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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히 웃으며 인사하는 에리코씨와 황스베따씨.
환히 웃으며 인사하는 에리코씨와 황스베따씨. ⓒ 김범태
'전신성 홍반성낭창'이라는 루프스성 질환으로 사경을 헤매던 고려인3세 동포가 한국 의료진과 지인들의 헌신적인 치료와 도움으로 새 생명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지난 1월 한국에 입국한 재러시아동포 에리코씨는 만 5개월간의 치료를 마치고 어머니 황스베따씨와 함께 지난 12일 건강한 모습을 되찾아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사할린으로 돌아갔다.

에리코씨는 루프스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산후 근육통 정도로만 알고 러시아에서 1년 가까이 치료해 왔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간농양과 장기염증 증세까지 겹치는 등 합병증으로 거동조차 불편하게 되었다.

그의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한국의 지인들 도움으로 서울위생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에리코씨는 한때 패혈증 증상까지 보이며 산소호흡기에 생명을 의지한 채 생사의 문턱을 드나들 만큼 위독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또한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40도까지 오르는 고열로 의식을 잃기도 했다.

이와 함께 루프스 질환의 부작용으로 피부뿐 아니라 혈관에까지 염증이 번지므로 인해 괴사한 피하조직과 근육층을 모두 들어내고 피부이식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의료진의 혼신을 다한 치료가 꺼져 가는 동포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고려인후원회(회장 김형렬) 등이 에리코씨를 돕기 위한 후원활동을 펼쳤으며 지난 3월부터 국내외에서 시작된 모금을 통해 1천1만7660원의 성금이 모아졌다. 또한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서울위생병원과 삼육국제개발구호기구 등이 에리코씨의 수술비 등 치료비용 상당 부분을 공동 부담했다.

사할린 외곽 농장에서 어렵게 살림살이를 이어가던 그녀에게 수천만 원의 치료비는 엄두도 못 낼만큼 엄청난 액수였다. 게다가 에리코씨는 법적으로 외국인이어서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 마련이 막막한 실정이었다.

그녀를 치료해 왔던 서울위생병원 박순희 과장은 "이제부터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만큼 안정적인 상황이지만, 만성질환이라는 루프스의 특성상 재발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추후 관찰을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또한 "러시아로 돌아가더라도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한두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는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며 "힘들고 괴로웠던 치료를 잘 견뎌내 주어 대견하고 고맙다"며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에리코씨는 "이처럼 많은 분들이 생면부지의 저를 위해 기꺼이 도와주시고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 주셔서 너무나 고맙다"며 "동포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황스베타씨도 "너무나 큰사랑을 받게 되어 여간 송구스러운 게 아니다"라면서 "도와주신 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해 감사의 뜻을 전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하늘나라에서라도 꼭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한국 동포의 사랑 결코 못 잊을 것"
사할린으로 떠나는 에리코씨 모녀 "꿈만 같다"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그동안 자신을 가족처럼 치료해 주었던 병원 의료진과 지인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공항으로 향하는 그녀의 표정은 어린아이 마냥 천진스러웠다.

그녀는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빨리 만나고 싶으면서도, 막상 집에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떨린다"며 "꿈만 같다"고 활짝 웃어 보였다.

아직 완전히 생착되지 않은 피부조직 때문에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비행기 트랙에 올라야 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밝아 보였다.

공항에 도착해 사할린의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행복이 그대로 묻어 났으며 "집에서 만나자"는 짧은 대화는 더욱 애틋하게 들려왔다. 특히 사경을 헤매던 아내가 건강한 목소리를 들려주자 남편은 기쁨에 겨워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로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기에 오르기 위해 출국장을 나서던 모녀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한국의 사랑과 정을 평생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이라며 손을 흔드는 모녀의 얼굴에 오랜만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 김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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