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귀신>을 마감중이다. 이제 정말 막바지다. 재학시절 재미삼아 그린 작은 그림 하나가 '귀신'처럼 찰싹 그에 등에 들러붙더니 이렇게 단행본으로까지 나오게 될 줄이야.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얘기들만 무성해 부끄럽기도 해요. 본래 학교 졸업 작품으로 생각했던 40여 페이지의 에피소드가 160페이지 규모로 늘어나게 된 작품이죠."
<귀신>은 가까운 미래, 자연재해 외에는 별일(?) 없는 지구에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든 군대가 시청률을 빌미로 미디어와 결탁해 벌이는 '생쇼'(?)를 다루고 있다. 한마디로 'TV 보지말자'는 얘기인 이 작품은 6월말에서 7월초쯤 드디어 세상 빛을 보게 된다.
"초등학교 때 반짝 불었던 이상구 박사 열풍 생각나시죠? 미디어에 의해 사람들이 얼마나 휘둘리고 있습니까. 제목에도 많은 상징을 담았어요. 무서워하면서도 보고 싶고, 보이긴 하되 실체는 없는 그런 것, 어찌 보면 노리개 같은 것. 바로 '귀신' 같은 것."
특이하게도 이 단행본에는 작품의 설정자료, 작가의 경험, 출전, 모태가 된 일러스트레이션 등이 묶여 부록으로 담긴다. 그리고 마치 영화에서처럼 삭제된 컷 등이 실려 작가가 얼마나 연출에 공을 들였는지 그 흔적들도 담길 거라고.
그러나 역시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것이 석정현만의 첫 단행본이라는 점이다. 분명 개인적인 의의에만 그치진 않을 터. 그를 아는 이들이라면 소장 욕구를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그를 눈여겨본 프랑스 카스텔만사가 프랑스에서의 동시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것
석정현 혹은 석가로 통하는 그의 본명은 석정우.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형님의 인생이 가여워 그의 이름을 자신의 필명으로 삼았단다.
어려서부터 그림 하나는 정말 잘 그렸던 그가 추계예대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학과 재학시절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6년. 다섯 살 때부터 만화책을 보며 한글을 뗀 이 베테랑 그림쟁이의 데뷔는 막상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꽤 오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그가 작가로서 등단한 것은 2002년 '야후 매니아'에 단편 <노르웨이의 숲>을 발표하면서다. 비틀즈의 노랫말을 따라 구성된 이 짧은 단편은 사실적인 그림체와 뛰어난 감각으로 흥얼거리듯 쉽게 젖어드는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화려하진 않지만 눈여겨볼 만한 데뷔에 이어 시지랜드나 럽툰, 그 외 자신이 운영하는 방배동 사람들(방방곡곡 그림을 배우는 동호회 사람들) 등과 다양한 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석정현은 자신의 가치를 알려나가기 시작했다.
사실적이고 감각적인, 어딘지 서글프지만 따뜻한 그의 단편들이 사람들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무엇보다 작품 속 탁월한 그림 솜씨는 그의 주무기로 인정받았다.
"선후배들 만나 얘기하면 느끼는 거지만 저 같은 놈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 자체가 일단 열혈만화독자거든요. 한 번쯤 나왔으면 하는 얘기들을 기다렸는데 그게 안 나오니 제가 그리는 거죠."
어린 시절, 처음 본 글과 그림이 뒤엉킨 묘한 재미에 얼마나 정신없이 빠져들었던가. 그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숭고한 일'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은 저는 감히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 생각해요.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이 형태를 갖추고 그림으로 표현된다는 것, 놀랍지 않나요?"
'드로잉 10만 장 프로젝트' 이상무
그림 얘기가 나왔다. 그도 '웬만큼' 잘 그리는 축에 드니 뭔가 철칙이 있을 법도 하다. 페인터 시리즈로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그가 아닌가. 그러나 그다지 '철저한' 면을 갖추지 못했단다. 뭔가 영감이 떠올랐을 때 메모 하나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편이라고. 그래도 단 하나 포기 못하는 원칙이 있다.
"붙이면 떼어가는 그림 정도는 그려야 하지 않겠어요?" 언젠가 조그만 모니터를 떠나 확대돼 붙여진 자기 그림을 대할 때 느꼈던 단 한 번의 얼굴 화끈거림. 그때 완벽주의자 아닌 완벽주의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적어도 행사 포스터로 붙여진 그림이 붙일 때마다 행인들에 의해 도둑질당하는 사태(?) 정도는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축제 때 제가 그린 포스터가 거푸 떼어진 적이 있어요. 그때의 설렘과 기쁨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그런데 우스운 말 같지만 저는 제 그림을 좋아해요. 제가 봐도 짠하게 느낌이 올 때가 있거든요. 자화자찬은 아닌데 정말 제가 봐도 좋을 때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제 그림, 그게 제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다른 사람들도 봐주는 거라 생각해요."
최선을 다해 다듬는다는 것,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에 대해 이토록 절실히 느낀 적이 있을까. 알면 알수록 고수들로 득시글거리는 이 바닥 때문에 "하루에 열다섯 번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밉지 않은 고백. 그의 블로그에 모토처럼 내걸린 '드로잉 10만 장 프로젝트'에는 이런 욕심 아닌 욕심이 담겨 있다.
진짜 만화가로 다시 태어날 겁니다
믿지 못 할 이야기지만 한때는 만화를 두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다인 것으로 착각했던 세월이 있었다. 20여 년 동안 '글'에 대한 고민은 건너뛰고 오로지 그림에만 매달려왔던 것이다.
"스토리 작가 전진석과 자취하면서 부족한 제 고민을 한껏 깨닫게 됐죠. 그림만 잘 그리면 글도 대충 나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림과 글이 동등한 게 만환데 왜 그렇게 그림에만 치중하고 있었을까요. 만화가가 아닌 그림쟁이였던 거죠."
지독한 반성의 시간이 지나고 본격적인 이야기 공부를 시작했다. 해부학, 원근법, 색채를 공부했던 것처럼 시나리오, 연출기법 등 이야기를 더 열심히 팠다.
그리고 올해 그는 '만화가 석정현'을 목표로 삼았다. 한때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혹은 메가쑈킹만화가가 붙여준 '마나레이터'라 불리기도 했지만, 이젠 그도 사양한다. 2006년은 석정현이 극만화가로 다시 태어나는 해다. <귀신>은 그 분명한 그'시작'을 알릴 것이다.
"한 이삼년 전, 굉장히 속 쓰린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만화가라고 다 만화가는 아니라는, 만화가가 밟아야 하는 정통적인 수순을 다 밟지 않았느냐는 등의 무시를 받았던 때가 있었죠. 너무 속상했습니다. 반드시 변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귀신>이 마무리되는 대로 6월초에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괴물>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이 그를 기다린다. 지속적인 단행본 작업으로 극만화가라는 오랜 숙원을 이제 하나씩 갚아나갈 참이다.
석정현에게 "소름끼치게 즐거운 일"이란 다 그려진 만화 말칸을 채워 넣는 것이다. 순간 캐릭터들이 고른 숨을 쉬며 살아나는 듯해 몇 시간씩 완성된 만화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더욱이 인쇄된 세상에 뿌려지거나 온라인을 헤엄치는 작품들을 대할 때의 말 못할 기쁨이란.
"누군가 보아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만화가가 된 의미를 충분히 느끼고, 행복합니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아주 나중에는 정말로 <아키라>나 <공각기동대> 같은 전 세계가 기념할 만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어려운 꿈은 아니겠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kocca.or.kr:8908/ctnews_kor/servlet/cms.article.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