발식을 거행하는 동안 촛불시위에 참석한 법원공무원들이 민중가요를 부르며 삭발하는 동료를 격려하고 있다.
삭발식을 거행하는 동안 촛불시위에 참석한 법원공무원들이 민중가요를 부르며 삭발하는 동료를 격려하고 있다. ⓒ 신종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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