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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전국 264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2006 지방선거시민연대'와 공동으로 '지역을 바꾸는 10가지 희망'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지역의 복지, 문화, 환경, 자치 등의 분야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10가지 성공사례를 발굴·소개해 풀뿌리 지방자치단체의 바람직한 상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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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선거철이 돌아오면 '어디를 개발하겠다'거나 '어떤 시설을 유치하겠다'는 공약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때론 전혀 실현되지 못할 듯한 공약들이 제시되기도 하는데, 그런 공약을 내거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민들이 개발을 원한다고 변명하곤 한다. 그러나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진정 개발일까?
국도건설 반대? 남원시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
2005년 전라북도 남원시에서는 마을주민들이 국도건설을 반대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2004년 남원시는 남원시 인월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으로 이어지는 8km 국도구간을 4차선으로 넓히고 터널을 뚫고 다리를 세워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 했다. 도로건설에 사용될 공사비는 무려 1140억원. 그렇지만 남원시와 익산국토관리청은 도로를 확장하면 지역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며 공사를 강행하려 했다.
그러나 지리산 인근의 지역단체들이 모인 지리산생명연대를 중심으로 개발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8km의 구간을 개발하는 데 1140억원이 들 뿐 아니라, 직선으로 터널을 뚫고 다리를 세우면 자연이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반대만 한 게 아니라 지리산생명연대는 기존의 도로 폭을 조금만 넓혀 보행자와 자전거, 농기계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정부의 답변은 언제나 충분한 설명 없이 '그건 힘들겠다'였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정부의 개발의지와 환경단체의 보존의지 사이의 대립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런 시선이 놓치는 것은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다. 지리산생명연대는 지리산 인근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주민들을 대표하지 않고 주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도록 도왔다.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는 중앙정부나 외부의 단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고속화도로가 건설된 다른 지역을 직접 돌아보며 도로가 건설된 뒤에 지역경제가 발전하기는커녕 몰락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빠른 도로가 건설되면, 더 이상 사람들은 차를 세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려 하지 않을 터이고, 아름다운 자연은 자동차로 휙휙 지나칠 통과공간으로 변해 버린다. 자연히 차를 세우고 마을에서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자연에 기반을 둔 지역의 경제도 서서히 몰락할 수밖에 없다.
농촌 소도시 주민들이 던진 화두 '아름다운 길'이란?
꼬불꼬불한 길을 직선으로 펴고 터널을 뚫으면 빨리 달릴 수 있을지 모르나 주민들의 삶을 풍요하게 했던 자연이, 그리고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했던 교감(交感)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 빨리 달릴수록 주변의 공간과 자연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렇듯 속도는 인간의 감성과 생각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주민들은 "아름다운 길이란 목적지에 도달하는 '과정' 그 자체여야 하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여기며 빠른 도로건설을 반대했다.
더구나 주민들의 빠른 도로건설 반대는 단지 반대로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은 직접 지역의 작은 길들을 돌아보고 확인하며 마을을 풍요하게 했던 길들을 마을지도로 제작했다. 이 마을지도는 "속도와 효율을 추구하는 빠른 길이 아닌, 주변 사람들과 사람의 냄새가 살아 있는 길을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제작"되었다. 마을지도에는 기존의 지도에 나오지 않던 좁고 꼬불꼬불한 길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었고, 주민들은 자기 지역에 대한 애착을 더욱더 품게 되었다.
지리산에서 벌어진 변화의 흐름은 한국의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지역정부는 정책을 계획한 이유와 그 집행과정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은 채 개발이라는 명목만을 내세웠고 1140억이라는 예산을 낭비하려 했다. 그리고 충분한 고민 없이 다른 지역에서 실행된 정책을 그대로 본 따려 했고, 단기적인 이익만을 강조하고 지역의 장기적인 미래를 고민하지 않았다. 또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더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변화를 이루려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
반면에 지리산 자락에 사는 주민들의 움직임은 한국의 지역사회가 가진 희망을 보여준다.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지역사회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단지 인간만을 위한 개발이나 경제적인 이익만을 고려한 개발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자연 사이에 놓인 깊은 골을 메우기 위한 미래의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의 주인은 정부가 아니라 주민이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느린 길에 대한 애착이 사람들의 생각을 서서히 바꾸고 있는 셈이다.
풀뿌리 지역에서 희망을 찾다
이런 느린 길에 대한 애착은 지리산에만 머물지 않았다. 강화도에서는 48국도 고속화 우회도로 건설을 막으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고, 하동-화개 국도 4차선 건설을 반대하며 물길 꽃길을 지키려는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런 변화의 흐름은 도로의 문제로 제한되지 않았다. 2002년 서울 마포구 성미산의 개발을 저지한 움직임은 참여와 자치를 위한 마포연대로 이어지고 있다. 2003년 핵폐기장을 거부했던 부안 주민들은 2005년 지역 내 3곳에 태양광선을 이용하는 햇빛발전소를 건설해 지역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이미 전국 곳곳에 대안의 길이 놓이고 있고, 그 대안의 길은 이리저리 이어져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트고 있다.
듣자하니 새만금 간척지의 넓이가 여의도 땅의 140배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아이들은, 미래의 주민들은 다시는 새만금 갯벌에 살던 다양한 생명체들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황사를 피해 마스크를 쓴 우리 아이들은 봄날의 눈을 맞으며 사계절이 분명했다는 금수강산의 이야기를 책으로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빌려온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제는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미래에 관한 지역의 고민은 이미 시작되었다. 중앙정치로만 맞춰진 우리의 시선이 놓치고 있었을 뿐이다. 중앙정치에만 눈을 맞춘 사람들이 절망 속을 헤매고 있을 때 지역에서는 조금씩 미래의 희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제 변하지 않는 것에서 희망을 찾기보다 이미 나타나고 있는 희망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참정권과 시민권은 정부에게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내가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 권리를 행사할 때이다.
| | '플래카드 여론' 물리친 '주민의 힘' | | | [인터뷰] 윤정준 지리산 생명연대 사무처장 | | | | "우리 마을에 1천2백억원이 들어온다는데…. 어찌보면 개발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당연했습니다. 특히 지역유지, 도의원들은 도로를 건설하자고 강하게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휴가철 1주일 막히는 8km의 도로에 1천여억원을 뿌린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결국 이 사업의 실체를 안 주민들이 반대하기 시작했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유지들도 두 손 들었죠."
당시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술 꽤나 마셨다는 윤정준 지리산생명연대(http://www.savejirisan.org/) 사무처장의 회고담 한토막이다. 윤 처장이 꼽은 남원시 국도건설 반대운동 성공 요인은 '주민의 힘'.
"플래카드로 대변되는 지역여론은 유관단체들의 주장을 담았습니다. 주민들은 그때까지 거의 말이 없었죠. 하지만 공청회 장소에서 나도 놀랐습니다. 말 없는 주민들이 도로건설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바꾸는 데에는 청년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지역청년들은 국도 건설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몰락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됐고, 주민들을 가가호호 방문해 이같은 우려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지역운동을 하다 보면 '도로 싸움'은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개발에 대한 욕구가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초 예산의 10분의 1 예산을 사용하더라도 아름다운 도로를 만들라는 주장에 주민들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젠 개발이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윤 사무처장은 마지막으로 "당초 자치단체가 터무니없는 도로를 건설하려 했던 것은 '전국도의 4차선화' 사업 차원에서 건교부가 지원하는 지방도로 건설 예산 때문이었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도로 건설 예산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병기 NGO서포터 | | | | |
덧붙이는 글 | 하승우 기자는 (준)풀뿌리자치연구소 운영위원이자 정치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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