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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서 보는 화려한 철쭉의 모습이 바로 지리산 바래봉 철쭉이다.
달력에서 보는 화려한 철쭉의 모습이 바로 지리산 바래봉 철쭉이다. ⓒ 서종규
오월 산행에서 가장 큰 기쁨은 군락지에 가득 핀 철쭉꽃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전국 철쭉꽃의 명산엔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철쭉도 마찬가지로 남도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위도를 따라 북상하는데, 보통 남도의 제암산과 일림산이 그 시발점이 되곤 한다.

제암산과 일림산의 철쭉이 만개하면 위도에 따라 날짜별로 북상하여, 지리산 철쭉으로 이어진다. 지리산에서 철쭉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 바로 바래봉이다. 바래봉 철쭉이 피어나고 나면 이어서 세석평전의 철쭉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철쭉이 활짝 피어있을 때를 맞추어 등산 계획을 짠다. 그것이 소원이다. 만개한 철쭉을 늘 기대하면서 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늘 만개한 철쭉을 찾기란 여간 어렵다. 금년엔 예년에 비하여 철쭉의 개화가 늦다. 아니 모든 꽃들의 개화가 약 10일 정도 늦다.

바래봉 철쭉은 둥그스름한 철쭉 군락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놓여 있다.
바래봉 철쭉은 둥그스름한 철쭉 군락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놓여 있다. ⓒ 서종규
지리산 바래봉 철쭉은 꼭 정원을 꾸며놓은 것 같다. 철쭉나무들이 거의 일률적으로 사람의 허리나 키 정도로 자라 빽빽하고 둥그스름하게 가꾸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철쭉 능선을 타고 가다 보면 둥그스름한 철쭉 군락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놓여 있다. 마치 공원이나 정원에 잘 가꾸어 놓은 철쭉 같다. 달력에서 보는 화려한 철쭉의 모습은 지리산 바래봉 철쭉이다.

이러한 바래봉 철쭉은 1970년대 양을 방목하기 위하여 기존의 수목을 베고 초지를 조성하였단다. 초지를 조성하면서 철쭉도 함께 자라게 되었는데 독성이 강한 산철쭉은 양들이 먹지 않게 되어 지금의 철쭉 군락지가 형성되었단다.

거의 하얀 색을 띄면서도 연한 분홍빛으로 수줍은 듯 미소짓고 있는 철쭉이 있다.
거의 하얀 색을 띄면서도 연한 분홍빛으로 수줍은 듯 미소짓고 있는 철쭉이 있다. ⓒ 서종규
바래봉 철쭉은 두 종류로 되어 있다. 거의 하얀 색을 띄면서도 연한 분홍빛으로 수줍은 듯 미소짓고 있는 철쭉이 있다. 어린 아이 볼에 살며시 손을 대어 보듯이 연한 분홍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그리고 그 특유의 진홍빛 물결이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철쭉의 계절에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지리산 바래봉이다.

5월 13일 오전 7시30분에 산을 좋아하는 ‘풀꽃카페 토요산행’팀 33명이 광주를 출발하였다. 88고속도로를 타고 남원을 경유하여 육모정 위 길을 따라 오전 10시 정령치(1172m)에 도착하였다. 정령치에서 출발하여 고리봉, 세걸산, 세동치, 부운치, 팔랑치, 바래봉, 덕두산, 인월로 이어지는 총 14km의 산행이다.

정령치에서 고리봉(1304m)에 오르는 능선엔 기원전 84년에 마한의 왕이 변한과 진한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정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는 산성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꽃망울만 가득한 철쭉나무를 보고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꽃망울만 가득한 철쭉나무를 보고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 서종규
능선에는 이제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출발하는 처음부터 이른 봄에 피어나는 작고 앙증맞은 꽃 현호색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진달래는 아직도 몇 송이 나무에 매달려 있어서 봄의 자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진달래뿐만 아니라 보랏빛 제비꽃이 한창이고, 밟힐까봐 안타까운 할미꽃들이 길가에 나와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4월 중순에 그렇게 많이 보았던 얼레지꽃이 길을 따라 양 옆에 다소곳이 피어 있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철쭉의 계절에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지리산 바래봉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철쭉의 계절에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지리산 바래봉이다. ⓒ 서종규
능선의 철쭉은 꽃봉오리만 삐쭉삐쭉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겠지. 조금만 더 가면 꽃이 피어 있겠지. 기대를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계속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한한 꿈을 간직한 꽃망울들만 가득하였다.

