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강의하는 학원에서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시는 아주머니 수강생 정은경(가명·49세)씨. 주로 저녁 강의를 들으시는 그분은 항상 맨 앞에 앉아서 항상 진지하게 열심히 들어서 '저분은 합격하시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분이 학원사무실로 찾아 오셔서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말지를 상담해 오셨습니다. 다소 의외였습니다. 평소에 아주 열심히 공부하셨는데, 그리고 5개월이 넘게 공부를 하셨는데, 왜 도중에 그만두려고 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분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그 분은 올해 초부터 아이들을 지도하고 계셨습니다. 가정형편상 유료 과외를 받기 어려운 중학생들을 모아 무료로 영어를 지도하고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학생 1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학생수가 10명이 되었답니다. 게다가 학년이 서로 달라 따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중간에 공부를 그만두려고 하는 이유였습니다.
그 날은 제가 강의가 있는 날이어서 많은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공부는 계속하십시오'라고만 했고, 그 분도 일단 학원은 계속 다니겠노라고 했습니다. 그 날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도 계시는구나'싶었습니다. 그 분을 개인적으로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 후, 제가 그 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분은 저의 방문 요청을 쾌히 승낙 하였습니다. 그렇게 전화통화를 통해 그 분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나 같은 불우한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야지"
정은경씨의 집은 제주시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내 중심가에 있었습니다. 2층 단독주택이었는데, 2층 전체를 학생들 공부방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안내를 받아 2층으로 올라가 보니 30평쯤 된 공간이었습니다. 임대를 했다면 임대료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2층 현관을 열고 들어서니 바로 학생들 학습장이 있었습니다. 거실 같은 공간에 학생들이 여러 명 앉을 수 있는 긴 탁자와 칠판이 있고, 탁자 위에는 그분이 가르치는 영어 책이랑, 학생들이 간식으로 먹는 과일이 놓여 있었습니다.
학습장 옆으로 방이 2개가 있었는데, 한 쪽 방에는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책상이 놓여 있었고, 다른 방에는 학생들이 피곤할 때 잠깐 쉬거나 잠을 잘 수 있도록 침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시내 중심가라서 임대를 주면 수입이 꽤 되겠는데요."
공인중개사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경박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아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어요. 교육도 많이 받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고,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흔이 넘어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지금은 정규대학에서 영문학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에 '내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 같은 불우한 아이들을 돌보며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어린 시절의 그 다짐과 소망을 현실로 이루어내고 있었습니다.
"행복하십니까?"
제가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분은 웃음 띈 표정으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예,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꿈꾸어왔던 삶입니다. 저는 제가 원하던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잔잔한 미소로 저를 바라보시는 그분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두려워 인터뷰를 거절합니다"
"남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들 셋 모두 대학생이라는 말을 듣고 혹시 경제적 이유 등으로 남편의 반대가 있지 않았을까 하여 물었습니다. 그러자 정은경씨는 남편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적극 찬성합니다. 좋은 일을 하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 제가 오늘날 이렇게 행복하게 살게 된 건 전적으로 남편을 잘 만난 덕분입니다. 제 남편은 교정직 공무원인데 27년간 결근 한 번하지 않았을 만큼 성실합니다. 저를 아주 많이 사랑해 주고요."
그분의 말씀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저는 음지에서 작은 등불이 되어 살고 싶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강사님이니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단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같이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조용히 착한 일을 하고 싶어서요?"
제가 물었습니다.
"예, 그런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아이들 때문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 예민하고 상처받기 쉽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상담하게 되면 상처받게 됩니다. 저는 그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제 친자식과 똑같습니다. 학생들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내 자식이 하나씩 늘어가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덧 시간이 오후 5시가 다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5시부터 수업이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서둘러 자리를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그분의 집을 나서면서 공기가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