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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코흘리개 어린시절, 유난히 개구장이였던 아들
코흘리개 어린시절, 유난히 개구장이였던 아들 ⓒ 한명라
지난 5월 16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은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2박3일 동안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바쁘게 수학여행 도중 아들이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만들었습니다.

김밥 도시락도 싸고, 냉동실에 얼려 놓았던 물통도 꺼내 아들의 여행가방을 챙겨 놓은 후, 아침 6시에 깨워 달라고 한 아들을 깨우기 위해 아들방의 문을 열었습니다.

수학여행가는 것도 잊고 깊은 잠에 빠졌었다는 아들을 깨운 후, 문득 아들의 책상 위에 펼쳐 놓은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편지는 그날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을 남편이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들에게 쓴 편지였습니다.

집안 어느 곳에서 찾았는지 연필로 쓴 남편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순간, 지금까지 남편이 아이들에게 조용하면서도 변함없이 보여주는 따뜻한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늦은 새벽에 퇴근을 하는 남편은 아들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간이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아마 길 떠나는 아들의 모습 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미리 편지라는 형식을 빌어 잘 다녀 오라는 말과 당부의 말을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세수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서도 미처 아빠의 편지를 발견하지 못하고 양말을 신고 있는 아들에게 "승완아, 책상 위에 저 편지는 뭐야?"하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어? 아빠가 쓴 편지네?"하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여행길에서 폼을 잡은 아들
수학여행길에서 폼을 잡은 아들 ⓒ 한명라

사랑하는 아들! 홍 승완.

몇일 얼굴 못 보겠네. 머리 안감고, 눈꼽이 끼어 있어도 매일 볼 수 있는데 수학여행 2박3일 가면서 못보니 보고 싶어 어찌할꼬?

매일 연속되는 똑같은 학습이 새로운 것은 배우고, 배운 것 까 먹고, 까 먹은 것 배우고, 반복해서 밑줄 쳐 놓은 것 시험 나온다고 다시 외우고,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꼭 외우고 익혀야 할 것은 머리속에 남아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능력평가 기준이 되네!

사진기가 왠지 느낌이 와서 이 글을 적는다.

필요없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치 못하고 마구 집어 넣으면, 꼭 필요한 것을 소중히 담지 못하네(필름 끝) 혹여 우리가 살아가는 한계가 사진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똑같은 것을 보고, 먹고,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을 실천에 옮겨서 좋은 하루가 되고 좋은 작품을 남기고, 그냥 무의미하게 사는 사람은 햇빛이 들어 필름이 타서 사진현상도 못하고 버리고.

우리 아들은 소중한 것을 꼭 사진기 안에 넣어 매일 매일 좋은 하루를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재미있게 놀고 보면서 행동과 실천, 맑은 영혼에 도움이 되는 좋은 그림을 가슴 가득 채워 오길 빈다.

빛이 들어가 타 버린 필름처럼 쓸데없는 잔상은 버리고, 차창을 통해 사색하고 고민하면서 사물의 변화에 승완이 맡겨 봐!

잘 갔다 와, 메세지 자주 주고...



두 아이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남편.
두 아이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남편. ⓒ 한명라
아들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저의 디지털카메라를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카메라를 잃어버리거나 고장이 날지 모르니까 안 된다고 거절을 했더니, 아들이 남편에게 우리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는 일회용 카메라를 가지고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남편은 그때 아들과 카메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던 중 불현듯 떠올랐던 여러 생각을 편지로 쓴 듯합니다.

늦은 시간에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와서 아무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써 내려간, 한편으로는 무뚝뚝하게 느껴지는 남편의 편지였지만, 저는 그 편지 속에 숨어 있는 아들에 대한 남편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저는 남편이 아이들에게 소리없이 보여주는 크고 작은 관심에 감탄을 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5남 7녀, 열두 남매를 낳으신 엄마께서는 그 자식들 배곯지 않게 키우시고 남부럽지않게 가르치는 일에만 신경을 쓰시느라, 많은 자식들에게 일일히 세심한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니 하실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형제들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은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자랐습니다. 행여 길을 걷다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엄마가 아시고 걱정하실까 굳이 알리려 하지 않았고, 본인 스스로 상처에 소독약을 바르면서 자립심이 강한 아이들로 자랐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남편은 2녀 2남의 막내로 태어나서 시부모님의 자상하고 세심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자라왔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지 않겠습니까만, 3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남달랐습니다.

오죽하면 두 아들인 시숙과 제 남편은 시골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감히 수영을 배울 생각을 못했을까요? 그렇게 자랄 정도로 시어머님의 사랑은 깊고 애틋했다고 합니다. 아들의 몸에 아주 작은 상처라도 생기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 때까지 손수 된장이나 약을 발라 주셨다고 합니다.

이제 세상을 향한 여행을 떠날 준비를 끝낸 민들레.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저 민들레처럼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나겠지요?
이제 세상을 향한 여행을 떠날 준비를 끝낸 민들레.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저 민들레처럼 자신들의 삶을 찾아 떠나겠지요? ⓒ 한명라
올해로 저는 결혼생활 16년째입니다. 서로 자라 온 환경이 다르듯,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기울이는 사랑의 표현방법도 남편과 저는 무척 대조적입니다.

어린 시절 많은 형제들과 어울려 자라면서 웬만한 일들은 본인 스스로 해결하며 자랐던 저는, 제가 자라왔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본인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하기를 바라는 반면, 시어머니의 자상한 보살핌을 받고 자란 남편은 자신이 시어머님에게서 받았던 만큼,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아이들을 잘 챙겨 줍니다.

늦은 새벽시간에 퇴근을 해야 하기에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남편은 틈이 나는 대로 아이들과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대화를 나누거나, 주말이면 가게로 불러내 아이들이 좋아하는 짜장면이나 냉면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합니다.

행여 아이들의 몸에서 모기에 물린 흔적이나 아주 작은 상처라도 발견하면, 아이들 스스로 연고를 바르라고 하는 저와는 달리, 남편은 직접 연고를 찾아들고 아이들의 상처에 정성스럽게 발라줍니다. 심지어 새벽시간에 퇴근하여 잠이 든 아이들 몸에 약을 발라주는 남편을 보면서 제 스스로 아이들에게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남편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진정 사랑을 나눠주는 방법도 아는구나...'하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아들에게 쓴 남편의 편지를 읽으면서, 저는 다시 한번 아이들에 대한 저의 사랑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뜻한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그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듯, 저 또한 우리 아이들이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정성과 관심을 아끼지 않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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