산 아래로 달궁과 뱀사골의 계곡이 내려다 보였다. 저 아래에서부터 그 연한 녹색들의 향연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 능선의 나무엔 이파리들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지만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신록은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 같다.

. 어린 아이 볼에 살며시 손을 대어 보듯이 연한 분홍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 어린 아이 볼에 살며시 손을 대어 보듯이 연한 분홍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 서종규
바로 눈 앞에 지리산의 그 거대한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노고단에서 반야봉을 거쳐 천왕봉까지의 그 도도한 지리산 줄기, 약간 흐릿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오지만 아래에서 올라가고 있는 연한 녹색의 구름들이 하늘까지 뻗어 오르고 있었다.

고리봉을 지나 세걸산 봉우리를 지나는 길은 험한 바위들이 많았다. 우리들처럼 지리산 바래봉 철쭉을 그리며 찾은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능선은 거대한 인간의 띠가 되었다. 멀리 계곡에서 불어 올라오는 녹색의 바람이 그렇게 시원하였다.

12시20분, 세동치에 도착하였다. 환상의 철쭉을 기대했던 마음이 실망으로 변하였는지 모두 기진맥진한 표정이다. 모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갑자기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짓눌린 표정들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점심이 준 명약이다.

꽃망울을 보면서 활짝 핀 팔랑치 능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 너무나 소중한 인간의 상상력이다.
꽃망울을 보면서 활짝 핀 팔랑치 능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 너무나 소중한 인간의 상상력이다. ⓒ 서종규
오후 1:00에 출발하였다. 이제 부운치만 넘으면 팔랑치에서 바래봉까지 지리산이 자랑하는 환상의 철쭉 군락지이다. 모두 그 환상을 꿈꾸는 것 같았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쭉 1100m 이상의 능선을 타고 가는 산행이었기에 좌우에 펼쳐진 지리산의 장관에도 마음이 들떴다.

부운치를 넘어 팔랑치가 보였다. 잘 가꾸어 놓은 정원수들이 군데군데 무더기져 있다. 그런데 역시 진홍색 붉은 물결은 아니었다. 아직은 꽃망울들만 초롱초롱 하늘을 향하여 흔들거리는 철쭉의 향연 준비였다.

그래도 피어난 철쭉나무에는 붉은 무덤을 보는 것 같았다. 그 많은 사람들은 철쭉 무더기 속에 들어가 아쉬워하고 있다. 모두 예년의 기준으로 만개한 철쭉을 기대하며 오른 산행일 것이다. 모두 다음 주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을 뱉는다.

생명을 가득 머금고 있는 그 많은 꽃망울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생명을 가득 머금고 있는 그 많은 꽃망울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서종규
이제 딱 1주일 후면 지리산 바래봉 능선은 붉은 철쭉으로 물들겠다. 다시 내년의 달력을 발간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이 댈 것 같다. 그래도 생명을 가득 머금고 있는 그 많은 꽃망울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일행 중 이기홍씨는 꽃망울만 가득한 철쭉나무를 보고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게 바로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이지요. 덜 핀 철쭉을 보고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 활짝 핀 모습을 그릴 수 있다는 것, 상상이 날개를 펴고 상승기류를 타고 오르는 걸 보셨나요?”

그 특유의 진홍빛 물결.
그 특유의 진홍빛 물결. ⓒ 서종규
그렇다. 꽃망울을 보면서 활짝 핀 팔랑치 능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 너무나 소중한 인간의 상상력이다. 오히려 연한 분홍의 철쭉꽃은 피어 있는 꽃 몇 송이보다 꽃망울들이 더 예뻐 보였다.

그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 3시 바래봉(1167m)에 올랐다. 저 멀리 팔랑치의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저 멀리 지리산 능선을 타고 가다 보니 흐릿하게 천왕봉이 눈에 들어온다. 덕두산을 넘어 인월 쪽으로 아쉬운 발길을 옮겼다.

이제 딱 1주일 후면 지리산 바래봉 능선은 붉은 철쭉으로 물들겠다.
이제 딱 1주일 후면 지리산 바래봉 능선은 붉은 철쭉으로 물들겠다. ⓒ 서종규

덧붙이는 글 | 위 사진은 모두 산행 중 일찍 핀 꽃을 찾아 찍은 사진입니다. 지리산 바래봉 산행은 남원 운봉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가깝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령치에서 바래봉으로 능선을 타고 가는 산행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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