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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스데이 카드를 고르고 있어요.
마더스데이 카드를 고르고 있어요. ⓒ 한나영
"내일이 어머니날인데 선물이라도 준비했니?"
"candle set(양초세트)."

"엄마 드렸어? 뭐라고 하시던?"
"얼마 줬니?"

"재원이는?"
"저도 꽃을 사드렸어요. 그런데 헬렌이랑 똑같아요. 저의 엄마도 '얼마 줬니?'라고 묻던데요. 한국 엄마들은 정말 이상해요."

버지니아주의 센터빌. 미국의 어머니날인 '마더스데이'를 하루 앞둔 지난 5월 둘째 주 토요일. 한인 고등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한 목소리로 자기 어머니를 성토하고 있었다.

이들은 애써 용돈을 절약하여 '마더스데이' 선물을 드렸는데 기껏 "얼마 줬니?"라는 말을 듣게 되어 짜증이 났다고 입을 내민다. 아이들의 이유 있는 불평을 듣고 있노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지난 주는 마더스데이 때문에 온 미국이 들썩였던 한 주였다. 운전을 하면서 듣게 되는 라디오에서도, 집에서 보는 TV에서도 온통 '해피 마더스데이(Happy Mother's Day)'를 외쳐 대는 목소리 일색이었다.

물론 소비자를 유혹하는 상업 광고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즐겨 듣는 라디오 방송인 105.7MHz의 <뮤직 오브 유어 라이프>(Music of your life)에서는 마더스데이를 앞두고 청취자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어머니를 위한 추억의 노래와 사연을 방송하기도 했다.

대형쇼핑몰의 '마더스데이' 코너
대형쇼핑몰의 '마더스데이' 코너 ⓒ 한나영
떠들썩한 건 방송만이 아니었다. 거리에는 마더스데이 세일을 알리는 광고판이 곳곳에 세워졌다. 이날의 특수를 노린 광고 우편물도 속속 집으로 배달되었고 대형 쇼핑몰에서는 마더스데이 코너를 마련하여 갖가지 선물과 카드, 꽃 등을 팔기도 했다.

그런데 마더스데이 쇼핑 바람은 새 것을 파는 쇼핑몰에만 부는 게 아니었다. 중고가게인 '알뜰시장(thrift shop)'에도 거세게 불어닥쳤다. 이곳에서는 크리스탈 제품과 주방 용품, 예쁜 꽃병과 액자 등의 중고 신상품이 싼 값에 판매되고 있었다.

'알뜰시장'에서도 선물을 준비해요.
'알뜰시장'에서도 선물을 준비해요. ⓒ 한나영
사실 마더스데이 행사는 그 전에 먼저 우리 집에서 열렸다. 두 아이들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마더스데이에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늘상 해오던 대로 5월 8일 '어버이날'을 챙겼다.

어버이날 새벽, 아침을 준비하려고 밖으로 나오는데 발에 걸리는 게 있었다. 뭔가 싶어 불을 켰더니 큰 종이 위에 '축 어버이날'이라는 글자판과 정성스레 쓴 카드가 놓여 있었다. 간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언제 일어나서 이런 준비를 했는지 기특했다.

방문 앞에 놓인 축하 문구와 카드
방문 앞에 놓인 축하 문구와 카드 ⓒ 한나영
"축 어버이날!"

올해로 16번 째인 어버이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매 해 어버이날마다 "엄마, 아빠께 잘 할게요"라고 다짐하지만 'Fe'가 부족했던 큰딸을 용서하세요.
(용서는 무슨 용서? 그리고 원소 기호 'Fe'는 '철' 대신 쓴 말인 듯하다.)

저도 미국에 오고 나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17번째 어버이날은 살짝 기대해 주세요. 변하겠나이다. 멋지고 쿨한 딸이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닦아 딸보다 더 멋진 부모님께 효도하겠사와요. 효도 받으실 준비를 하시지요. (넌 원래 '인간'이야. 그리고 효도 받을 준비를 하라고? 말만 들어도 감동이다.)

작은 딸도 한 마디 덧붙였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 제가 14년째 이렇게 건강하고 똑똑하게 지내는 건 모두 부모님 덕분이에요. 어버이날인데 앞으로 착하고 예쁜 딸이 되겠습니다. 14년 동안 길러주시고 맛있는 밥과 반찬, 최고의 국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항상 평안하시길 빕니다. 사랑해요.

우리집에서는 이렇게 어버이날 행사가 끝났는데 또 다시 '마더스데이'에 큰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편지가 왔다.

학교에서 보낸 '마더스데이' 편지
학교에서 보낸 '마더스데이' 편지 ⓒ 한나영
안녕하세요? 이건 반성문이나 경고문이 아니니 걱정 마세요. 오늘 학교에서 특급 명령을 받고 마더스데이를 축하하는 편지를 씁니다. (중략)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잘 하지 못해서 엄마가 속상해 하시는 거 잘 알아요. 마음 속으로는 잘해야겠다고 하지만 엄마랑 잘 안 맞아서 자꾸 싸우게 돼요.

이제 우리 '잘' 지내도록 합시다. 이번 마더스데이를 계기로 잘 살아보려고 합니다. 어쨌든 그동안의 공로에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패라도…) 좋은 친구일수록 조심해야 한다는데 엄마도 좋은 친구인 만큼 제가 조심하는 '작은 친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착한 딸인데 앞으로 더 잘하겠다고 '효성'을 맹세(?)하니 내 앞날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미국에 와서 처음 마더스데이를 맞이하면서 신기한 게 있었다.

바로 마더스데이가 '아내의 날'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어버이날'이면 부모님만을 위하는 날이어서 당연히 친정부모나 시부모만을 위한 날로 여기고 챙겼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 마더스데이는 어머니뿐 아니라 아내를 위하는 날이기도 해서 아내에게 카드와 선물을 주고 외식을 하는 남편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역시 이곳에 오래 산 남편 친구의 제안으로 두 아내들이 모처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는 호사를 누렸다. 한국의 어버이날이면 주로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손님들이 많지만 이곳에서는 부부가 다정하게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아내에게 카드를. 'For my wonderful Wife'
아내에게 카드를. 'For my wonderful Wife' ⓒ 한나영
이제 마더스데이도 지나가고 사람들은 다시 조용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대형 쇼핑몰도 마더스데이 관련 상품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팔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마더'들을 위한 사랑의 마음도 결국 약삭 빠른 상술일 뿐이다. 반짝 상술이 유혹하는 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가정의 달에 깨닫게 된다. 바로 은근한 사랑과 지속적인 관심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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