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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자마자 '옳다구나'하면서 자식들이 어머니의 집을 처분하고 냠냠 먹어버렸다. 어머니의 냉장고, 응접세트 따위 살림살이는 남들에게 주고, 살 냄새 물씬 옷가지, 손때 묻은 그릇들은 마치 쓰레기처럼 버리고 태우고...
어머니는 마치 컴퓨터를 하드 포맷하듯이 우리의 시간과 공간에서 삭제 되셨다.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자식들이라지.'
세상을 살아오신 자취는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고 마는가.
한동안 잊고 있던 어머니의 유물 상자가 창고에서 나왔다. 낡은 종이 상자이다. '나 여기 있다, 용용'한다.
상자 뚜껑을 여니 곰팡이가 슬었고 냄새가 퀴퀴하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아끼셨던 것들이 나온다. 당신이 사랑하던 자식과 그 자식의 자식들, 손자사진들.
젊은 날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외할머니 사진이 들어 있는 작은 액자를 보면서 나는 슬프다.
세상 나들이를 다니셨을 때 들고 다녔을 낡은 손가방이며 때때로 지하철을 타고 다니셨을 때나 유효하였을 경로증은 나를 슬프게 한다. 손가방의 작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 꼬깃꼬깃 접혀 있는 천원 짜리와 동전 몇 닢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낡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돋보기를 꺼낸다. 붉은 색과 밤색이 고운 안경을 사기 위하여 어머니는 얼마나 망설이시며 고르셨을까. 외출할 때 쓰시며 집에서 책을 보실 때 늘 함께 하던 것이 아닌가.
안경 테를 만진다. 그 테를 만지셨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 나도 노인이 되어 어머니의 눈에 맞는 돋보기가 내 눈에도 거의 맞는다.
어머니가 늙어가셨듯이 자식도 늙어간다.
"어머니."
작은 목소리로 부른다. 목이 멘다. 눈물이 난다.
어머니는 늘 그리움 속에 계시고, 슬픔 속에 다시 오신다. 동네 안경점에 가서 안경알을 내 눈에 맞는 돋보기 알로 바꾸었다. 어머니가 늘 쓰셨듯이 나도 책을 볼 때 늘 쓰리라.
돋보기안경을 낀다. 책을 본다. 어머니께서 마치 내 곁에 계신 듯하다. 눈가의 안경테에서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진다.
"애비야, 네가 나를 안아주면 네게서 아기 냄새가 난단다."
하시던 목소리와 그 손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