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장대 위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경치.
문장대 위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경치. ⓒ 김연옥
속세를 떠난다는 뜻을 지닌 속리산. 속리산에 들어가서 시끌시끌한 세상을 잊고 그 아름다움에 그저 취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지난 14일 속리산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를 따라나섰다.

속리(俗離)라는 이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신라의 진표율사를 만난 소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한다. 그 소달구지를 탄 사람이 이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어 속세를 버리고 입산 수도를 하게 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 김연옥
우리 일행은 아침 7시 40분에 마산을 출발하여 속리산 국립공원 화북분소 매표소를 거쳐 10시 40분쯤 속리산 산행을 시작하였다.

속리산(1058m)은 충북 보은군, 괴산군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장엄하면서도 몹시 아름다운 산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금강산(小金剛山), 미지산(彌智山), 구봉산(九峰山), 광명산(光明山), 형제산(兄弟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져 왔다.

나는 초록빛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나는 초록빛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 김연옥
숲길은 온통 초록이었다. 나는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빛 세계 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몸과 마음이 떨렸다. 나뭇잎들마다 내뿜는 초록빛 향기가 내 코를 연방 간질여댔다.

황홀이란 말이 이런 순간에 어울릴 것만 같았다. 아마 초록은 원초적 색깔이 아닐까 싶다. 문득 선머슴처럼 덜렁거리다 대학생이 되어 옷을 하나씩 사 입다 보니 이상하게도 초록색 일색이었던 지난 일도 스쳐 지나간다.

문장대.
문장대. ⓒ 김연옥
싱그러운 초록빛 나무들, 계곡을 타고 맑게 흐르는 물소리와 간간이 들려오는 아름다운 새 소리가 머물러 있는 오월. 그 숲길을 따라 걸어가는 내가 너무 행복했다. 걷다 좀 지치면 바닥에 깔려 있는 돌멩이까지도 환하게 보이는 시원한 물에 두 손을 담가 얼굴 한번 씻으면 된다.

12시 20분쯤 문장대(1054m·상주시 화북면 장암리)에 이르렀다. 그곳은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바위가 흰 구름 속에 묻혀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라 불렀다. 세조가 그곳에 오르니 책이 한 권 놓여 있어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文藏臺)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문장대에서 바라본 경치. 속리산에서는 아직도 연분홍 진달래를 볼 수가 있었다.
문장대에서 바라본 경치. 속리산에서는 아직도 연분홍 진달래를 볼 수가 있었다. ⓒ 김연옥
5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로 되어 있는 문장대 위에 서 있으면 얼마나 경관이 아름다운지 가슴이 벅차 오른다.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눈길 가는 데마다 무릉도원을 보는 듯했다. 나를 지치게 하는 삶의 걱정거리도 멀리 사라져 갔다. 숨죽이게 하는 아름다움만이 거기에 있었다.

속리산에는 기기묘묘한 바위가 많았다.
속리산에는 기기묘묘한 바위가 많았다. ⓒ 김연옥
우리는 속리산 주봉인 천황봉(화북면 상오리)을 향하여 걸어가다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맛있는 점심을 했다. 향긋한 국화차도 마시고 신영복 교수의 서체가 상표에 그대로 사용되었다는 소주도 몇 잔 마셨다. 우리는 낮 1시 30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또 걷기 시작했다.

ⓒ 김연옥
속리산은 화강암의 기봉(奇峰)이 많아 군데군데 기암괴석을 보게 된다. 특히 겹겹이 쌓아 놓은 듯한 거대한 바위들은 경이롭고 신비하기만 하다. 조선시대의 명장 임경업 장군이 7년 동안 수도하며 세웠다는 입석대도 보인다. 또 석문이 있어 거대한 바위 사이로 지나가는 즐거움도 있다.

석문으로 지나가는 즐거움도 있다.
석문으로 지나가는 즐거움도 있다. ⓒ 김연옥
속리산에서 아직도 부끄러운 듯 얼굴 붉힌 채 피어 있는 연분홍 진달래를 볼 수 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좁다란 산죽 길도 꽤 운치가 있었다. 드디어 2시 20분쯤 천황봉에 올랐다. 거기에 서서 신영복 교수의 시 '처음처럼'을 음미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속리산 주봉인 천황봉(1058m) 정상.
속리산 주봉인 천황봉(1058m) 정상. ⓒ 김연옥
사람은 왜 처음의 마음 상태를 지켜 나갈 수 없는 걸까. 누구의 탓이라고 말할 것도 없다. 너나 나나 매한가지이다. 처음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다면 아마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법주사(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쪽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마산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있어 4시 반까지 주차장으로 꼭 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루할 정도로 걷고 또 걸어 내려갔다.

부처님의 법이 머문다는 뜻을 지닌 법주사는 553년(신라 진흥왕14년) 의신조사가 처음 창건하였다. 시간이 없어 높이가 33m에 이른다는 금동미륵대불만 보고 아쉬움 속에 법주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 김연옥
마산으로 돌아오는 차창 밖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무릉도원에 갔다 온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건 아마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얼마 전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읽으며 부끄러웠던 내 안일한 삶의 태도에서 이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청주IC→청주→25번국도 보은방면→보은(청주에서 1시간)→ 속리산(30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