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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한 건수가 4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파산 신청자들의 가정파괴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불법 채권추심에 시달리다 이혼, 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2회에 걸쳐 파산 신청자들의 생활실태를 들여다보고, 과중채무의 사회적 배경과 극복방안을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아주대 최희갑 교수는 과중채무자 문제의 해법으로 "서민금융기관의 활성화"를 꼽았다.
아주대 최희갑 교수는 과중채무자 문제의 해법으로 "서민금융기관의 활성화"를 꼽았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24시간 대출 가능하다'는 문자메시지가 무차별적으로 날아들고 있다. 지우기에 바쁘다. 그러나 돈이 궁한 사람은 이런 문자가 유혹이 될 수밖에 없다. 사금융에 그만큼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은행의 문턱은 높다. 은행은 안정적인 직업이 있고, 집 있는 사람들에게만 돈 빌려주는 데 너그럽다. 동네에 있는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등 서민금융기관 역시 선뜻 찾기가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사금융 이용자가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까다로운 대출심사(26%), 과거 신용불량자 전력(21%)을 꼽았다. 이들 가운데 공금융 기관에 대출신청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2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사금융을 그럼 안 써야지"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사금융 이용자들은 부도와 사업 실패(28%), 교육비 등 급전 필요(22%), 실직(16%) 등 66%가 절박한 이유 때문에 돈을 빌려 쓰고 있다.

최희갑(경제학과, 거시경제·금융전공) 아주대 교수는 지난 2일 '신용 양극화 시대, 금융의 사회책임과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역할' 토론회에서 "적자 계층의 전체 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7년 7.85%에서 2005년 17.85%로 두 배 이상 크게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적자 가계가 2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적자계층의 악순환

17일 만난 최 교수는 적자 계층의 증가 원인을 공금융과 서민금융이 제 역할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금융이 비대해지는 게 물론 문제지만,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건 공금융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죠. 과중채무자들을 보면 담보 능력이 없어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을 수 없고, 그래도 교육비 등 기본 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다 보니 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더욱이 적자계층은 가계소득원도 일정치 않습니다. 흑자 가계의 취업자수가 44.6%인데 반해 적자 가계 취업자 수는 29.4%에 불과합니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답은 공금융 역할 강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서민금융 전담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상호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의 잠재부실 문제가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여력이 많지 않다.

"어려운 것은 알지만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서민금융기관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전에 보면 새마을금고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재산정도, 소득수준, 지출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을 때 갚을 수 있을지 없을지까지 파악이 가능하지요. 조언도 해줄 수 있고….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지역에 있는 서민금융기관의 경우 사적 네트워크가 강하다 보니 그런 이해관계에 따라 돈을 빌려줬다가 부실로 이어질 위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부분은 정부가 감시와 견제 장치를 치밀하게 마련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입니다."


최 교수는 서민금융기관이 대안금융기관인 마이크로크레디트처럼 자금 대출뿐 아니라 사업 교육 등의 적극적이 아이템을 개발하는 공격적인 전략을 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에서 한 번 아웃되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까지 서민금융기관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서 정부 양극화 대책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지금처럼 세금 더 걷어서, 저소득층에 수입을 보존해 주는 방식이 돼서는 곤란합니다.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는 거죠. 노동시장, 금융시스템, 교육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지금 양극화의 문제의 핵심은 상위 계층이 한 번 무너져서 밑으로 떨어지면 절대로 위로 갈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적자 계층 20%를 제외한 사람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죠. 고소득층도 잠재적 저소득층 입니다."


"한 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려운 게 양극화의 핵심"

ⓒ 오마이뉴스 박수원
특히 최희갑 교수는 서민금융기관 내실화와 함께 함께 공교육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교육이 제역할을 못하면서 사교육이 그 자리를 잠식한 것처럼, 지금 우리사회의 사금융이 공금융을 잡아먹고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기본 비용입니다. 그래서 빚을 내서라도 교육은 시키는 것이고…. 정부가 공교육을 내실 있게 한다면 빈곤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 정서는 생활보호 대상자라는 낙인이 찍혀서 수업료를 면제 받기보다는 그 낙인을 부끄럽게 여기고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 정서를 활용해야죠. 한편에서는 서민대출을 통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보편화됐지만 좋은 교육을 저소득층이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디자인해야 합니다."

최 교수는 정부의 정책이 좀 더 적극적이고 다양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용 없는 성장, 실업, 빈곤, 양극화 심화'가 이미 80년대 유럽, 90년대 미국에서 논란이 됐던 사안이 만큼 정책경험을 빌려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이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서 세금을 걷었지만,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정책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내용이 아직 부족하죠. 가령 20%의 저소득층을 가진 두 국가가 있다 하더라도 저소득층을 구성하는 가계가 변화하는 국가와 고정된 경우는 아주 다릅니다. 계층간 이동이 가능할 수 있는 양극화 해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가 금융시스템, 노동시장, 교육제도를 포괄하는 통합적인 양극화 처방을 제시하지 않는 한 빈곤의 대물림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는 게 최희갑 교수의 일관된 주장이다.

적자계층이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우리 사회의 숙제인 셈이다. 한 번 아래로 떨어지면 위로 올라갈 수 없는 사회에게 희망은 먼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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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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